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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x 무말랭이 x 이별

by 이승준


“인류가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미국에 있던 정치인 하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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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 밑 소파에 파묻혀 코를 박았다. 퀴퀴한 곰팡내가 코 안으로 후욱 딸려 들어왔다. 곰팡이가 또 도지나 보다. 이놈의 반지하는 이래서 계약하면 안 된다니까.


“반지하가 뭐 어때.”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상상 속 혼잣말과 겹쳐 머릿속에서 재생되어 나를 반박했다. 곰팡이 냄새가 기억력이라도 자극하나 보지. 젠장. 썩을 기억력만 좋아가지고. 정말 여러모로 쓸모없는 몸뚱이다.


우리는 헤어졌다.


이 낡아빠진 소파 하나, 조그마한 냉장고 하나 들여놓은 낡고 낡은 반지하방이라도 서울의 한 조각,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고 좋아하던 게 벌써 작년이다. 유리창을 열면 옆 건물의 거대한 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보면 작게 한 귀퉁이, 하늘이 보였다. 그 조각난 하늘이라도 좋다며 누우면 그 조각하늘이라도 볼 수 있는 자리에 소파를 주워다 놓았다. 옆 건물 누군가가 이사할 때 버리겠다고 딱지 붙여 놓은 물건이었다.


그녀는 어디 작은 회사라도 취직해서 돈을 벌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나름 서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쥐꼬리만 한 월급 받는 나의 근거 없는 포부를 따라 올라온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였다. 그녀는 그럼에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아보겠다며 열심히 구인광고를 따라다녔다.


그녀가 낮동안 집안일을 하고, 구인광고를 찾는 동안 나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위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사실 일하는 것보다 상사의 불평과 불만, 욕받이 상대가 되어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지만 쥐꼬리라도 그 길이를 떠올리면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그 이전에, 아무 능력도 경험도 없는 신입을 써주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도 아주 작게 있던 것 같다. 그 외엔 하루라도 빨리 쥐꼬리를 모아 그녀의 손을 잡고 반지하를 나와 어디든 하늘이 넓게 보이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집으로 돌아가면 그녀가 있었다. 반찬은 별 거 없었다. 그저 무말랭이, 계란장, 가끔 이름 모를 나물무침. 반찬 가게에서 인기가 없어 떨이로 내놓는 무말랭이를 김치 대신, 유통기한 임박한 계란 한 판을 사 와 간장과 식초, 설탕 대충 섞은 양념에 재워 놓고 나름 단백질이라며 고기반찬 대신, 어디 도로변이라도 몰래 가서 언젠가 봤던 나물과 비슷한 풀 한 바구니 뜯어 무쳐가지고 구색이라도 갖추겠다며 놓은 이런저런 나물 무침으로 우리의 호화스러운 저녁을 만들었다.


행복하냐고 재차 물었다. 그게 불안했다. 혹시나 그녀가 이런 반지하에 갇혀 질려버리면 행복을 찾아 다시 떠날까 봐. 그럴 때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조각하늘을 찾았다. 저기 조각이라도 하늘 하나 걸려있지 않냐며 저것도 하늘이라고.


자기는 행복하다고. 그랬다.


계절이 한 번 바뀌고 우리는 아주 추운 겨울을 맞아야 했다. 계속되는 그녀의 취업 실패가 그녀의 생기조차 앗아가는 기분이었다. 언젠가 상사에게 뺨을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아무 소리 못하고 연신 죄송하다며 나는 고개 숙여 빌었다. 그 견디는 마음에 예전처럼 뭔가 떠올리고 기댈 것이 없었다. 그저 관성이었다. 빌어야 한다는, 그래 왔으니 그렇게 버텨야 한다는 마음. 그 마음은 분명 사라질 상처가 아니었다. 마음 깊은 어딘가에 얼룩으로 번지는 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식탁 위에는 밥 한 공기와 무말랭이 한 접시가 있었다. 계란도 세일을 안 하고 겨울이라 나물도 없고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랬다며 무기력하게 소파에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그때 물었어야 한다. 그녀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알았어야 했다. 무말랭이 하나 덩그러니 올려놓은 이 밥상이 그녀의 게으름과 무성의한 결과물이 아닌, 그녀가 포기해야만 했던 무언가와 맞바꾼 희생이었다는 걸.


그날 나는 그녀에게 화를 많이 냈다. 조금이라도 이 집에서 내가 하는 노력을 갉아 멀을 줄만 아는 네가 이제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어졌느냐며 무자비하게 화를 냈다. 그녀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돌아 앉으려 노력했다. 나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욕을 했다. 그러다 문득 나가라는 말이 무의식 중에 나오려다 목에 걸렸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녀가 이 집을 나가면 어디로 가야 할까. 그제야 그녀의 사정과, 기운 없이 천천히 움직이는 그녀의 몸과 간간히 콜록대는 기침을 억지로 삼키는 숨소리와 파르르 떨리는 손등이 느껴졌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뱃속 깊은 곳에서 까만 덩어리가 소용돌이쳤다. 그녀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들고 나에게 사과했다. 몸이 조금 안 좋았다며 미안하다고. 내일은 노력해보겠다고. 나는 그날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소파가 더 자기 편해 거기서 자겠다고 했다. 나는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 누워 까만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그녀가 누운 소파를 바라보았다. 돌아누운 그녀 너머의 벽이, 벽 위에 작게 달라붙은 유리창이, 유리창 틈 새로 보이는 아주 작은 달빛이, 하필 내가 누운 각도로 선명하게 떨어져 번졌다.


“오늘은 감이 좋아.”


그녀는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최종 면접이 있다며 아침부터 한껏 멋을 부렸다. 뭐 벌써부터 설레발이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이력서가 너무 좋다잖아.’ 라며 연락 온 문자를 내게 자랑스럽게 들이밀었다. 벌써 한 다섯 번은 본 것 같았다. 올 때 치킨이나 사 오라며, 오랜만에 파티하자고, 기대하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뭘 먹어야 하나. 나에게 치킨은 언제나 후라이드, 아니면 양념이었다. 익숙하게 주문하고 찾아가려던 차에 그래도 축하파티인데, 하는 생각에 생전 처음으로 티브이에 광고하는 치킨을 주문해봤다. 집에 돌아온 나는 한껏 멋 부린 그녀의 아침 모습 그대로 식탁 의자에 앉아있는 걸 보며 직감했다. 합격 여부는 못 물어보겠다 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독사 같은 표정으로 치킨을 집어삼키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그리고 이 치킨 값이 내 쥐꼬리의 얼마를 갉아먹는지를 속으로 셈하며.


그날 밤 나는 자다 말고 목이 말랐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잠에서 깨버렸다. 옆에 그녀가 없는 걸 보고 이상하다 싶어 두리번거려보니 소파에 앉아 멍한 눈으로 창 밖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내쪽도 보지 않고 그녀가 말했다.


“있잖아. 인류가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 미국에 있던 정치인 하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지금, 왠지, 어떤 면에서인지 하늘이 아주 낯설어 보였다,라고 했어. 나는 그 말을 엄청 좋아했다? 보이지도 않을 인공위성 하나를 가늠도 할 수 없는 하늘 어딘가에 쏘아 올려놓고 하늘이 낯설다니. 따지고 보면 먼지 같은 존재들의 작은 몸짓인데 말이야.


그래도 그 말을 엄청 좋아했어.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다다른 느낌을 표현할 방법을 못 찾아서 그저 낯설다고만 말 못 하는 그 문장이 애처롭고 안쓰러워 보였어. 그래서 언젠가는 그 낯선 하늘에 닿게 될까. 하는 막 헛되보이지만 그래도 희망. 그래도, 그것도, 그런.


이 이야기에서 조금 더 재미있는 사실은 말이야. 떠나보낸 그 인공위성의 이름이야.”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겨우 듣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식탁에 편지 한 장과 아침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계란장, 무말랭이, 그리고 몇몇 색깔의 나물무침. 하얀 종이를 곱게 접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편지에는 수없이 떨어졌을 눈물 자국 밑으로 미안, 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삐뚤삐뚤하고 크게 적혀있었다.


나는 창 밑 소파에 파묻혀 코를 박았다. 퀴퀴한 곰팡내가 코 안으로 후욱 딸려 들어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쥐꼬리를 주던 회사에서도 이제 전화가 오지 않는다. 포기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이렇게 있다 죽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머리 위로 달빛이 느껴졌다.


그녀가 좋아하던 하늘의 달이다. 나랑 같은 달 아래 그녀가 있겠지. 내가 모르는 창밖 어딘가의 세상에서 느껴지진 않지만 분명히 있을 그녀가 같은 하늘을 달을 보고 있겠지. 이제는 이렇게 조각나진 않았겠지만.


왠지 문득 창 한쪽 귀퉁이에서 부서져 들어오는 달빛이 낯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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