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무실 이전, 그리고 연대보증

솔직히 도장 찍을 때 좀 쫄았다

by 이승준

그 비효율적인 사무실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모든 직원들을 모아놓고 후보지역을 몇 골라서 이전할 사무실을 골랐다. 출퇴근도 편하고 사무실도 넓으면서 임대료도 그리 비싸지 않은 이상적인 곳으로. 열심히 부동산 업체에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다가 한 군데 눈에 들어온 곳이 있었다. 독산동에 새로 생긴 지식산업센터였다.


30평 정도의 사무실. 회의실도 있고 탕비실도 있고 베란다도 있는 데다가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그러면서 임대료는 강남의 사무실보다 저렴했다. 아래층에는 다양한 편의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건물이 크고 멋있었다. 지하철 역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버스가 바로 앞까지 와서 교통편도 쾌적한 편이었다.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으리라. K이사님은 창업지원센터를 나와 사무실을 임대하는 것은 ‘둥지를 떠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근처에 오시면 눈에 보이는 건물 중에
가장 높은 건물입니다.


아 멋있다.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 가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약간 행복했던 것 같다. 우리 네 사람은 열심히 청소하면서 드디어 좋은 사무실을 얻게 되었다며 즐거워했다. 사무실 가구도 뭔가 트렌디해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케아 가구를 사기로 했다. 책상부터 의자, 소파나 탕비실 테이블도 모두 이케아에서 예쁜 가구로 가득 채웠다. 전부 조립하는 데에 새벽 서너 시까지 걸린 것 같지만 우린 그마저도 즐거웠다. 냉장고도 마트나 편의점에서나 볼 법한 쇼케이스 냉장고를 사 왔다.


우리의 손길 거치지 않은 가구가 없었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것은 2억 원의 융자 덕분이었다. 한 번 난감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MOU 협약서, 출판 계약서, 추정손익 계산서 등을 들고 가며 어떻게든 관계자를 설득하려 했다. 여담으로 기업이 대출을 받으려면 전년도 매출액이 필요하다. 그 정도를 한도로 내어주는데 매출이 없는 스타트업이나 특히 제조가 아닌 무형의 자산으로 사업을 하는 모든 기업은 자산성을 입증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떻게든 어필하기 위해 매번 서류를 들고 찾아갔고 새로운 프로젝트의 기획이 괜찮았는지 결국 2억 원의 융자를 받아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연대보증과 보증료였다. 연대보증의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지는 매체를 통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나에겐 피부에 와 닿는 단어였다. 아직도 나는 집에 붙어있는 빨간딱지를 안주삼아 약주를 하시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계약서를 읽어보고 읽어보고 또 읽어보며 도장을 꺼냈다. 그 도장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진짜로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Y에게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건 모두 짊어질게, 그래야 대표니까. 내가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네가 책임져야 하는 거다?’ 하며 반농담 식으로 이야기하며 편해보이는 척 했지만, 막상 도장을 찍어야하는 그 순간에는 정말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 돈이면 우리 멋있게 하고 싶은 사업 할 수 있어. 라며 어금니를 꽉 깨물고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보증료를 내야 한다며 나에게 영수증을 끊어주었다. ‘오늘 안에 입금하셔야 합니다.’ 하고 줬던 그 보증료는 융자액의 몇 퍼센트였는데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백 만원이 넘었던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 돈을 대체 어디서 마련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인생 첫 대출을 받았던 그때, 은행 직원의 추천으로 발급해 주었던 신용카드. 그 카드로 받을 수 있었던 현금 서비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받지도 못할 일시 가수금을 회사 통장에 넣기 시작했다. ‘언젠가 수익이 나면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내 월급은 거의 가져가지 못했다. 월급은 사회적 기업 인증을 위해 혹시 몰라 월급을 이체하기는 했지만 다시 회사 통장에 가수금으로 넣었고 정말 생활비가 필요할 때마다 환수의 형태로 조금 받아갈 뿐이었다. 단순한 생각으로 그렇게 하는 게 내 생활을 줄이더라도 회사의 살림을 아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멍청하게도.


영원히 잊지 못할 내 생의 첫 차. 그런데 이름 따라간다고 차 이름이 파멸의 예언자였다.


차도 필요할 것 같았다. 필요할 때마다 카 쉐어링 서비스를 이용하던 우리는 그 비용이면 차를 한 대 구매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따져보던 나는 아껴야 하는 살림에 법인 차를 마련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내 명의로 할부 구매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작은 차 한 대를 전액 할부로 구매했고 또 빚이 늘었다.


나에겐 뒤가 없었다.

그만큼 나는 간절했다.

이전 11화세상에 좋은 사람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