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어를 배워요!(feat. 인기쟁이 한국)

어학원에 가다

by 싱클레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지낸 지 오늘이 꼭 두 달이 되었다. 두 달동안 폴란드라는 나라에 익숙해지느라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폴란드어 배우기. 1년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만 폴란드에서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언어를 꼭 배워야 하나, 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남편 회사에서 주재원 와이프에게 어학비를 지원해준다는 것을 듣고, 고민이 생겼다. 어학비로 영어를 좀 더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전화영어를 해볼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언어를 배워볼까. 2주 정도 고민 끝에 나는 폴란드어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언어란, 그 나라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폴란드라는 나라에 익숙해지고, 이 곳 사람들의 성향에 대해서도 알아가고, 폴란드의 역사를 공부하며 정을 붙이고 있는데, 폴란드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아까웠다. 말은 못하더라도 읽기라도 해보고 싶었다. 마트에 가도 구글 번역기를 돌리느라 장보는 데 현지인들보다 두 배나 시간이 더 걸리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폴란드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 때, 아주 기본적인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간단했다. 폴란드에서 살기 때문에 폴란드어를 배운다. 원어민처럼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읽을 수라도 있길, 카페나 식당, 그리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기본적인 대화는 할 수 있길 바랐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심심했던 것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폴란드어는 많이 어려웠다.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스페인어와 체급 차이가 많이 나는 언어라고 느껴졌달까. 일단,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처음 보는 알파벳들과 그리고 서로 다른 알파벳끼리 합쳐졌을 때의 발음은.. 읽어보라고 하면 시간이 여전히 꽤 걸린다. 나는 A1이라는 기초 수업을 듣는데, 학생들은 총 여섯 명이다. 서로 다른 나라 출신들의 학생들이다. 포르투갈, 필리핀, 네팔, 중국, 인도, 그리고 한국(나). 아시아계가 많다보니 나처럼 발음하는 것을 많이 어려워한다. 다행인 건, 나만 못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 모두 다 못해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공부하는 중이다. 주로 함께 앉는 필리핀 친구는 영어를 써서 알파벳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도 발음이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수업마다 웃음꽃을 피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심지어 내가 살게 된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꽤 보람차고 재밌는 일 같다. 물론 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일수도 있지만, 가끔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길을 가다가 들리거나, 마트를 가서 번역기를 안 키고도 살 수 있는 품목이 보이거나, 트램을 타고 가다가 본 간판의 글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알 수 없는 행복이 마음 속에서 차오른다.


또 하나 재밌었던 일화가 있다. 첫 수업날, 수업에 들어갔는데 폴란드어 선생님이 나와 인사를 한 후에, 수업 시작 전에 나를 자꾸 흘끔 흘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왜 그러지, 싶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보고 “한국분이시죠?”라고 아주 정확한 한국어로 물었다. 정말 놀랐다. 한국인조차 없는 이 바르샤바에서, 금발에 파란 눈인 백인의 입에서 한국어가 나오다니. 나는 놀라서, “어, 맞아요. 한국어를 하시네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혹시 모르는 것 있으면 한국어로 물어보셔도 돼요.”라고 말했다. 정말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억양부터 단어 선택까지 말이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선생님께 어떻게 한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는데, 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를 전공했고(폴란드에는 한국어학과가 있고, 실제로 인기가 아주 많다고 한다), 심지어 내 모교에서 교환학생까지 했었다는 것이다. 그게 10년전의 일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한국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너무 잘해서 아직도 생각하면 신기하다. 선생님과 한국어로 대화하는데 다른 학생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고, 수업이 끝나고선 네팔친구와 필리핀 친구가 선생님이 한국어를 할 줄 아냐며, 대단하다고 말했다. 외국에 나와보니 우리나라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나, 폴란드는 한국인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느낌이다. 일단 한국인 얼굴 구분을 잘하고, 식당이나 마트에 갔을 때 어디서 왔냐며 먼저 다가와 물어본 사람들도 많았다. 한국이라고 하면 대부분 환하게 웃으면서, 한국드라마를 좋아한다며, 또는 내 아내가 한국 아이돌 팬이라며 대화를 먼저 건다. 2019년도에 스페인에서 살 때와는 또 다른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문화가 전세계 사람들을 끌어온 것 같다.


그저께엔 남편과 까르푸(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갔는데, 간 김에 네스프레소에서 캡슐커피를 사려고 들렀다. 우리를 담당하게 된 직원에게 내가 일주일간 배운(사실 따지자면 3일 배웠다) 간단한 폴란드어로 말을 걸었다. 남편은 옆에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부끄러워서 살짝 발그레해진 얼굴로 직원분(중년 여성이었다)께 “Dzien dobry!(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서 "이 커피와 이 커피를 주세요."라고 잘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대답했고, 폴란드어를 배우고 있냐며 대화를 이어갔다. 알고보니 딸이 폴란드 항공의 승무원이었고,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한국도 다녀왔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폴란드에 있는 한식맛집과 폴란드맛집을 공유했고, 웃으면서 헤어졌다. 고작 기본적인 문장들 몇 개만 외워갔을 뿐인데, 그들에겐 잘 되지 않는 발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말하는 내가 기특했나보다. 마치 한국에서 영어가 아니라 어떻게든 한국어로 말하려고 하는 외국인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내 나라에 대한 관심과 존중처럼. 무뚝뚝한 폴란드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려면 간단한 폴란드어를 최선을 다해 발음해보는 것! 그게 다다. 간단하고 쉬운 우리 세상. 작은 도전, 작은 존중 하나가 나의 세상을 바꾼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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