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뉴스를 처음 만든 사람

우리라고 하면 믿어주실래요?

by 이승준

이후로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K 이사님을 뵈었다. 매주 기획서를 수정하고 비즈니스에 대해서 배웠다. 아직 졸업도 안 한 대학생 세 명이 배워야 하는 세상은 아주 많았다. 한 번은 서울대학교에 사무실을 얻을 때였다. '사무실이 7평이라고? 그러면 운동장에 가서 7평을 실제로 그려봐.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봐.' K 이사님은 사전에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했을 때 움직여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셨다. '그러면 넓이에 대해 감이 좀 올 거야. 직접 해볼 수 없으면 간접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아무것도 모를 때 닥쳐서 하는 것만큼 불안정한 건 없으니까.'


투자도 마찬가지야.


K 이사님은 우리에게 투자하신다고 했다. 사업을 하기 위한 플랫폼 개발사도 이미 골라 놓으셨다고 하셨고 필요한 자금 계획도 세워 놓으셨다고 했다. 다만 아직 뭔가 불안하다며 계속해서 기획서를 수정하고 있을 때였다. '정말 이런 좋은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줄까?' 우리는 해봐야 아는 것 아니겠냐며 반문했지만 K이사님은 검증할 방법을 궁리하시다가 입을 떼셨다.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 10만 명 정도 만들어 봐. 투자는 그다음에 진행하자.'


10만명.jpg 그러니까 대충 이 정도 사람을 모으라는 건데...


대체 무슨 수로 사람들을 착한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하지? 늘 콘텐츠라는 건 항상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는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가고, 사회공헌이나 좋은 뉴스는 묻혀버린다는 게 정설이었다. 당시 조금 팔로워 괜찮다는 페이스북 페이지는 대부분 저작권을 무시해가며 퍼가는 콘텐츠들 탓에 '페북충'이라 불리며 콘텐츠의 질도, 인식도 좋지 않았고 그런 시장을 조사하면서 갈수록 암담해졌다.


페이스북 안에서 레퍼런스는 못 찾겠다.


나는 서점으로 갔다. 뭔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문득 시선이 간 곳이 있었다. 잡지 코너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이었다. '뭔가...' 나는 잡지를 들고 한참을 보다가 아이패드에서 어젠가 내셔널지오그래픽 디지털 매거진을 추천하던 게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구매한 후에 보다가 문득 생각났다. '이거 페이스북 이미지 UI (User Interface: 사용자가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방법)랑 비슷한데?' 나는 S와 Y를 모아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카피라이터고 Y는 디자이너니 우리 사람들이 하루에 간단히 볼 수 있지만 퀄리티는 높은 미니 웹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가 카드 뉴스의 시작이었다.


요는 간단했다. 한 가지 이야기를 가지고 몇 장의 이미지 안에 스토리텔링으로 한 장 한 장 카피라이팅을 하고, 그 무드에 맞추어 디자인 템플릿을 만들어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웹진 형태의 콘텐츠를 매일 만들어 올리는 것. 막상 콘셉트는 잡았지만 처음에는 운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소재처가 많지 않았고 또 드러나지 않았던 터라 뉴스, 블로그, 신문, 기타 등등에서 닥치는 대로 찾아내었다. '우리 타깃은 빠르게 콘텐츠를 이해하길 원해. 하지만 좋은 이야기들은 기승전결이 분명해야 하고 스토리 전체를 이해해야 하면서도 몰입도 시키고 감동까지 줘야 해.' 카피라이팅도 쉽지 않았다. 10장 내외의 이미지 안에서 그 모든 걸 충족해야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가지 시도 끝에 드디어 페이지를 하나 만들었다. 2014년 2월의 일이다.


옛날 Better.bmp https://www.facebook.com/ilikebetter 지금은 다른 좋은 분들이 운영하고 계신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 초마다 울려대는 알람 탓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기뻐했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어느 날은 200만 명이, 어느 날은 300만 명이 봐주었다. 날이 갈수록 반응은 폭발했고 기사에서도 우릴 다루기 시작했다.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우리의 콘텐츠는 페이스북에서만 1억 회가 도달했고, 여기저기 불펌해가거나 퍼져나간 것 까지 합하면 2억 회는 도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뭐 좋은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좋은 거겠지.' 어느 날 우리 로고를 잘라서 페이스북으로 불펌 금지라는 워터마크를 달고 올라온 타 커뮤니티에서의 우리 콘텐츠를 보며 그게 뭐라고 웃으며 했던 말이었다.


우스갯소리지만 어디 가서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를 소개하는 일이 꽤 힘들었다. 카드 뉴스라는 단어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항상 '슬라이드 이미지 형태의 스토리텔링 이미지 콘텐츠'라고 말했다. 그게 대체 뭐냐고 묻는 어른들의 질문에 그냥 디자인 잘 된 이미지 몇 장에 이야기를 쓴 거라며 한 번 그냥 보시라고 URL을 줄 뿐이었다. '이 이야기에 100만 명이 반응합니다.' 하고 나면 끝이었다.


5.png 단 하루를 제외하고 우리는 매일 스토리를 올렸다. 그 날은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여기저기서 우리의 콘텐츠 포맷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커지는 거니까 좋은 일 아니겠어?' K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더 따라 하게 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에 익숙해지게 하자. 남들이 우릴 따라올 때쯤에 우리는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면 되는 일이니까. 지금은 파이가 커진다고 생각하자고.' 그리고 다음 말도 잊지 않으셨다. '이제 투자 준비 하자.'


수 백개의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만 소개해볼까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뤘던 콘텐츠. 아직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사회적 기업 빅워크를 소개했던 콘텐츠. N포털 메인에 소개되었을 때 보다 다운 수가 많았다며 우리를 초대했던 기억이 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진 전시회 이야기.

기름 유출을 온몸으로 막은 두 영웅의 이야기.


이 밖의 이야기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골라 책으로 담은 것이 이 글 하단에 링크되어있는 '1도씨 인문학'이라는 책이다. 출판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는데 책으로 출판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어떡할까 고민하던 차에 K 이사님이 꽤 규모 있는 H 출판사의 한 주간을 소개하여주셨었다. 그 주간은 처음에는 정말 진지하게 임해주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아무 인수인계 없이 조용히 회사를 퇴사하는 바람에 몇 달 동안 고생했던 모든 것들이 날아가버릴 뻔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좋은 출판사를 만나 출판이 되긴 했지만 이건 나중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투자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대표 격이었던 S가 투자 발표를 맡기로 했다. '뭐 별거 있겠어? 형님들 나 믿잖아?' 걱정이 반이었지만 자기가 잘 해보겠다고 하니 우리는 그러려니 했다. 이 중대사를 그르칠 일도 없을 것이고 당시 우리는 한창 기분이 업되어 앞으로의 계획을 잘 짜는데 집중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우리가 지원했던 청년창업 사관학교 발표 준비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어야 했다.


1.JPG 처음에는 참 못 만들었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S는 사전 투자 피티를 말아먹었고 얼마 안 가서 그만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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