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서울에서 도망치다.

by 이승준

나는 충청북도 충주에 살고 있다.


충주시. 충청도의 맨 앞글자 '충'의 도시. 남한강이 흘러 옛날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선비들이 지나던 지역이라고 하며 그래서 충청임에 비해 사투리도 별로 없는, 사과가 맛있고 차 소리보다 새소리가 더 크게 들리며 유난히 길고양이가 많은 도시. 기억이 흐릿할 만큼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나는 13년 전 이 도시를 떠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명의 발전에서 다소 떨어진 작은 도시 안에서 자기가 무슨 능력이라고 있다고 믿고 특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택하게 되는 길이었다. 더 큰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그걸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그때의 내 크기에 맞지 않는 꿈이 그 이유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며 나는 고향을 떠났었다. 작은 우물같이 느껴졌던 도시를 벗어났을 때 나는 그것만으로 뭔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대학교에 자퇴서를 던질 때도 그랬다. 더 큰 곳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이 그때는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기회였고 발에 차이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매일 무언가 바쁘게 생각하고 움직였다. 잠시라도 쉬면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잠을 줄이고 카페인을 부어가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질 때도, 사업이 망해 수억의 빚더미 위에 앉을 때도 그랬다. 뭔가 해야 했다. 그 도시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 사장이 빚쟁이들에게 쫓겨 컨테이너에서 숨어 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덤덤했다. 멍청한 회사 사장에게 속아 그만둬야 했을 때도 그랬다. 나에게 온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다는 나 자신을 질책했고 그저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데에 시간을 들였다. 뭔가 잊고 있던 게 기억이 났던 때는 사랑하는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몇 달간 월급이 밀리던 회사와 진흙탕 싸움이 시작될 때쯤이었다. 서울에서 산 지 10년이 조금 넘던 때였다.


서너 평 정도 되는 원룸 바닥에 누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뭔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데. 정말 우물 안 개구리가 싫어서 뛰쳐나왔다고 생각한 거대한 세상인데, 여긴 내가 벗어난 우물보다도 좁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인사하며 다녔던 날, 친구들은 뭣하러 내려가냐고 물었다.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간다고 대답했다. 뭐 하고 살 거냐고 물었다. 뭔가 하며 살겠지 라고 말했다. 도망가는 거냐고 물었다. 뭔가 하고 싶었던 게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를 못 찾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13년 만에 다시 내 고향 충주에 살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 내 동네에서 뭔가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크다해서 내가 커지고 기회가 많다고 해서 할 일을 찾고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 압력에 찌그러져버린 내 마음이 가엾기만 했다.


그래서 요즘은 작은 것부터, 내가 익숙하게 살아온 내 고향의 동네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내 행복을 찾는 연습을 하려고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로, 100일 동안 100편의 글로 내가 사는 이 곳을 써볼까 한다. 이 글을 마칠 때쯤이 되면, 나는 좀 더 행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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