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절대 잊지 않겠다

폴란드의 다짐

by 싱클레어

바르샤바에서 살게 된지 한 달이 흘렀다. 가장 추운 시기에 와서 바르샤바의 관광지를 많이 다니진 못했지만, 그래도 춥지 않은 실내를 잘 찾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갈 곳을 찾을 때마다 보이는 건 박물관, 그리고 동상들. 처음엔 이게 관광지가 맞나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폴란드 국토의 80% 이상을 파괴했다고 하니, 그들만의 유산이 없는 것이 놀랄 일이 아니다. 바르샤바의 랜드마크는 문화과학궁전인데, 그마저도 소련의 스탈린이 선물로 준 것이라고. 폴란드만의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박물관들도 모두, 아픈 역사를 가진 곳들 뿐이었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 유대인 역사 박물관, 카틴박물관 등.. 그나마 전쟁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 쇼팽박물관 정도이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치독일은 폴란드에 있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했고, 그들의 영토를 완전히 박살냈다. 그 뿐이 아니다. 러시아도 합세했다. 저번주에 다녀온 카틴박물관은, 소련이 카틴숲으로 폴란드의 지식인들 약 2만 2천명을 데려가 모두 학살한 사건을 다룬 박물관이었다. 폴란드가 일어설 수 있는 기반조차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에는 전쟁 후 발견된 희생자들의 소지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2층 단위로 해도 전시를 해도 공간이 모자랐다.


길을 가다가 동상들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동상은 칼을 들고 있거나, 군복차림이다. 심지어 바르샤바를 지킨다는 인어동상조차 칼을 뽑아들고 있다. 구시가지로 가면, 소년병의 동상도 있다. 고작 초등학생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아이가 총을 들고 있는 청동색 동상이다. 길을 걷다가 벽에 폴란드어로 쓰여있는 것들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희생자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은 그 곳에 꽃들이 놓여있다.


그래서일까. 폴란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뚝뚝하고, 조용하고, 가끔은 슬퍼보이기도 한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끔찍했던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까. 심지어 러시아가 옆나라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폴란드는 러시아의 다음 타겟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조단위를 지불하고 전차를 사가기도 했다. 다시는 그런 지옥을 겪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열망이다. 폴란드 사람들은 그 아픈 역사들을 절대 감추지 않는다. 스탈린이 줬다고 하는 문화과학궁전도, 독일이 침공한 흔적들도(가끔 비스와강 너머로 가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거의 부서진 건물들도 있다.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러시아가 했던 만행들도 절대 숨기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만천하에 공개하고, 그 역사들을 기록하고,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투자해서 큰 박물관들을 지었다. 그래서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던 한국인도 얼마나 나치 독일이 잔인했는지, 얼마나 소련이 비열했는지, 그리고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강인한 민족인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옆나라 독일은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만행이 폴란드에 영원히 박제되어 있어, 그 역사를 잊을 수도 없다.


폴란드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유산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피해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습에 더 감명받았다. 아픈 역사는 잊어선 안된다. 절대로. 오히려 온 세상이, 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볼 수 있게, 잊지 않게 만드는 것이 맞는 일이다. 폴란드는 그것을 알았고, 다시는 그런 일들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폴란드에 와서 전쟁이라는 것은 끔찍한 것이며, 이런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마음 속에 조그만 씨앗으로 심어두고 다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 씨앗은 조용히 싹을 틔우고, 그 싹은 점점 커져서 나무가 되어, 각자의 나무를 마음 속에 간직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아픈 역사가 반복되려고 할 때, “안돼”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그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시도를 관두게 된다.


유럽 여행지로 사랑 받는 수많은 나라들이 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하지만 나는 폴란드에 살아보니 알겠다. 관광지라고 여겨지지 않는 곳이라도, 그 곳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꼭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에겐 폴란드가 그런 나라이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를 겪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이해가 된다. 그나마 독일은 사과를 했지만, 일본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지만, 아픈 역사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역사를 알리고, 마음이 아파서 보고 싶지 않아도 눈을 똑바로 뜨고 대면해야 한다. 그게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따뜻하게 틔워준 나라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고.


이 나라에 사는 1년 6개월 동안, 나는 그들의 아픈 발자취를 따라가보려고 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올 때마다 그들의 기록을 찾아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위해, 그리고 지금도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는 전쟁 중의 군인들을 위해, 묵념하고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