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나에게 말을 건다

런던에서 깨달은 것

by 싱클레어

이유도 없이 무언가에, 아니 누군가에게 마음이 이끌려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이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할 수 있다. “예술”.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것에 나는 마치 신이 나를 그렇게 빚은 것처럼, 이끌려왔다.


어린 시절, 유독 음악에 큰 관심을 보였고, 피아니스트를 꿈꿨을 정도로 거장들의 음악을 사랑했다. 감사하게도 절대음감을 타고나, 가끔 지나가다 들리는 음악들에 계이름을 붙이고 혼자 흥얼거리기도 하며, 별빛처럼 쏟아지는 아름다운 음악에 눈물을 흘리고, 기쁨의 환호를 지르기도 했다.


미술관에 가면 내 눈이 점찍은 한 작품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그 안에서 뛰놀기도 하며,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행복감을 끊임없이 맛보기도 했다. 그 달콤한 맛은 어린시절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나를 올곧게도 예술이라는 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부딪혀 예술을 놓아야만 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 시기는 꽤 길었던,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기의 반이나 차지하는, 하지만 반드시 내 삶에서 있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에게 얼마나 예술이 소중한지 알게 되었으니. 그리고, 오랫동안 놓았던 책을 다시 잡게 되었던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자괴감과 우울,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 못한다는 생각들의 암막커튼을 세차게 헤쳐 열어젖힌 것은 책이었다. 독서. 독서는 내 마음 속에 살금살금 들어와, 조금씩 내 마음의 아픈 부분들을, 검은색과 빨간색의 그 지우고 싶은 부분들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었다. 나는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런던여행의 둘째날, 2026년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 중에 하나였다고 자부한다. 그 날은 미술관만 두 곳, 박물관 한 곳을 가게 되었던, 피곤함이 예정된 날이었다. 하지만 내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내가, 이 유럽에서 가장 꽃피웠던 예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내셔널갤러리, 대영박물관, 그리고 코톨드갤러리. 이 세 곳을 모두 관람한 그 날, 나는 재밌게도 가장 마지막에 관람한, 그리고 앞의 두 곳에 비하면 아주 작은 갤러리에서 마음 속에 예술에 대한 사랑을 활짝 피웠다.


코톨드 갤러리에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고흐부터, 모네, 드가, 고갱, 르누아르 등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보고 싶지 않은 작품들이 내 주위를 에워쌌다. 마치 그들이 내 옆에 서있는 것처럼, 나는 즐겁게 그들의 그림을 감상했다. 인상주의는 아니지만 나의 마음 속에 꼭 들어온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루벤스의 ‘달빛이 비치는 풍경‘이었다. 달이 떠있는 은회색의 하늘, 그리고 거의 검은색으로 보이는 나무들, 달빛에 비친 호수, 그 앞에 있는 말의 모습. 나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마치 내가 이 작품 속에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표현한 것도, 가로로 색을 칠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 그림 앞에서 나는 사색에 잠겼다.


예술이 아름다운 점은, 작품 자체가 아름다운 것을 떠나서 작품을 보고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그 꿈틀거리는 감정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콘서트홀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피어나는 것, 그것이 기계와 로봇, AI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코톨드 갤러리에서 귀가 잘린 고흐의 자화상을 보며 또 한 번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고, 타히티로 떠난 고갱의 그림을 보며 또 다시 나는 그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드가의 발레하는 소녀들을 보면서 마치 그의 눈 속에 들어간 것처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그가 살았던 지베르니를 상상해보고, 그 곳에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볼 때면, 고흐가, 모네가, 뭉크가, 르누아르가 살아 나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았단다, 나는 이렇게 아팠단다, 너는 어떠니?


콘서트홀에서 클래식음악을 들을 땐, 바흐가, 쇼팽이, 모차르트가 나의 귀에 속삭인다. 내 감정은 이렇단다, 나는 이런 사랑을 했단다, 너는 어떠니?


와지엔키 공원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카프카가, 헤세가, 카뮈가, 니체가 나의 옆에 앉아 함께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작은 글씨 하나하나를 마주본다. 내 생각은 이렇단다, 내가 살았던 때는 이랬단다, 너는 어떠니?


나는 그들의 질문에 모두 대답한다.


나는 당신의 그림을 통해 사랑을 배웠어요.

나는 당신의 음악을 통해 아픔을 배웠어요.

나는 당신의 책을 통해 내 인생을 배웠어요.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들이 간간히, 내 곁에 함께하길 바라며, 그렇게 대답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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