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눈이 정말 어둡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길을 잃은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정말 끝도 없을 것이다. 한 번 간 길을 어떻게 못 찾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똑같이 한 번 간 길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그게 두 번이 되든 세 번이 되든 사실 기억 못 하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오래 같은 길을 다니다 보면 은근히 체득이 된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머리로 기억하는 길 보다 몸이 기억하는 길로 갈 때가 훨씬 정확하다. 그래도 길을 못 찾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가끔 고양이가 지나가면 어디로 가나 뒤를 밟아보기도 해야 하고 나비라도 팔랑거리면 넋 놓고 따라가 봐야 한다. 건물보다 하늘 보면서 걷는 게 좋고 여기저기 구경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그러니 20년을 넘게 산 내 고향 동네에서도 길을 잃는 것이겠지.
방향 감각만 믿고 지름길로 가보겠다며 골목이라도 잘못 들어가면 그날 계획했던 무언가가 있었다면 모두 포기하는 게 맞을 정도일 것이다. 한 번은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갔다가 한 시간이 넘어서 집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길에 새끼 고양이가 있어요! 하고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껄껄껄 웃으시더니 거 보라고 고양이 탓 아니냐고 하셨다. 올 때가 한참 지났는데 오지 않는 나를 두고 아버지는 길에서 고양이를 만났을 것이라고, 엄마는 마트를 못 찾아서 다른 멀리 있는 마트에 간 거라고 각각 걸어보셨다고 한다.
밤일 때와 낮일 때, 추울 때와 더울 때가 다르고 지나는 고양이와 풀벌레 울음소리도 다르고 주차된 차들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냄새가 다르다. 내가 오른쪽으로 돌았는지, 왼쪽으로 돌았는지, 혹은 뒤로 걸어가고 있는지 천천히 걷는지, 혹은 빠르게 걷는지. 같은 길을 같게 지날 수가 없다. 마주할 때마다 새로운 길인데 어떻게 한 번 가서 아는 길이 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참 힘든 일이다. 아니 어제는 고양이가 지나가고 오늘은 안 지나가는걸. 그럼 정말 다른 길인데.
내 위치를 설명하는 일도 참 힘들다. 어디냐고 물어보면 주위를 둘러보다가 여긴 모과나무 아래야. 하고 말하고 모과나무의 생김새를 열심히 설명해준다. 그럼 그걸로 어떻게 찾아가냐고 뭐라고 한다. 나는 왜 못 알아듣느냐며 이렇게 생긴 모과나무는 이 거 한 그루밖에 없을 거라고 뭐라고 한다. 사실 나도 이게 얼마나 알아듣기 어려운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저게 정말 최선이다.
방금 빨간 오토바이가 지나갔어, 헬멧은 안 쓰고 있고. 라거나.
무슨 절 이름 같은 게 쓰인 나무 현판이 보이는데 많이 낡아서 한쪽은 떨어지려고 해. 라거나.
아무튼 오늘도 아마 나는 유쾌하게 새로운 골목을 밟다가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게 나름 재미있다. 걷다가 문득 길이 낯설어지면 길을 잃었다! 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면 그때부터 아예 정신줄을 놓고 본격적으로 낯선 길을 즐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