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리도록 아픈 나라

무명용사의 무덤과 라데가스트 역

by 싱클레어

추운 날씨에 집에서만 하루를 보낸 지 몇 주가 지나고, 이젠 좀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목요일, 나는 옷을 따뜻하게 껴입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도 그 날은 평소의 바르샤바보다는 덜 추웠다. 그래봤자 영하의 온도였지만. 일단 대중교통을 타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대다수의 폴란드 바르샤바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목요일이 무료입장이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목요일은 밖에 나가는 날이었다. 그 날은 자헨타 미술관에 갔는데, 그곳은 현대 미술관이었다. 다행히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을 하길래, 천천히 걸어서 미술관으로 갔다. 전시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한 층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끝나는 그런, 간단한 전시였다. 물론 내용은 현대 미술이라 그런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았지만, 나는 만족스럽게 관람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코끝이 시렸다. 한시간도 채 안되어 미술관에서 나와, 앞에 있는 색슨 공원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를 정해놓고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늘은 조금 날이 풀렸구나, 생각을 하면서 녹지 않은 눈과 섞인 옅은 갈색의 땅을 밟으면서, 내 양 옆, 하늘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면서 걸었다. 폴란드에는 공원이 정말 많다.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 공원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겨울에 걷는 공원도 꽤 아름답다. 12월에 살포시 내린 하얀 눈들은 2월 중순을 향해가는 지금도 녹지 않고 온 공원을 하얀 천으로 덮어놓았다. 공원을 걷다보면, 영감이 떠오를 때도,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생기기도 하기에, 나는 폴란드의 공원을 사랑한다.


그 날도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어느 것 하나 내치지 않고, 받아들이며 걷던 중, 조그마한 건물, 아니 건물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기둥과 지붕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앞과 옆이 탁 트인 건축물을 발견했다. 아주 큰 건물의 한 부분을 떼어온 것처럼 생긴 그 건물엔 기둥마다 글자들이 쓰여있었다. 기간과 지역, 그게 뭘 의미하는 지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기둥 옆에 서니, 군인 두 명이 가운데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군인들 사이엔 아주 크고 네모난 돌이 있었고, 그 앞엔 폴란드의 국기와 같은 색깔, 빨간색과 하얀색의 꽃들이 놓여있었다. 휴대폰을 열고, 구글 지도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보니, ‘무명용사의 무덤’이라는 곳이었다. 전쟁으로 죽은 수많은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묘비를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24시간, 365일, 하루도, 한 순간도 빠짐없이, 그들은 무명용사들의 묘비를 지킨다. 내가 서있는 곳은 원래는 궁전이었으나, 나치독일이 모두 파괴하고 신기하게도 남은 부분이 지금의 무명용사의 무덤이라고 한다. 복원된 모형을 보니, 아주 큰 궁전이었다. 그 옆엔 나치가 파괴한 직후의 사진들도 있었는데, 정말 폐허 그 자체였다. 폴란드는 남은 건축물에 무명용사의 묘비를 세웠고, 큰 광장 앞 높은 게양대에서는 폴란드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조금 더 가다보면 카틴 숲 비행기 추락사건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도 있었다.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3명의 근위병들이 국기 쪽에서 나타나 근위병 교대식을 했다. 낮이고 밤이고, 땡볕이든, 한파든, 그들은 매일 그 묘비를 지킨다. 국가에 대한 애정과 세상을 떠난 무명 용사들에 대한 존경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앞에 선 내 눈에서 울컥, 눈물이 차오르는 것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주말엔 바르샤바에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우쯔라는 도시에 갔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라데가스트 역이었다. 폴란드의 모든 유대인들을 이 곳, 우쯔의 라데가스트 역에 데려와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로 화물열차를 태워서 보내곤 했다. 그 당시의 열차가 아직도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탈 수 있는 열차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화물용이었다. 그 날따라 우쯔엔 안개가 짙었고, 눈도 녹지 않아 온 세상이 얼어붙은 듯 했는데, 100년도 되지 않은 그 어느 과거의 날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벌벌 떨던 유대인들이 새하얀 눈밭에서 이 열차에 탔을 생각을 하니, 그리고 수용소에 도착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끝없는 강제노동을 했을 생각을 하니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슴 시리게 아픈 나라, 폴란드.

누군가는 유럽에 간다니 낭만적이다, 행복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그것도 맞다. 하지만, 몇 달 전까지는 관심도 없던 폴란드라는 나라에 와서, 그들의 발자취를 느끼고, 놓치고 싶지 않은 그들의 존중과 애절한 감정을 느끼고 나니, 그 새하얀 눈들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가슴 시리게 아픈 나라. 가슴 시리게 아프다. 그렇게.


그들이 다시는 그런 아픔을 느끼지 않기를, 유대인들이 겪었던 그 서늘한 바람, 그 앞에서 고개를 숙여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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