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책을, 많이, 빨리 읽으면 좋은 거 아니었어?
“선생님, 만화책 읽어도 돼요?”
새 학기 첫 아침 독서 시간에 절대 빠지지 않는 질문입니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똑같은 책도 참 좋아하더라고요. 그때마다 제가 했던 소리가 있습니다.
“만화책 말고 글 책 읽자.”
“어제도 그 책 읽었잖아~ 오늘은 다른 책 읽어보자.”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한 순간.. 똑똑해지려는 아이들을 내 손으로 가로막으려 했다니요.
여기서 그게 왜?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꼭 아래 글을 정독해주세요.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은 참 똑똑해 보입니다. 하지만 교실에 있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보고 들은 것이 많아 아는 것이 많아 보이는 것이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문해력)은 바닥이라는 것을. 5학년을 대상으로 교과서 텍스트 중요 부분에 ‘밑줄 치고 형광펜 칠하기’를 스스로 하도록 해보면 대체 왜 여기에 그은 건지 싶을 정도로 의미 없는 곳에 색칠놀이를 해놓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계중에 배우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표시할 뿐 아니라 코넬식 요약도 한 번만 가르쳐주면 아주 잘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공통점이 책을 좋아한단 걸 발견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애주기별 독서량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기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져 고학년에 비슷하게 완만한 곡선을 보입니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에 바닥을 치고 세계에서 가장 책을 읽지 않는 나라의 어른이 됩니다. (세바시 - 최승필 ‘공부머리 독서법 저자’의 강연 중)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은/ 못하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공부량이 늘어나면서부터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초등 저학년 때 독서의 즐거움과 방법을 잘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린 시절 체화된 책과의 친밀함, 그로부터 얻는 지혜와 사고력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상상 이상의 투자입니다. 특히 인공지능이 수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빅데이터로 정보가 넘쳐나는 미래사회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은 공감능력, 창조적 상상력, 문제를 찾아내고 질문하는 비판적인 사고력, 문학과 인문학을 통한 철학적 사고, 나와 내 주변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 등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자신의 삶을 방향을 잘 설정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키우는 데에 독서교육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공감하며, 다양한 시선을 배워 자신을 확장하고, 비판적인 사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부끄럽게도 저도 저 그래프 수치에 한 몫하는 1인으로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어쩌다 책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1년 간 제가 엄청나게 많은 성장을 한 것을 보며 독서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이전에는 아이들에게 ‘책 읽자, 독서는 중요해.’라고 말하면서도 영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힘을 체감하니 아이들에게 제대로 독서의 재미와 방법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림책/독서 교육에 대해 많이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른들이 아이들의 독서교육에서 통념적으로 실수하는 것들을 깨달아 그 부분을 공유하려 합니다. (by 최승필 독서교육전문가)
1. 독서 편식?
이 말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편식’은 음식에 쓰는 말로, 책은 식사가 아니라 문화입니다. 취향에 따라 한 가지에 꽂히는 게 당연한 것인 거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충분히 자신의 관심 분야를 읽어도 됩니다.
2. 똑같은 책을 반복하면 안 된다. 다양한 책을 읽히자?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건 아주 똑똑해지고 그 책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일입니다. 그 책 속의 문장, 문단 구성, 문체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걸 막는다면, 나 똑똑해질래 하는 아이를 막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3. 다독은 좋다?
무조건 많이 읽는 게 좋다?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가 떨어졌는데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책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됩니다.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만큼만 읽도록. 더 이상 읽으려 하지 않을 땐 과감하게 멈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4. 속독은 좋다?
속독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주 말해주세요. “책은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는 거야.”
5. 수준 높은 책이 좋다?
아이가 책을 읽고 이해하면서 재밌게 읽고 있는 상태가 잘 읽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말) 하지만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수준 높은 책을 읽어야 책 읽는 능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흥미가 없고 언어 수준이 높은 책은 아이가 책을 들고는 있지만 읽지는 않는 그 어딘가의 상태(교실에서 흔히 보이는 광경)가 되도록 합니다.
반대로 책을 제대로, 재밌게 읽으려면 첫 번째로 아이의 관심사여야 하고, 두 번째로 아이의 언어 수준에 맞아야 합니다. 자신이 흥미 있어하면서도 알맞은 언어 수준의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언어 능력은 바로 올라갑니다. 수준 높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상태가 중요한 것이지요. 즉 최승필 독서교육전문가의 말대로 정리하면, 독서는 아주 단순합니다.
흥미와 관심이 가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즐기는 것
사실 아이들을 위한 독서교육이라 했지만 세계에서 책을 가장 읽지 않는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 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경제 관련 서적에 꽂혀서 아주 편식을 제대로 하다 어느 순간이 되니 인문학, 철학과 같은 곳에도 눈이 가더라고요. 경제 서적만 읽을 때 너무 한 분야만 읽나? 하고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그것이 너무도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책벌레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던 제가 1년 간 느낀 책은 제 사고를 훨씬 더 지혜롭고 유연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제 삶과도 연결되어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늘어나며 삶이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과서 같은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고 자녀를 둔 부모나 교사라면 아이들의 독서교육도 함께 좋은 방향으로 끌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