인종차별이 없는 나라, 폴란드?

아직까지는..

by 싱클레어

“스페인 교환학생 시절, 제일 힘들었던 것이 뭐였어?” 라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인종차별’.


나는 스페인에서 사는 동안, 또 남유럽과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수없이 인종차별을 당했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들숨날숨에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갈 무렵엔 인종차별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얼른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유럽 여행지. 이 곳들에서 나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캣콜링도 당했다. 아시아 여자들에 대한 성희롱이라고 한다. 심지어 알아들으니 문제였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니까, 그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차별적인 행동과 말들을 뱉어내는 그들을 보며 유럽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는 포기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예쁜 날씨와 맛있고 저렴한 빵과 고기, 과일들, 예술의 향연을 얻은 대신, 불편한 행정처리, 인종차별, 소외감 등을 얻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이 최고야!’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그래서 이번에 폴란드에 오기 전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아마도 폴란드 사람들은 나에게 인종차별을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약해지지 말자고, 무시하고 갈 길 가자고 생각하고 도착했다. 그렇게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도착한 폴란드에 온지 3주가 다 되어가는데, 한 번도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 아니, 당했는데 몰랐나? 그런데 아직까지는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다. 한 가지, 스페인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사람들이 대부분 무뚝뚝하고 말이 없고 조용하다는 점. 이것도 더 살아봐야 알겠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무뚝뚝하다.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벌써 6개월을 산 오빠는 불친절한 게 아니라 남한테 관심이 없다는 거라는데, 잘 모르겠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문을 저 멀리서도 잡아주는 사람도 있지만(우연인지 대부분 중년 남성들이다), 헬스장에서 인사 한마디 없는 매니저, 마트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는 계산원, 미술관에서 귀찮다는 듯이 쳐다보며 표지판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직원들도 있다. 솔직히 나는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인종차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시안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백인들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어떤 특징인가 싶기도 하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요점은 신기하게도 스페인에서는 도착하자마자 당했던 인종차별을 지금까지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2020년도에 동유럽을 여행할 당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를 다녀왔는데, 거기서도 인종차별은 당한 적이 없다. 서유럽과 남유럽에서 뻔질나게 당했던 레이시즘. 하지만 동유럽에선 당하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서로의 장단점은 있는 것 같다. 스페인 사람들은 활발하고 웨이터들이나 마주치는 사람들이 하도 말이 많아서 어색할 일도 없고 불친절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는 반대로 인종차별은 없지만 극한의 내성적인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아서 조금 삭막한 느낌이 들긴 한다. 아마도 이 추운 겨울이 지나면 사람들의 얼굴에도 조금은 웃음꽃이 필 수 있으려나, 기대는 해보고 있다.


3주도 안됐으니 적응 중이라 모든 게 낯설고, 조금만 다르면 두렵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지금까지 내가 바라 봐온 폴란드는, 겨울엔 굉장히 추워서 어디에 나갈 수도 없고, 인종차별은 없으며, 사람들이 무뚝뚝하다. 하지만 또 어딘지 모르게 착한 느낌도 있고.. 사실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이 나라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사계절을 겪어보면 그들의 삶에 대해서, 그들의 마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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