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할 수 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꾸역꾸역 버텼다. 진짜 문자 그대로 꾸역꾸역 버텼다. 더 이상 돈 빌릴 구멍이 없을 만큼 빌려댔고 안 가본 은행이 없었다. 어디 은행은 심사를 잘 받아준다더라 소문이라도 들으면 거기가 어디든 차를 몰았다. 몇 달은 더 버틸 수 있게 자금을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돈은 그때그때 어찌어찌 틀어막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예비 사회적 기업 신청일이 되었다.
예비 사회적 기업은 한 법인이 최대 세 번까지 신청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였고 아주 작은 부분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지만 다시 마음을 바로 잡고 며칠 밤을 새워서 서류뭉치를 만들었다. 출력해보니 거의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두께였던 것 같다. 마련한 서류를 겨우 들이밀었고 결과는 당연히 합격, 면접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자신 있었다. Better와 GIFTY는 나의 오른팔과 왼팔 같은 존재였고, 작은 회사에서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퍼포먼스들이 서류 위를 수놓아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혹시 몰라 발표 당일 심사위원들에게 드릴 회사 소개서를 따로 준비했고 소개서마다 1도씨 인문학을 한 권씩 챙겨 갔다. 브리핑도 완벽하게 준비했고 QnA는 신물 나게 받아봤으므로 무섭지도 않았다.
‘기업이 불안정하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우주왕먼지와 로지 월드, 넘버나인의 사업성을 필사적으로 피력했고 Better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더 하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지를, GIFTY가 앞으로 한국의 팬덤 문화와 사뢰적 경제의 접점을 가지고 어떤 위상을 갖게 될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콘텐츠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반드시 한국의 성공사례를 남기고 싶습니다. 지금은 콘텐츠를 쌓아가며 버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서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감정적인 호소를 잊지 않고 말미에 가져다 붙였다. 그러자 시종일관 안 좋은 표정으로 일관하던 다른 심사위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융자가 2억이 있잖아요?’ ‘네,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자금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거 당장 내일 아침까지 갚으라면 갚을 수 있어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나는 거치기간과 상환기간, 보증 연장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내일 아침까지 갚으라고 할 리 없다며. 그러자 그 사람은 말을 도중에 잘라먹으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사람아,
내일 아침까지 갚으라면 갚을 수 있어요 없어요?’
너 같으면 갚을 수 있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긴장으로 몸이 작게 떨려왔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지 당최 분간이 가질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든 갚아보겠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하지만 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다시 자르며 말했다. ‘거봐 불안정하지.’ 그러고는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나는 열심히 해명했다. 매출이 별로 없는 스타트업 특히, 콘텐츠 사업을 하고자 한 우리 회사 같은 경우에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 초반에 외부 자본에 기대어서 사업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택했다며.
다른 심사위원은 재무제표를 훑어보면서 인상을 쓰고 말했다. ‘무슨 월급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하는 일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수준입니다.’ 우리는 나를 포함해 7명이 일하고 있었다. GIFTY 하나만 하기에도 버거운 인력이었다. 인력 배치와 충원 계획을 봐도 모자랄 판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월급 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회사가 불안정한 요소가 될 수 있어요. 사람을 좀 줄이고 더 열심히 해서 줄인 사람 몫을 분담하거나 인턴을 쓰거나 해서 인건비를 줄일 수 있잖아요?’ 나는 ‘저희 회사는 콘텐츠 회사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라고 목멘 소리로 말했다.
후에 듣기로는 그 해가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 인증받기 가장 안 좋았던 마지막 해였다고 한다. 이전까지 인증을 내어준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들이 대부분 문을 닫자 폐업률이 증가했고 그래서 아예 스타트업, 특히 사회경험이 별로 없는 청년들에게는 인증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서 사회적 경제의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고 하지만 내가 사업을 하던 그때는 그랬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터덜 터덜 회사에 돌아왔다. 뱃속에 온갖 험한 단어들이 쌓여서 꿈틀거렸다. 이건 백방 떨어진다. 그 표정들, 그 말투들, 수많은 피티 자리에 서봤지만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좌절감을 안겨다 준 적은 없었다. 이거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회사는 어떻게 되나. 막연히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새까만 소용돌이를 품고 회사 근처를 방황하다가 슬쩍 들어왔다.
해가 지고 밤이 깊었다. 나는 재고박스 위에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따며 낮부터 뱃속에서 꿈틀거리던 단어 하나를 골라서 나지막이 뱉었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