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바둑을 잘 두신다.
얼마나 잘 두시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충주에서 제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상대가 없던 아버지는 아마 사정만 좋았다면 프로기사로 이름을 날리셨을 거다. 아버지가 진심으로 붙어서 진 건 한 번도 본 적 없고 항상 상대가 몇 점식 깔고 두는 것 밖에 본 적 없으니까.
영재 바둑교실.
그런 아버지가 열었던 작은 바둑학원의 이름이다. 하시던 수석을 잠시 접으시고 어떻게든 특기를 살리실 생각이었나 보다.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에 작은 터를 잡고 간판을 올리고 시트지를 붙였다. 작은 벤을 사서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셨다. 나는 아직도 유리창에 붙어 시트지를 붙이던 아버지의 기억과 교재를 주문해서 쌓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바둑학원은 그런대로 되었던 것 같다. 아이들도 꽤 있었고 아버지도 실력이 있었다. 내가 하교하면 아버지의 벤을 타고 충주를 한 바퀴 돌며 아이들을 모았다. 하지만 어린 내 눈에서 봤을 때야 아이들이 많구나 싶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보았을 때는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결국 작은 학원은 팔아야 했고 우리는 충주 안에서도 더욱 시골로, 변두리로 이사 가야 했다.
영재 바둑교실은 우리 가족이 이사를 간 이후에도 한동안 같은 간판을 걸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지나게 되면 아직도 아버지의 학원 같아서 빤히 보다가 지나갔다. 다만 세월이 지나니 낡아지는 간판과 떨어져 나가는 시트지가 마음 아팠다. 아버지는 깔끔하고 부지런한 성격이셔서 항상 유리가 깨끗하고 시트지 어디 먼지 낀 곳 없이 관리를 잘하셨다. 하지만 새 주인은 그러지 못했나 보다. 여기저기 색이 바래고 끝이 떨어져 먼지가 묻고 유리가 지저분한 걸 보며 어째서인지 허전하고 서운했다.
우리 아버지가 힘들게 붙이던 것들인데, 하면서 한참 보다가 지나갔다. 혹시 이 근처 어딘가에 그때 아버지가 몰던 벤 같은 게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쓸데없는 발걸음을 했다.
점점 더 시트지가 떨어지고 먼지가 더 쌓여가던 어느 날 영재 바둑교실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뭔가 가족 같은 무언가였던 것 같은데. 이제 그 작은 학원은 생을 다하고 눈 감는 대신 철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제 보이면 내 마음 아프게 하던 간판도 떼어냈고 떨어져 가는 시트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나는 발걸음은 멈추고 꼭 눈이 한 번 가게 만든다.
철문이 닫혀있고 이제 이름 없이, 길가에 알 수 없는 장소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시트지를 붙이던 모습이 떠올라 한참 서성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