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첫 광속 탈락.
강남으로 거처를 옮긴 우리는 드디어 프로젝트를 시작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사업인 '사회에 재미있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해 주는 일.'의 시작이었다. 2015년 새해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평소 관심 있던 대학생 광고동아리에 연락을 했다.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창의적인 기획과 실행이 필요하다며. 혹시 우리가 지원해줄 테니 한 번 해보지 않겠냐며 물어보았다. 결과는 흔쾌히 수락.
바로 다 같이 모여서 우리 회사 회의실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회의실 공간을 내주었다. 나와 디렉터 한 명이 회의에 참여해서 그들의 의견을 실행 가능하도록 되짚어주는 일을 하기로 했고 그 외에는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첫 프로젝트인 만큼 내 마음은 조급함이 조금 섞여있었나 보다. 기획이 뭔가 아쉬운 부분들만 남았다.
만족스러울 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래 걸렸다.
약 한 달을 회의하던 끝에 우리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었다. 글을 처음 배우신 어르신들과 글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젊은 사람들 사이에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어떨까, 첫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인사의 의미도,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오가는 문장의 의미도 울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곧장 복지관의 문해교실에서 글이라는 걸 생전 처음 배우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섭외했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우리는 이 편지를 그림을 배우시던 어르신들의 그림과 함께 엽서로 만들어 카페에 배포하고 커피를 주문한 손님들에게 나누어주며 답장을 회수하기로 했다.
카페를 섭외하는 일은 조금 어려웠다. 조금이라도 사람이 많이 오는 카페를 찾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들까 고민했었다. 발품을 힘들게 팔아 카페 두 곳을 섭외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바구니를 여러 개 사서 메시지와 함께 펜과 엽서를 넣어두어 누구나 가져갈 수 있게 만들었고 커피를 시킬 때마다 우리가 직접 가져다주며 엽서를 함께 전달하기로 했다. 그리고 카페 안에는 작은 우체통을 준비하여 자유롭게 넣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zn7x0V40SQ
결과는 재미있었다. 보람도 느껴졌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시간은 조금 들었지만 어찌 되었건 첫 번째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우리는 곧바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전부 기획을 하고 실행할 팀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획에 들어가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실행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느 정도의 속도가 나오는지 실험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프로젝트. 새해 복 세 배로 드리기가 탄생했다.
한복을 입은 소녀가 소방서, 경찰서 등을 돌아다니며 세배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사람들에게 사연을 받아 편지와 함께 세배로 깜짝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내용의 프로젝트였다. 홍보가 안되어서 신청자가 적어 처음에는 혹시 실패하진 않을까 약간 걱정했지만 인사를 받은 사람들이 곧바로 신청하고 신청하는 바람에 보기 좋게 성공했던 프로젝트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DcF80jGHk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예비 사회적 기업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S가 신청해버리고 간 예비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덕에 우리의 사업방향은 사회적 기업으로 흘러갔고, 후속 투자 역시 사회적 기업 펀드에서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첫 번째 조건이 예비 사회적 기업 선정이었다.
그동안의 성과와 퍼포먼스로 서류를 꾸리고 유선과 이메일로 사전 검토를 진행했다. 결과는 문제없음. 우리는 그렇게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지만 뭔가 마음 한 구석 불안함 때문에 마감 며칠 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조합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안 돼요 이거
미처 앉기도 전에 서류를 들춰보던 담당에게서 나온 단답이었다. '뭐가 문제인가요?' 그는 Y의 급여 상태를 손으로 짚으며 말을 이었다. '최저시급 밑으로 받고 있네요? 이거 불법이야. 안돼 안돼.' '아니 그 친구는 등기이사고 계약서도 그렇게 썼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Y와 나는 임원이었고 수익이 발생할 때까지 월 100만 원 정도만 가져가기로 했었다. 그때까지 임금에 대한 규정은 직원들에게만 지켰고, 우리는 조금만 고생하자는 생각이었다.
'이거 불법이라니까요? 사회적 기업 신청한다는 사람들이 이래서 쓰겠어?' 그는 반말을 은근히 섞어가며 짜증을 냈고 돌아가라는 말뿐이었다. '아니 임원이라니까요? 지분 가치가 이 정도 있고 이미 지급받았는데 왜 월급이 문제가 되나요?' '아 글쎄 안 된다고요. 이사건 임원이건 규정이 이런 걸 나더러 어쩌라고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월급이 최저시급 이하면 이거 신고감이야. 안돼.' '아니 방법을 알려달라고요.' '안 되는 거라니까요? 이제 일어나도 되나요?'
속이 터졌다. 한 시간을 넘도록 무의미하게 그러고 있었다. 너무 완강한 탓에 윗사람을 불러달라고 했으나 자기가 유일한 책임자고 바쁘니 그만 시간낭비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 뿐이었다. 나중에 밀린 월급을 후 지불했다는 식으로 서류처리를 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무서와 이야기하며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너무 늦었었다.
우리의 사회적 기업 도전은 거기서 말도 안 되는 사건으로 일단 광속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