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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Apr 05. 2020

달을 동경한 가로등

Simulacre.

장노출 사진의 맛을 알아버렸어요.


그런데 여전히 어느 정도의 조작이 적당한지는 잘 모릅니다. 찍고나서 며칠이 흐른 뒤 현상해봐야 뭐가 어떻게 나왔구나 하고 알게 되죠. 수치를 기록해가며 어느 정도 찍었을 때 얼마나 나오는지 계산해보는 방법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무작위성에 기대서 찍는 사진이 조금 더 매력적이에요.


집에 들어가는데 골목 끝에 있는 가로등과 연장선 위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이 환한 밤이었어요. 냉큼 집에 들어가서 삼각대와 유선 릴리즈를 가지고 나와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답니다. 달에서 시작해 가로등을 지나 골목에 뿌려진 빛의 이름은 moonlight road라고 내심 이름 지으면서요.


그런데 다른 건 안 찍히고 달이랑 가로등 불빛만 훅 들어와 버렸네요? 아무래도 셔터 열려있던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뭔가 좋았어요. 꼭 하늘에 떠있는 달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가로등의 불빛과 그 주변에 어렴풋이 보이는 사물들이 엄청나게 묘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예요.

Simulacre.

달을 꿈꿨지만 닿지 못했고, 그래도 닮아보려 했던 가로등에 붙여준 이름이에요.

https://www.instagram.com/p/B965ek6Ho-1/?utm_source=ig_web_copy_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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