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회사 지원했다가 떨어진 이야기
대충 4년 전에 나는 게임 회사에 지원한 적이 있다.
회사 이름은 111%라는 회사였는데 뭐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끌렸다. 당시 내가 암만 작게 잡아줘도 웬만한 사원 월급은 챙겨줬을 것 같았던 쿠키런의 데브시스터즈와, 정말 오랜 시간 내 지갑을 끊임없이 털어먹은 하스스톤의 블리자드와 함께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 목록 탑티어를 차지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내가 게임을 많이 했으면 했지 뭐 게임 회사에서 일을 해본적이 있어야 지원을 하든가 하지.
경력도 없는게 꿈만 높아서 기웃거리기나 하는게 가당키나 한가 싶었다.
그냥 꿈지럭거리다가 문득 채용공고를 확인하게 되었다.
오? 이건 좀 괜찮은데?
게임 기획자.
내가 게임 관련 일은 안 해봤어도 기획이라면 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이야, 이거 내가 지원해볼만하다. 까짓거 도전해보자. 그런데 무슨 수로 이 비어있는 게임 관련 경력 사항을 채울 것인가.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뭔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안 난다. 회사에서 대놓고 이력서를 쓰고 있었으니 나든 회사든 둘중 하나는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을 거다. 나는 거기서 대놓고 이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세상에 뭔 게임이 이렇게 많아?
뭐든 다 만들어보고 하나 걸리라는 생각으로 냈나보다. 이름도 뭔 비비탄 씨씨탄 디디탄... 이이탄이 있든가? 아무튼 시리즈 비슷한 이름에 더불어 블레이드, 매지션 등등 진짜 단순한 그래픽과 게임성으로 만든 갖가지 게임이 수십개가 있었다.
아 좋다! 그러면 내가 이거 다 다운받고 플레이 소감이랑 나름의 개선 기획 방향을 정리해보자. 이정도 정성이면 감천 아니겠냐! 안 될 거 뭐있냐!
그래 그러면 안 됐다.
뭐 암만 평소에 분석을 좋아했어도 그게 생소한 산업의 콘텐츠면 전문성이 보였겠냔 말이다. 그런데 이미 이걸 눈치 챘을 때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매몰된 시간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은가. 나는 수십개의 모바일 게임을 계속 돌려가며 메모하고 수십페이지의 게임 분석 보고서 같은 포폴을 마련하게 되었다.
뭔 전문성은 전문성, 애당초 머릿속에서 그렸던 이상적인 형태의 내용도 아니고 대충 항목만 채운 무언가가 되어버린 용량만 드럽게 큰 PDF가 탕생했다. 그것도 마감 당일.
나는 그걸 기도하는 심정으로 메일을 써서 보냈고 결과는 뭐. 아니 결과랄 것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 회신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111% 게임을 모아놓은 폴더를 지우며 짧지만 열꽃같던 짝사랑을 끝내게 되었다.
그런 111%가 다시 내눈에 띈 건 또 몇해 전, 나는 가끔 앱스토어를 들어가서 요즘엔 어떤앱이 인기가 있나 하고 확인해보는 버릇이 있는데 게임 카테고리 상위에 랜덤다이스라는 게임이 눈에 띄었다. 이게 뭐야, 하고 보는데 제작사가 111% 아이고야.
111%는 사실 그 전에는 막 간판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순위에 가끔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스낵게임들이 다였고, 그러다보니 111%라는 이름은 그렇게 간판에 걸리는 이름은 아니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왜이리 순위가 높아.
그리고 왜 오래 붙어있어.
왜 자꾸 눈에 띄냐.
이건 마치 전여친이 SNS 추천친구에 뜨는 기분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했다가 차인 여자가 유명해져서 피드에 추천 인플루언서로 뜬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그러네 사귄적 없으니.
나는 애써 외면했다. 궁금하기야 하지. 근데 날 버렸잖아! 메일 하나는 줄 수 있었을텐데!
내 정성을 몰라주고 씹었잖아! 하는 약간 찌질한 마인드였다.
게임이 좀 궁금하긴 했다.
뭔데 이렇게 순위가.....
하다가도 참았다. 나름의 구직 메일이 씹혔다는 것에 대한 소소한 복수의 불매운동이었다.
나는 절대 이 회사의 게임은 하지 않을테야.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고 아니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데,
이걸 계속 쓸지 잠깐만 고민해보자.
혹시 모르니까 제목에 넘버링만 해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