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봤자 돌아오는 건.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했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과는 별개로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이전에 했던 프로젝트들이 생각보다 파급효과가 작았고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진통제 같은 일들이라기보다는 그냥 보면 훈훈하고 마음 좋아지는 비타민 같은 존재 정도였기 때문에 굳이 이게 필요한가? 하는 의문도 계속해서 들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기업을 신청하기 위한 여건에도 맞지 않았고 신용보증기금에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도 되지 않았다.
투자를 받을 만큼 매력적인 일
비즈니스적으로 가치가 있고 우리 스스로도 뿌듯한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함께 하는 단체를 조금 더 공신력 있는 단체로 선정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연이 닿았던 곳은 인천의 어느 소방서였다. 이전부터 유튜브의 버튼 기능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클릭했을 때 다른 링크로 넘어갈 수 있는 기능, 그리고 버튼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하면 어떨까 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 기능을 활용한 광고가 있었고 해외에서 수상도 여러 차례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 콘텐츠를 한국의 소방 교육에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불이 났을 때 상황별로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였을 때만 좋은 엔딩으로 넘어가게 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길을 가다가 불장난하는 친구들을 만났을 때, 집에 있는데 건물에 불이 났을 때를 각각 가정하여 소화기 사용법과 화재 대피 요령을 교육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소방서와 인근 초등학교의 협조를 통해 콘텐츠를 촬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IurDWSlr5k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토대로 소방서와 MOU를 맺을 수 있었다. 향후 소방 교육할 때 자료로도 쓰일 거라는 말에 뭔가 생각했던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다음 프로젝트였다.
내친김에 소방 관련 프로젝트를 하나 더 해보기로 했다. 소방관들의 희생을 당연시하게 생각하는 사회 풍조를 조금 덜어보고자 소방관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혹은 형 , 누나, 아들, 딸, 이웃집 누군가, 우리 동네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어필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인터넷 상의 일러스트 작가들을 섭외하여 '평범한 히어로'라는 전시를 열기로 했다.
함께 실행할 단체는 당시 소방 관련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던 F스타트업이었다. 나이도 비슷한 또래였고 무엇보다도 참신한 아이템을 가진 회사여서 함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서로 좋은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문제는 거기 있었다. 우리가 도와주면 우리도 도움받을 거라는 멍청한 기대심리에서였다.
작가 섭외, 작품 관리, 전시기획, 전시물품 구매, 엽서, 시트지 제작, 전시 설치 등 업무의 80% 이상을 우리가 도맡아 했다. 전시가 잘 나오면 프로젝트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 대부분을 우리의 주도와 실행 하에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F스타트업은 조금이라도 지원금을 받을 수 없을까 하고 NPO 지원센터의 지원사업을 신청했고 전시 공간도 지원센터에서 빌려주었다고 했다.
프로젝트는 꽤 성공적이었다. 작가들과의 인맥도 생겼고 많은 사람들이 보며 공감해주었다. 판매된 엽서는 거액이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판매되었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우리 직원들조차 엽서를 구매했다. 문제는 F스타트업의 태도였다. 이 전시가 외부에 소개되는 루트나 유관기업에 우리 회사를 외주 용역 정도로 소개했던 것이었다. 덕분에 우리가 지원하고 공동주관 주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였으나 우리의 이름을 함께 알리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전시를 진행했던 전시 장소의 관장님도 전시가 끝나도록 우리를 몰라보셨다. 전시 철수하던 날 우연히 귀갓길에 나와 관장님이 만났을 때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F 스타트업 대표와 관계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작가들을 초대하여 작은 파티를 열었던 자리에서도 F스타트업 사람들은 꼴불견이었다. 셋이서 무슨 성대한 꿈이라도 이룬 거 마냥 작가들을 가르치려 했다. 무슨 선민의식이라도 있는 듯이 자신들을 꿈을 찾아 이뤄가고 있는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고 작가들에게 꿈을 가져야 한다며 분명 축하파티였음에도 불구하고 F스타트업의 소규모 강연회 같은 느낌이 되어버렸다. 그들의 나이는 불과 20대 후반이었고 내가 봤을 때는 아무것도 이뤄놓은 게 없어 보였다. 이후로 그들과 연을 끊었지만 아직 간간히 미디어에 올라오는 그들의 소식을 보면 아직도 안 망하고 용하게 버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섯 차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히 마지막 프로젝트 이후에 지난 사람들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었을까 과연. 우리는 제대로 도와주고 잇는 게 맞을까.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본질적인 것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필요한 일일까. 그런 생각에 빠졌을 때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은 하나였다.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구나. 단지 좋은 일이 있을 뿐이구나.'
그래서 사람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고를 멈춘 머리를 붙잡고 있다가 여태 마련한 사업 아이템으로 직원들에게 투표를 하자고 했다. 다섯 개 정도의 아이템을 정리하고 간단하게 설명을 했다. 총 네 명이었던 우리는 사무실에 앉아 저마다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나하나 자식같이 생각하고 기획했던 아이템이라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것이 슬펐지만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저건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입을 모았던 아이템이 있었다.
그 아이템의 기획을 들은 K이사님은 매우 좋아하셨다. 이거라면 아예 다른 사업으로 시작해도 괜찮을 거라고 아니, 충분히 좋을 거라고 하셨다. 나도 역시 동감이었고 본격적으로 사업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러기에는 지금 사무실이 너무 좁았고 사람도 너무 부족했다. 연말까지 지금보다 딱 두 배만 더 키워보자는 생각으로 조금 공격적으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회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목표가 생기고 그 목표가 회사의 비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걸 실행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그 기획으로 2억의 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2015년의 어느 여름, 회사가 망하기 1년 전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