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왕먼지, 로지 월드, 넘버나인

우리는 문자 그대로 뭐라도 해야 했다

by 이승준

남은 돈으로 버틸 수 있는 건 빠듯하게 4개월 남짓, 그마저도 뭐 좀 해보겠다 생각해서 예산을 빼면 3개월 정도. 다음 예비 사회적 기업은 6개월 정도 남았고 인증에 투자까지 생각하면 어림잡아 7~8개월쯤. GIFTY를 진행하면서 새로 식구가 된 직원은 세 명이었다. 작화가 가능한 디자이너와 프로젝트를 관리할 매니저 두 명을 포함하여.

막막했다.


돈 들어올 구석은 없고 버텨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있었으니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와중에 우리는 신년회를 하자며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했다. 점심에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다 같이 사주를 보러 가기로 했다. 스타트업은 신년회도 독창적이고 재미있게 해보자는 게 취지였다. ‘대표님 사업운 좀 봐요. 망할 것 같다고 하면 빨리 도망가게.’ 농담으로 웃으면서 한 말이었겠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말이었다.


‘뭐라도 해야겠다. 우리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나는 회사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부터 다시 잡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식이길 바랐고, 거기서 파생되는 확장 아이덴티티들을 잡아갔다. 종국에 남은 단어는 하나. 우리를 여태까지 만들어다 준 한 단어는 콘텐츠였다.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한 파급력을 가지고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따뜻한 콘텐츠. 그 변화의 연속성을 가진 콘텐츠의 파급이 우리가 원하던 브랜드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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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만들던 브랜드 휠


콘텐츠를 검색해보았다. 오만가지 정의들과 포맷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할 수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자.’ 다음 GIFTY 섭외와 병행하여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카피라이팅을 맡고 있던 직원과는 어른도 따뜻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Y와 새로 입사한 프로젝트 매니저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고 작화가 가능했던 디자이너는 웹툰을 그려보자고 했다. 까짓 거 다 해보자. 그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어떻게든 내가 비즈니스와 엮어 사회공헌 모델로 만들어내 보겠다고 했다.


웹툰의 이름은 우주왕 먼지가 되었다. 우리 바깥의 이야기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사회공헌에 뛰어든 스타트업 내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어찌 보면 재미와 감동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을 캐릭터로 만들고 에피소드를 콘티로 만들어 웹툰을 그렸다. 이왕 그릴 거 굵직한 플랫폼에 연재 한 번 해보자며 여기저기 도전했고 우리는 꽤 좋은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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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는 만화였다. 아직도 보다보면 추억이 떠올라서 울컥한다.


캐릭터는 사내 공모를 시작했다. 각자 캐릭터의 세계관과 특징을 아이디어로 가져와 회의실 벽에 붙여놓고 각자 간단하게 피티를 했다. 투표로 선정된 캐릭터는 두 개, 그중에서도 로지 월드의 덤보라는 캐릭터가 선정되었다. 택배 상자들이 살아있고 그들의 세계인 로지 월드를 만들었다. 가장 대표되는 캐릭터는 덤보였는데 상자로 만든 큰 개의 모양이었다. 우리는 동물 모양 캐릭터를 통해 택배 환경 개선과 동물 문제에 대해 개선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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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진짜 귀엽다.


넘버나인은 유기동물들이 각자의 생을 마감하는 아홉 번째 별의 이야기였다. 새벽마다 유기동물들을 데리고 넘버나인으로 떠나는 버스에 어느 날 집을 나온 고양이 치치가 호기심에 탔다가 넘버나인으로 오게 된 유기동물들의 사연을 듣게 되고 주인을 그리워하며 넘버나인을 탈출하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 동화를 통해 반려동물 유기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출판과 라이선스 사업을 통한 기부모델을 만들었다.



23.JPG 넘버 나인의 일부. 언젠가 이 글도 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다음 GIFTY 프로젝트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전에 했던 사례를 통해 훨씬 수월해진 섭외를 진행했고 전시장 규모도 크게 키우고 전시 기획도 세부적으로 진행했다.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그놈의 돈. 비어 가는 잔고는 내 목을 졸랐다. 이 분위기를 잃고 싶지 않았던 나는 돈 빌리러 다니기 바빴다. 항상 내 급상여 명세서와 연말정산 내역서, 통장과 인감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은행이란 은행은 다 돌아다녔다. 2 금융권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출만 된다면 상관없었다. 알고 지내던 회사 대표님들을 만나러 다녔고 안면만 익혔던 친구들에게까지 연락하며 돈을 빌리러 다녔다. 예비 사회적 기업만 된다면,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이 지원사업만 받을 수 있다면, 수익만 낸다면, 수만 가지 가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입 아프게 우리의 희망찬 비전과 미래를 어필하고 설득했다. 카드는 이미 한도가 초과된 지 오래였고 기자재까지 점점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투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는 비전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이 좋은 사람들과 끝까지 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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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가장 소중할지도 모르는 시간을 내어 준 사람들.’ 내가 직원들에 대해 항상 잊지 않았던 마음가짐이었다. 절대 나약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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