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 까마귀

by 싱클레어


여기, 바르샤바에서 관심이 가는 것이 하나 생겼다. 후드 까마귀. 후드집업을 입은 것처럼, 검은색 몸통 위에 목부터 날개와 등, 그리고 가슴과 배가 회색털로 덮인 까마귀다. 후드까마귀와 처음 마주친 날은 집에서였다. 남편이 출근한 후, 혼자 커피를 내리고 퐁첵이라는 폴란드 도넛을 식탁에 앉아서 먹고 있을 때였다. 우리 집은 통창으로 된 테라스가 있어서, 거실에서 바깥을 볼 수 있다. 집주인이 새를 싫어했는지, 테라스 난간엔 뾰족한 철제물들이 새들이 난간에 앉는 걸 막았다. 그 바로 앞엔, 우리 집 층 높이의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건물의 옥상이 우리집 높이라고 보면 된다. 그 곳에 처음 후드 까마귀가 나타났다. 첫인상으로는 까마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회색빛이 매력적이어서 그런지, 완전히 다른 종의 새 같았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는데 어찌나 날렵하고 통통 튀어다니는지 잘 앉아있지를 않는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바르샤바에 눈이 내리고, 얼어 붙을 듯한 강추위로 새하얗게 쌓인 눈들이 녹지 않은 지 한 달 가량이 되었다. 온 세상이 하얀데, 그 곳을 생명력 있게 뛰어다니는 생명체가 후드 까마귀다. 헬스장에 다녀오는 길에, 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덜덜 떨면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도 영하 13도를 찍은, 살얼음 같은 날이었다. 바닥에 쌓인 하얀 눈들은 이미 자동차 바퀴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검게 변했는데, 횡단보도 옆에 쌓여있는 눈들만 깨끗하고 맑은 흰색이었다. 그 눈의 한가운데에 한 녀석이 서있었다. 통통한 후드까마귀였다. 입에 길다란 종이조각을 물고 있던 그 녀석은 눈 속에 자그마한 두 발을 폭 담그고, 나를 쳐다보았다. 새와 눈이 마주친다는 건, 그래, 쉬운 일이지만, 무언가 그 녀석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횡단보도의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었지만, 나는 신기한 마음에 그 녀석에게 조금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까마귀는 나를 슬쩍 보고는 몸을 털었다. 조그만 눈송이들이 그의 날개에서 팝콘 튀듯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후드집업 같은 회색 깃털들이 보송보송했다. 마치 폴란드에 오기 전까지 내 품에 안겨있던 우리집 강아지처럼, 복슬복슬한 회색빛 털이 보였다. 아주 촘촘하게 난 것을 보니, 겨울을 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인 것 같다. 나에 대한 흥미는 잃었는지 두 다리로 눈 속을 걷던 녀석은 종이조각을 한 입에 삼키고는 다시 날아올랐다. 눈 위에 그 녀석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조그맣고 가느다란 발자국이.


12월 31일 저녁, 남편과 함께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독일에서 사온 화이트 와인도 꺼내고, 가장 좋아하는 스페인 음식인 감바스도 해서 우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한 해의 시작을 함께 맞았다. 그때 우리집 테라스에서 보이는 초록색으로 빛나는 문화과학궁전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폭죽소리였다. 축하할 날이 오면 폴란드 사람들은 폭죽을 터뜨린다고 한다. 폭죽은 그 날 밤부터 1월 1일, 종이 치고 한참이 더 지나서야 그쳤다. 그 때 남편과 테라스 앞에서 폭죽을 보았는데,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후드까마귀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패닉에 빠져있었다. 멈추지 않고 여기 저기 터지는 그 화려한 빛깔들은 그들의 눈엔 무엇이었을까. 여기저기에서 후드까마귀들이 튀어나왔다. 원래 저녁이 되면 잘 보이지 않는 녀석들이, 아마도 나무에, 아파트 난간에, 길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었을 그들은 자유로움, 하늘이라는 도화지에 수놓아진 그 빛깔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들은 도망치고, 스트레스를 받은 듯이 바들바들 떨었다. 한 녀석이 우리 집 앞의 건물에 앉아 있다가 폭죽 소리가 뻥 터지자 하늘 위로 폭죽처럼 날아올랐다.


길고 추운 폴란드의 겨울과 밤. 머리가 시리고, 얼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에 밖에 나가는 일을 최소화하고 있는 요즈음, 후드 까마귀는 어디선가 내 눈앞에 나타나 그 귀엽고 복실복실한 가슴을 쭉 내밀고 눈쌓인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걸어다니고, 회색과 검은색이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그 커다란 날개를 쭉 펴고 하늘로, 멀리, 날아간다. 그리곤 그 다음날이 되면 다시 우리집 앞에, 내 앞에, 나타난다. 익숙한 풍경이 되듯, 이 바르샤바도 나에게 익숙해질 즈음, 내가 1년하고도 반년 뒤에 떠나갈 때쯤에도, 후드까마귀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오늘 아침 침실 커튼을 치고 나니, 철제물이 없는 난간 밑에 자그마한 발자국이 보였고, 쌓여 있는 눈 틈으로 후드까마귀의 회색 털 하나가 꽂혀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오늘은 너도 여기서 밤을 보냈구나, 왠지 위로가 되는 그 생명체를, 오늘도 바라보며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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