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도와주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대학교 창업보육센터의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새로 프로젝트를 맡아 기획하고 진행할 새 식구를 한 명 더 들였고, 슬슬 새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 어디가 좋을지 대충 '사무실'이라고 검색해보니 뭔가 잔뜩 나왔지만 보증금과 월세를 생각해보면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뭐라고 검색을 해봐야 하나 하면서 '저렴한 사무실', '보육센터' 같은 검색어로 열심히 찾아봤던 것 같다. 당시 우리가 있던 보육센터는 서울대학교에서도 안쪽 깊숙이 있다 보니 '출근하는 길이 꼭 산속에 도 닦으러 가는 것 같아요.'라든가 '우리도 사람 많고 편의점 가까운 사무실로 가요.'라는 말도 나왔었다.
그냥 턱을 괴고 여기저기 검색하면서 고민하던 중에 문득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강남역에 있는 어떤 코워킹 스페이스였다. 4인용 단독 사무실도 제공하면서 카페테리아 사진도 근사해 보였고 보증금이 저렴했다. 월세는 대학교 보육센터보다 부담스러웠지만,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보다는 저렴해 보이는 금액이었다. 강남역이라는 위치도 나름 메리트 있어 보였고 입주자 혜택이라며 나열된 것들도 잘만 이용하면 매력적일 것 같았다.
우리는 강남으로 갑니다.
그렇게 플랜투비의 두 번째 사무실이 정해졌다. 작은 화물벤을 빌려서 이사하기로 했다. 고작 네 명 있던 사무실이었는데 무슨 짐이 끝도 없이 나오냐며 웃었다. 짐을 배치하면서 문득 깨달았던 건 사무실이 생각보다 굉장히 좁았다는 사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머지 불만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지개라도 켜면 옆 사람이 닿을 것 같았다. 창 측 사무실이었지만 환기도 원활하지 않았고 뭔가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기분이었다. 카페테리아는 분명 인터넷에 있던 사진과 같았지만 뭐랄까, 여러 각도에서 다르게 촬영한 사진들을 넓어 보이게 배치해 보여줬던 것에 불과했고 실제로 일하기에는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 회의실은 마음 편히 쓸 수 있을 만큼 시간도 보장되지 않았고, 보장한다던 입주자 네트워크는 참여하겠다는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신청한 사람들은 전부 우리 업종과 상관없는 회사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었다.
매력적일 것 같던 입주자 혜택은 기한이 이미 지났거나 신청하기 굉장히 까다롭거나 기존에 받던 혜택과 중복이 되지 않아 받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인쇄마저 유료였고 무엇하나 편한 구석이 없었다. 좋았던 것은 단 하나, 명함에 새겨져 있는 주소였다. '와 강남에 계시네요? 역시 잘 나가시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는 것. 근처에 사람이 많고 좋은 카페가 많았다는 것. 말고는 무엇하나 편한 구석이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유쾌하게 일했다. 비슷한 나이였던 우리는 말 그대로 수평적인 분위기였고 무엇보다도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조직에 대해 실망하고 차린 회사였던 만큼 우리 회사 안에서 만큼은 모두가 좋은 사람이길 바랐던 것도 강했다.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가장 쓸모없는 선물 사주기 대회를 열거나 가장 창의적인 장난으로 만우절 보내기 같은 이벤트를 했다.
우리는 페이스북에서 12만 명의 구독자를 만들었고 드디어 본격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해주는 사람들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의 응원으로 확인시켜주고 기업의 CSR 예산을 후원금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플랫폼, Better의 개발이 우선과제로 주어졌다. 웹을 개발하는 동안 첫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해 줄 단체를 찾는 것이 당장의 목표였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주던 콘텐츠의 질을 정말 대폭 높여서 디자인적으로 봐도 손색없을 정도의 웹닞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웹을 개발해줄 회사는 내가 학창 시절 때 알던 학회장 형을 통해 부탁하기로 했다.
UI / UX를 한창 전공하고 졸업한 터라 웹 디자인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어있었다. 와이어프레임을 그리고 Y에게 디자인 그래픽을 넘겼다. 버튼 하나하나에 설명을 달고 모든 페이지 요소 길이나 구성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디자인에 들어갈 비용을 최소화하여 어떻게든 개발비를 아낄 요량이었다.
개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간단한 코딩 정도는 읽을 줄 아는 편이 훨씬 소통하기에 수월할 거라 생각했고, 간단한 html이나 css 코딩 수정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ilikebetter.com 도메인과 서버를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너무 욕심이 과했다.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순수히 개발로 만들려던 우리의 계획은 마구 충돌하기 시작했다. 느리고, 처음 설계만큼 생각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소통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2천만 원 가까이 들어간 개발비를 생각하며 어떻게든 더 나아지도록 하고 싶었지만 이미 설계도를 우리가 만들어 넘긴 시점에서 개발이 되고 발견되는 문제들의 책임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었다.
학부생 레벨로 자신감에 넘쳐 만든 기획서는 전혀 실전을 고려하지 못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아이디어는 그 상태로만 핑크빛이었지 구현된 이후의 사용성은 형편없었다. K이사님과 회사 내부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불만을 정리하고 다시 기획하고 다시 정리해서 학회장 형을 통해 수정을 요청했다. 기획자로써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 질타들이 너무나 버거웠고, 계약에 없던 수정사항들을 부탁해야 하던 그 전화들도 나에게는 너무 미안하고 어려운 일들이었다. 그러기를 수차례, 계약 기간 이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이거 수정사항 이번까지는 받아주겠는데 이만큼 해도 거의 홈페이지 하나 만드는 수준인 거 알지? 개발 이후 보수라고도 보기 힘든 거 너니까 받아서 수정해주긴 했는데 다음에는 이런 전화 안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직 이야기하지 못한 수정사항이 적힌 노트를 손에 쥔 채로.
나도 알고 있었다. 수정을 받아주는 입장에서도 그게 얼마나 참아준 건지. 하지만 이런 수정사항들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도 알고 있었기에 중간에서 그 말들을 서로 필터링하여 전하는 과정들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 쪽에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온전히 양쪽으로 내 책임이었으니까. 앞뒤로 끼어서 그렇게 치이는 동안 결국 웹은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일단락 지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양쪽에 내건 해결책은 운영해가면서 돈을 더 벌어 완전히 새로 개편하자는 말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플랫폼은 콘텐츠 스토리지 정도로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개편되는 일은 영원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