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여행지 첫째날

영국 런던

by 싱클레어

저번주, 3박 4일동안 영국 런던 여행을 다녀왔다. 내 인생 첫 런던이었다. 교환학생 시절, 그 많은 유럽 나라들을 여행다녔지만, 독특하게도 아주 유명하지만 가지 않은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영국이었다. 가기 전 짐을 싸며 그 이유를 떠올려 보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국에 혼자 도착해서, 식당에 간 순간, 바로 알게 되었다. 영국의 비싼 물가! 그것이 이유였다. 대학생 시절, 최대한 돈을 아끼며 저렴한 에어비앤비에서 지내고 가성비를 찾아다니던 시절, 영국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았나보다. 돌이켜 보니, 영국, 스위스, 북유럽만 가지 않았더라. 비싼 나라들만 안 간 것이었다. 그 때의 내가 괜시리 짠해지고 어렸던 내가 혼자서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던 것을 상상해보니, 재밌기도 했다.


남편은 주말에 합류하기로 했고, 혼자 런던에서 이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르샤바에서 런던까지는 약 2시간 30분이 걸렸다. 유럽에 산다는 것은 가깝고 예쁜 다른 유럽 나라들에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유럽에 있는 시간동안 한 달에 한 번은 꼭 폴란드가 아닌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을 했다. 12월엔 독일 드레스덴, 1월엔 스페인 세비야, 2월은 너무 추워서 아무데도 가지 못했고, 이번 3월의 여행지는 영국 런던! 혼자 여행한 것이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살짝 떨리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런던은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더 어릴 땐 겁도 없이 여기저기 혼자 잘 다녔으니까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머금고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도착한 런던은 날씨가 아주 쨍쨍했다. 분명 영국의 날씨는 흐리고 좋지 않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폴란드보다 더 따뜻하고(아니, 더웠다) 햇살도 따가웠다. 그래서인지 눈 앞에 보이는 붉은 벽돌집들과 푸릇푸릇한 공원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런던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보였다. 땀이 차올라서 입고 있던 경량패딩을 벗어 팔에 걸치고 예약한 유스턴의 한 호텔로 향했다.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잘 못 찾는 탓에, 다른 나라였으면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걸었을텐데, 남편이 가기 전에 당부했던 말 때문에 핸드폰을 보고 싶을 땐 벽 쪽을 마주보고 조심스레 지도를 봤다. “절대 핸드폰 손에 들고 다니지 말고, 봐야 하면 벽 앞에서 봐야해.” 영국에 출장을 자주 다녔던 남편의 그 말, 런던에서는 자전거를 탄 소매치기들이 핸드폰을 낚아채 가는 수법 때문이었다. 참 피곤한 나라구나 싶었다. 가까스로 호텔에 도착해서 또 한 번 놀란 것은 직원들이 모두 인도, 중동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런던에 이민자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아주 많았다. 대부분이 그들이었으니.


짐을 빠르게 풀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영국의 대표 음식, 피쉬 앤 칩스를 먹으러 갔다. 사실 영국 음식은 기대하면 안된다고 해서 정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들어가서일까, 생각보다 괜찮았다. 방금 갓 튀겨 나온 대구살은 입에서 보들보들하게 녹아내렸고, 바삭한 튀김이 맛있었다. 그리고, 칩스. 미국에서는 프렌치프라이라고 하는 것이 영국에서는 칩스라고 한다. 정말 많은 양의 칩스가 나와서 다 먹지도 못했다. 대구에는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아서 후추와 소금을 많이 뿌리고, 레몬까지 짜서 먹었는데 나쁘지 않았다. 물론, 엄청 맛있지도 않았다. 먹을만 했다. 여기서 놀라웠던 점은 가격이 3만원 넘게 나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 가격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었지만 이미 물가가 비싸다는 것은 알고 왔기에 눈물을 머금고 카드를 꺼냈다.


배부르게 먹은 후 테이트 브리튼이라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실 런던에서는 테이트 브리튼보다 테이트 모던이 더 유명한데, 나는 현대미술보다는 클래식한 미술을 더 선호하기에 짧은 3박 4일의 기간동안 정말 좋아하는 작품들만을 보기 위해 클래식 미술관들을 선택했다. 영국 여행의 가장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의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이다. 본인들의 작품이 거의 없고, 대부분 훔쳐오거나 뺏어온 것이기에 양심상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관광객들 입장에선 정말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미술관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테이트 브리튼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 ‘오필리아’를 감상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좋아해서 몇 번이고 읽었던 나는, 오필리아가 굉장히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오필리아는 햄릿 책 속에서 꼭 튀어나온 것처럼 잘 표현이 되어있다. 심지어 굉장히 현실적이고 아름다워서 계속해서 보게 된다. 그녀의 길다란 속눈썹, 물에 젖은 드레스, 그리고 살짝 쥔 듯한 손가락까지, 나는 그 그림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마치 그녀가 나의 앞에서 아름다운 꽃송이들과 함께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두 시간 정도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정말 행복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 그 순간들과 시간들을 그렸던 사람들, 그들의 작품들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미술관에서 나왔다. 다음은 코번트 가든이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성수같은 동네로 갔다. 정말 사람이 많았다. 뉴욕에서 봤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았던 것 같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쇼핑도 할까했지만 너무 비싸서 아이쇼핑만 열심히 했다. 저녁시간 즈음엔 점심에 갑자기 기름진 걸 먹어서였는지 속이 별로 좋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원래는 파이브가이즈에서 햄버거를 먹으려 했지만, 분명 남길 것 같아서 주변에 보이는 베이커리(알고 보니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에서 스콘 하나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사과케이크를 하나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스콘도 엄청 비쌌는데 우리나라 베이커리보다 별로였다. 와보니 정말 음식은 기대하면 안되는 곳이구나, 깨닫게 된 곳이었다. 그래도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모일 정도로 엄청난 매력이 있는 나라였다. 해리포터에서 보던 집들, 화려한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사람들이 정말 친절해서, 무뚝뚝한 폴란드 사람들만 보다가 영국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니 좀 더 생기가 돌아서 좋았다. 런던의 첫 날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화요일 연재
이전 10화외식보다 집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