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내향인도 사람이 필요해!

by 싱클레어

나는 내향인이다.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모임도 4명 이상이 넘어가면 부담스러워서 잘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편하고, 사실,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고 즐겁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도 혼자 내 생각을 써내려 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교를 다닐 때도 발표할 땐 얼굴이 발그레해지기 일쑤였고, 시선이 느껴지면 부담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소심하기도 하고, 마음도 여려서 상처도 잘 받는다. 이런 내가, 폴란드에서 완벽한 이방인으로서 이 나라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나의 하루 일과는 일어나자마자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기, 집에 와서 씻고 점심 해먹기, 집안일하기, 글쓰기, 독서, 피아노치기, 영어 공부, 미드 보기.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저녁이 되고, 저녁 준비를 하다보면 남편이 퇴근해서 함께 저녁을 먹거나, 남편이 야근을 하는 날에는 혼자 저녁을 먹고 글을 한 편 더 쓰던지 책을 좀 더 읽던지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생활에 불만은 없다. 오히려 행복하다. 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생활은 내가 꿈꾸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내향적이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나도, 이방인이 되어 외국에 2개월간 살면서 느낀 가장 큰 것. 사람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남편이 있다. 문제는 남편은 저녁 늦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남편이 출근한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아니, 그보다 더 긴 시간동안 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폴란드 날씨가 너무 춥다보니(오늘은 영하 20도였다), 나가는 건 엄두도 나지 않고, 한 번 나가도 추위 때문에 1~2시간 뒤에 들어오기 일쑤여서 차라리 집에 있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몇 주 되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보니,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부모님과 친구들과 통화를 했다하면 1시간은 기본이다.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를 느끼고 있는 요즈음이다. 폴란드어를 모르니 말이 통하지 않아 현지인을 사귀기도 어렵고, 사귈 수 있는 곳도 없고, 바르샤바에는 동양인들도 많이 없어서 더욱 더 이방인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어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폴란드에 오기 전에는 폴란드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2년도 살지 않는 기간동안 언어를 배워봤자, 라는 생각 하나, 그리고 폴란드 사람들이 영어를 꽤 잘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일상 생활에서 필요할 때 말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낯선 나라에서의 외로움과 사람과의 대화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폴란드어를 배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학원에 등록했다. 다음 주부터 주3회 어학원을 다닐 것이다. 그 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90분동안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마음이 후련하다. 쓰다보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조금 웃기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말이다.


폴란드의 겨울이 너무나 길다. 밤도 여전히 길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전에 트위터에서 ‘오세요 핀란드’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이 핀란드 생활을 하면서 썼던 글들이 떠오른다. 처음에 핀란드 생활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점점 우울해지는 글들, 외로워보이는 그 분을 보며, 그 정도인가, 싶었는데, 나는 ‘오세요 폴란드’가 되게 생겼다. 추운 날씨, 긴 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이방인으로서의 삶. 이 모든 것에서 사람이 빠지면 더 우울해질 수 있다는 걸 느낀다. 반대로 이런 삶일지라도 사람이 함께 한다면 그 삶은 버틸 만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학원에서 만날 친구들을 기대하며, 오늘도 오후 4시 30분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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