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프로젝트 뒤에
시작된 대출의 늪

인생 첫 대출, 960만 원

by 이승준

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지원금도 말라갔고 투자금도 빠르게 줄어만 갔다. 어이없는 예비 사회적 기업 탈락으로 후속투자도 불투명해졌고 우리의 수익모델은 너무 멀리 있었다. 애초에 길게 봐야 하는 사업모델이라 하더라도 짧은 수익모델을 중간중간 마련했어야 했는데 그런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몇 달 더 버텨볼 생각으로 대출을 알아보기로 했다. Y에게 상의하기를 '내가 일단은 대표니까 먼저 대출 좀 알아볼게. 나중에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네 신용도는 깨끗하게 남겨놓자.'라고 말했다.


사회 초년생이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생각보다 큰 금액이 아니었다. 급상여 명세서 뭉치를 들고 이리저리 다닌 끝에 나는 새 희망 홀씨대출이라는 걸 받을 수 있다고 안내받았고 월 100만 원씩 찍혀있던 내 명세서로는 받을 수 있는 한도가 960만 원 정도였다. 대출 이름 참 이쁘다고 생각하며 그거라도 어서 달라고 채근했다. 다행히 월급 더 안 밀리고 몇 달 더 버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자가 월 10몇 만 원씩 나갔지만 뭐 상관없었다. 그저 회사가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마냥 안도했다.

intro title-01-01.png 우리의 세 번째 프로젝트, 꽃 사용법.


다음 프로젝트는 우리가 기획 반 실행 반 정도의 비율로 참여해 보기로 했다. 속도와 외부 의존도를 둘 다 챙겨보려는 심산이었다. 프로젝트 기획서 초안을 서너 개 마련한 후에 실행할 단체를 섭외하고 마련한 기획서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꾸리는 방식이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회의도 빠르게 진행되었고 실행도 빨랐다. 우리는 밸런타인데이를 맞아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꽃 사용법.
잊고 있던 마음을 전해 보세요.


9047fc91713af127106ab4627039bc68.png Call someone you love 프로젝트의 제작자 Matt adams. 인터뷰도 했다!


뉴욕의 영상기자로 활동하던 Matt Adams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해보라며 공중전화 부스에 동전을 붙여놓았던 Call someone you love라는 프로젝트와 성격이 비슷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마로니에 공원에 철망을 하나 설치하고 한 송이씩 정성 들여 포장한 장미꽃을 꽂아놓은 뒤에 누구나 한 송이씩 가져가도록 만들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그 꽃을 들고 찍은 즉석사진 한 장씩을 남겨놓고 가야 했다.


프로젝트를 만들면서도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았는데, 먼저 양재 꽃 시장을 돌며 시세를 파악해야 했다. 한참 꽃이 잘 나가는 시즌이었으므로 프로젝트 당일 꽃의 컨디션과 가격이 적당히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 두어 번 꽃시장을 방문해야 했다. 그리고 꽃집에 들러 꽃 한 송이씩 사보며 어떻게 포장하는지도 어깨너머로 슬쩍 배우고 부자재를 사다가 이것저것 실험해봐야 했다. 특히 철망을 들고 강남에서 대학로까지 가는 길이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날, 밸런타인데이의 마로니에 공원에는 우리가 뿌린 장미꽃으로 여기저기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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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백여 송이 준비했던 장미꽃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AgnrDtVpwvE

Better Project #3 꽃 사용법


여전히 돈은 문제였다. 프로젝트는 예쁘고, 재미있고, 보람도 있었고 계속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인지도도 올라가고 사람도 모이겠다 생각은 들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당장 월급날 생각으로 가득 차버리기 일쑤였다. 한 달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이유 없이 숨이 턱턱 막히거나 한숨이 잦아졌다. 그때 K 이사님이 권유로 나는 신용보증기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몇 달은 더 버틸 재간이 있었기에 마련한 사업 기획서를 가지고 끊임없이 손익을 계산했다. 하지만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유저가 너무 낮았고 우리의 콘텐츠를 출판해주겠다던 주간이 도망가는 바람에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상수익이 전혀 없었다.


그 없는 와중에 나는 발악을 해가며 유저 시나리오를 그렸고, 결국 그럴듯한 마케팅 플랜과 그래프를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결국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해야 했다.


그렇다고 프로젝트에서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꽃 사용법을 기획하면서 마련한 기획서들 중에 뭔가 아까운 기획이 있어서 살려보기로 했다. 원래 기획은 여러 명이 쓰레기통을 들고 거리에서 대열을 만들어 행진하는 등의 퍼포먼스였으나 이걸 좀 더 다르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모델이 쓰레기통을 메고
길거리 런웨이를 하면 어떨까?


메인.jpg 네 번째 프로젝트, 쓰레기 바로 버리기.


우리는 패션디자인 학과 하나와 모델학과 하나를 섭외했다. 패션디자인 학과에서는 모델이 메거나 입을 수 있도록 쓰레기통을 제작했고 모델학과에서는 이를 메도 길거리에서 런웨이를 할 모델을 추렸다. 마침 DDP에서 패션위크를 진행하던 때여서 우리는 DDP 앞마당, 홍대, 가로수길, 한강을 프로젝트 진행 장소로 잡고 런웨이를 하며 쓰레기까지 한 번에 주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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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레기통을 입어도 멋있는지 모르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8dJKJ6edk

Better Project #4 쓰레기 바로 버리기 part.1


한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돌아와 확인한 신용보증기금에서의 답변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걸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며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좀 더 뭔가 커다란 게 필요하겠다. 크고 임팩트 있고 비전이 확실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편하게 잠들 수 없었고 다시 창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사업기획을 짜기 시작했다.


생각이 하나 둘 씩 정리되었고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회사 유리창에 보드마카로 사업 아이템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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