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째 꾸준히 다니고 있는 폴란드어학원에서 친구를 한 명 사귀었다. 다름 아닌, 선생님! 저번 글에서도 썼지만, 내가 수강하는 기초반의 선생님은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심지어 한국사람처럼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했다. 수업이 끝나면 우리는 가끔 한국어로 대화를 하곤 했는데, 알고 보니 선생님과 나는 동갑이었다. 폴란드어를 배우러 왔는데 선생님이 한국어를 너무 잘해서 신기하기도 하면서, 동갑이라는 것에 더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는 선생님의 번호를 물어봤고, 우리는 카톡으로 가끔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는 친구가 된 선생님, 그렇기에 친구라고 부르겠다. 그 친구는 2주 전쯤 나에게 수업이 끝나고 카페를 가자며 먼저 제안을 했고, 시간이 남아도는 나는 그녀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폴란드에서 산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바르샤바를 다 알지는 못하는 나에게, 드디어 생긴 현지인 친구는 컴컴한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달과 같았다. 우리는 시내로 나가,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로 향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나는, 물론 거의 매일 나가서 카페에서 글을 쓰고, 가끔은 관광을 하거나 미술관을 들렀다 오기도 하지만, 사실 오랜 시간을 밖에서 보내지는 않는다. 유럽에서 사는데 집에만 있기엔 너무 아까운 것도 있고(사실은 엄청난 집순이라 그냥 집에만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여러 가지 글을 쓸 때 한 자리에 앉아서 쓰기보단 장소를 바꾸어가며 쓰는 것이 더 잘 쓰이는 탓도, 또 글을 쓰기 위해 사람과 자연을 관찰하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다. 사실 프랑스나 영국, 이탈리아 같은 방대한 문학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나라였다면 더 좋은 글들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폴란드의 적막함과 편안함 또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런 내가 그녀를 따라, 폴란드 사람들의 하루 코스를 경험하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한국에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한국어도 나만큼 하기 때문에 상황이 조금 다를 수는 있지만, 아무튼 현지인과 함께 그 나라를 체험한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커피데스크‘라고 하는 폴란드 카페에 들어갔다. 집 근처에도 작은 지점이 하나 있어서 글을 쓰러 혼자 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나는 말차라떼, 그녀는 커피를 시켜놓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했고, 현재 대학원생인 것 같았다. 바르샤바 대학교의 한국어과는 전체 과 중에서도 경쟁률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어가 그 정도로 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언어인가? 나는 그렇게 물었고, 그녀는 대답했다.
“한국어를 할 때면 행복해. 그냥 행복해. 너무 아름다운 언어야.” 그녀는 k-pop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의 화장품이나 드라마를 좋아해서 한국어과에 지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한국어’를 처음 접한 날, 그리고 그 언어가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무심히 들었던 그날, 한국어가 정말 아름답고, 이 언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직감적으로 했다는 거다.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어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그녀는 한국어과에 입학하고, 실제로 한국에 교환학생을 왔다. 심지어 나의 모교로. 그리고 그녀는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음식을 맛보고, 우리나라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문세가 좋아서 콘서트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그녀는 폴란드로 돌아와서는 브로츠와프라는 지역에 있는 한국 회사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조직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웠고,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관뒀다고 했다. 아마도 한국 회사는 들어가지 않을 것 같고, 앞으로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거쳐 폴란드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녀의 꿈의 중심에 우리나라가 들어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놀랍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한국의 인기(?)가 많이 높아졌다는 것을 외국에 살면서 매일 경험하고 있다. 마트나 빵집에 가면, 2019년도만 해도 내가 중국인이나 일본인인 줄 알던 유럽사람들이 아주 정확하게 나에게 묻는다. “너 한국인이지?” 혹은, 정말 신기하게도 빵집에서 빵 하나를 샀는데 나에게 “고마워요”라는 말과 함께 한국식 하트(손하트)를 날리며 생긋 웃던 젊은 여직원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나와 소품샵들을 돌아다니는데 친구가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나를 데려간 곳엔, 우리나라 아이돌들의 굿즈들을 모아서 파는 가게가 있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젊은 여학생들이 정말 바글바글했다. 나도 방탄소년단의 팬이다 보니 포토카드를 하나 사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잘 찾아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그 후 우리는 아시아 식료품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또 놀랐던 점은, 전에 스페인에서 살았을 땐 매대의 대부분이 중국이나 일본 식재료였는데, 이젠 한국 식재료들이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마트는 거의 70프로가 한국음식들이었다. 큰 냉동고 3개가 비비고 만두코너였고, 불닭볶음면과 한국 라면들이 매대 전체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참기름부터 시작해서 김, 김치 코너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신기한 점은 파란 눈에 금발인 폴란드인들이 유심히 제품을 확인하고 사가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스페인, 독일, 영국에 갔을 때도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한인마트와 한국식당, 한국 화장품 가게들이 작은 소도시에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여기에 왜?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사람들이 항상 많았다.
문화의 힘은 이렇게 강력하구나,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한류가 인기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더니, 그녀는 “아주 아주 인기가 많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라고 말했다. 3시쯤 되자, 그녀는 대학원 수업이 있다며 가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즐거웠다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같이 수업에 들어가 볼래?”
외국인이 배우는 한국어수업에 들어가서 뭘 하겠냐,라는 생각이었지만 궁금증이 앞섰다. 이 친구들은 도대체 한국어 수업 때 뭘 배울까? 나는 그녀를 따라가 보기로 했고, 우리는 바르샤바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수업이 시작된 뒤라, 그녀는 나에게 잠시 문 앞에서 기다려달라고 했고, 나는 잠자코 있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그녀가 나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폴란드 학생들이 둥글게 앉아있는 강의실로 들어갔다. 한국인 교수님은 나를 보고 놀라서 입을 떡 벌리셨다. “데려온 친구가 한국인이었어?” 그의 첫마디였다. 나는 친구의 옆에 앉아 교수님과 짧게 대화를 했는데, 그는 대체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거냐며(바르샤바에 한국인이 많이 없어서 반가워하는 기색이셨다), 폴란드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나는 한국어로 나에 대해 소개를 했고, 그들은 내 말을 다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이어진 수업에서 또 한 번 놀랐던 것은, 이 학생들이 이광수의 무정을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무정이라. 내가 고등학생 때 배웠던 소설, 이제는 줄거리도 가물가물한 그 소설이 아닌가! 한 줄 한 줄씩 읽으면서 교수님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데, 학생들이 꽤나 똑똑했다. 발음은 조금 서툴렀지만, 수준 높은 질문부터 교수님의 어려운 설명을 다 알아듣는 것도 내게는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2시간이 넘는 수업을 들으면서, 나도 몰랐던 무정의 줄거리, 그리고 생소한 단어들을 배웠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대학수업이었다. 마음이 풍요롭게 차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근처 한식당에 가서 순두부찌개와 비빔밥을 먹고, 나는 집으로, 그녀는 어학원으로 향했다.
해외에 나와보니, 우리나라, 사랑하는 나의 모국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는 것 같다. 유명하지 않았을 때도, 2019년도 스페인에서 온갖 인종차별을 당하면서도, 나는 가슴 한 구석에 내 나라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 하면, 트렌디한 나라, 더 이상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문화강국, 2026년도 폴란드에서도 나는 우리나라를 똑같이 애정한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장 큰 안정감과 위로는 돌아갈 곳, 나의 나라인 것 같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품에 안아줄 우리 부모님과 같은 그 광활한 품. 8시간이나 차이 나는 이 먼 나라에서 오늘은 우리나라를 가슴속에서 살며시 꺼내 따듯하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