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에도 없던 대표이사

드디어 투자

by 이승준

본격적인 투자 피티가 있기 전 우리 세 사람과 K이사님은 함께 워크숍을 갔다. 간단한 모의 피티도 할 겸 그간 페이스북 페이지 Better의 성과를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내심 모의 피티가 계속 불안했지만 그래도 S는 여태 해온 일이 있는데 자기를 못 믿겠냐면서 연습 한 번 하는 모습 보여주지 않은 채 워크숍을 즐겼다. 그리고 시작된 모의 피티는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버벅거리고,
틀리고,
애매모호한.


그야말로 최악의 피티였다. K이사님은 창업경진대회 전날 밤처럼 화를 내셨다. 투자를 받으려면 법인을 세워야 하고 대표이사 자리를 예정하고 있던 S였기 때문에 그 분노는 더욱 대단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 각오라면 애초에 사업 같은 거 할 필요 없었다며 투자는 없던 이야기로 해야 될 것 같다는 말까지 하셨다. S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렇게 가시방석 같았던 워크숍을 끝내고 돌아온 직후였다.


가난한 스타트업에게는 도시락이 제격이지.


'형들 나 여기서 그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S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어찌 보면 예정되어있던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가장 어린 나이였고 고집 센 성격 탓에 Y와 나를 여러 번 지치게 했던 S였다. 한 번은 S가 마케팅 전략이라며 주변 사람 100명에게 서약서와 함께 만 원의 기부금을 받아오자는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었다. Y와 나는 그 의견을 6시간이 넘게 뜯어말리려 했지만 막무가내였던 S를 막을 수가 없었다.


무조건 이득이잖아? 왜 안 하겠다는 거야?


우리가 들여야 하는 시간과 그에 대해서 따라오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Y와 나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S는 10이 아니라 1이라도 긍정적인 일이라면 왜 하지 않느냐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친구가 서른 명씩도 없냐면서 오히려 역정을 냈다. 결국 지친 우리는 S가 서약서 열 장을 먼저 모아 오면 Y와 나도 해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그 이후 S는 그걸 시도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서약서의 서자도 꺼내지 않는 걸로 봐서는 실패했으리라 추측만 할 뿐이다.


심지어 중요한 의사결정도 몰래 독단적으로 처리해버리기도 했다. '형님들 우리 예비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 선정되었어.' 청년창업 사관학교에 서류가 통과했던 우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원금부터 1/3 정도 적은 사업이었다. '우리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잖아? 사회적 기업이 대네외 적으로 더 좋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청년창업 사관학교는 취소했어. 나 한 번 믿어봐.' 믿기는 커녕 나는 S의 그 선택을 두고두고 원망했다.


그렇게 법인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끝까지 (주)를 앞에 붙여주더라.


어쨌든 S는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남은 건 Y와 나 둘 중에 누가 대표이사를 맡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안 할래요. 자신이 없어.' Y가 뱉은 말이었다. 자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완고한 Y의 거절 탓에 나는 홀로 K이사님을 찾아갔다. '이사님은 Y와 저 중에 누가 대표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K 이사님은 어이없이 웃으시면서 한 마디 보탰다. '그딴 것도 내부적으로 결정 못한다면 어디까지 실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잘 들어, 투자가 한 번 시작되고 사업에 뛰어들면 그때부터 인생은 이상해지는 거야. 알아들어? 잘못되거나 망치는 게 아니라 인생이 이상해진다고.'


나는 집에 돌아와 그 말을 곱씹으며 밤을 새웠다. 차라리 인생이 뭐 된다는 말을 들었더라면 더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이상해진다니 무슨 말일까, 어떤 책임감과 마음으로 대표를 맡아야 할까. 여기서 멈춰야 할까. 우리는 아직 사업이라는 걸 접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가 아닐까. 아직 각오가 부족한 건 아닐까. 결국 날이 밝았고 나는 선택해야 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를 따를 것. 그것이 내가 대표를 맡으면서 걸었던 Y에게 걸었던 조건이었다.


이제 다시 같이 볼 일은 없겠지.


대표가 바뀌고 투자 피티는 일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카메라 세 대를 세워놓고 연습만 30번은 한 것 같다. 사소한 손동작 하나까지도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했다. 그렇게 우리는 투자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받는 과정도 사실 순탄하지는 않았는데 당장 내일 투자금이 들어가야 하니 사업자 등록증을 하루 만에 받아오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당시 세무서의 시스템은 자동화되기 전이었으므로 우리는 관계자 승인이 떨어지기 전까지 최소 3일 정도 걸린다는 세무서 직원의 말에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그때 Y가 나서서 해결해보겠다며 지금 담당자가 어디 있는지 위치를 물어본 뒤 홀연히 나갔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서류 보냈다고 하니 확인 한 번만 해주세요.


나중에 알아보니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가서 대학생 창업에 대해 진지하게 상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두 시간 정도 조언을 듣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 이런 학생들이 창업을 해야지.' 라며 흔쾌히 서류를 내주었다고 한다. 참, 원래 우리 회사 이름이었던 플랜 씨는 관할 지역 내에 존재하는 법인이 있다며 등록할 수 없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다가 카드 뉴스를 발행하던 Better라는 채널의 B도 매력적이었고 To be~ 라는 문구의 이중적인 의미를 따와 플랜투비 (Plan2B) 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사업자 등록증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주)플랜투비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유상증자의 형태로 5천만 원의 투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직원도 한 명 뽑았다. 나는 경영과 원래 하기로 했던 프로젝트에 몰두하기로 해서 기존에 발행하던 카드뉴스의 글을 쓸 수 있는 카피라이터를 뽑아야 했다. 신중하게 이력서를 받고 면접을 보며 우리와 뜻이 맞을 수 있는 사람을 골라야 했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콘텐츠를 책임질 사람을 뽑았다. 나는 경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80장에 달하는 사규집을 만들고 손익계산서와 재무제표를 공부했다. 축적된 유저 추이 데이터를 가지고 3년 치 분기별 유저 시나리오를 세 단계로 나누어 예상 추이를 기록하고, 그에 따른 추정 손익계산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모든 수치에 대한 이유를 만들기 위해 수백 장이 넘는 주석을 썼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카피라이터를 자처하던 나에겐 말 그대로 팔자에도 없었을 일이었다.

프로젝트 하나당 필요한 시간 기획표. 8시간당 사람 한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를 약 5개월, 우리는 서울대학교 창업센터의 계약기간이 끝난 관계로 이참에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하고자 했던 웹 플랫폼을 준비함과 동시에 하려고 했던 본격적인 사업, 사회에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해 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예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고 팔로워는 꾸준히 늘어갔다.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가 만나러 가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고 부탁을 하는 횟수보다 받는 일이 많았다. 우리 페이지를 소개라도 하려고 하면 이미 그 사람은 좋아요를 눌러놓은 상태였다.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우리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다음 사무실로 강남역 뱅뱅사거리를 예정했다.


여기서 저기서 그냥 아무칸이나 누르고 이 숫자 왜 나왔어? 하고 물어보면 버튼 누른 것 처럼 답이 나올 때 까지 연습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게 잘 돌아갈 줄 알았다.

여담으로 6년의 연애가 끝난 것도 이때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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