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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주인은 항상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마카롱

by 이승준

정신과 치료를 한동안 받은 적이 있다.


나올 때마다 주머니에는 병원 영수증과 안정제나 항우울제 같은 걸 잔뜩 담아 온다.


‘돈이 많으면 나도 보험처리 같은 거 안 할 텐데.’


진료를 마치고 나올 때마다 진료기록이 신경 쓰이는 건 여전히 복잡한 마음이다. 이게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생각 많이 하고 많이 걷고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나와서 약을 받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약 몇 알을 입에 털어 넣는다. 이게 훨씬 편하니까. 그러면 조금 진정된 마음에 다시 우울이 찾아온다. 나는 왜 이러고 살아있나.




나름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병원을 나온 나는 무작정 골목으로,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았다. 방황하다 찾은 작은 카페가 있다. 간판에 커다랗게 마카롱이라고 쓰여있다. 나는 마카롱을 한 번도 안 먹어 보았다. 달고 비싸고 쓸데없이 작은 음식 정도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오늘은 하나 먹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문을 열어보았다.


생각보다 이쁜 가게였다. 카페 주인은 열심히 자기 마카롱 자랑을 늘어놓는다. 시중에 파는 마카롱은 너무 달아서 자기가 직접 안 달게 만들었단다. 나는 단 게 먹고 싶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대화가 오고 가다가 마카롱 서너 개와 홍차를 하나 시켜보았다. 차 맛은 나쁘지 않고 향은 모르겠다. 마카롱은 예쁘게 생겼다. 손님이 없는 작은 카페도 마음에 들고 비치는 유리창 너머에 인적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저희야 단골이 자주 오는 건 좋지만 손님은 좀 다르네요.’


카페 주인은 나에게 복잡한 표정을 지어온다. 20개를 찍으면 무료 음료를 주는 쿠폰을 몇 바퀴 돌면서 우리는 쓸데없는 대화를 참 많이도 나누었던 것 같다.


‘오늘도 병원 다녀오시는 거죠?’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실패한 마카롱 좀 가져가라며 주섬주섬 서비스를 챙겨준다. 모퉁이가 깨진 마카롱이 꼭 내 행복 같아서 감사히 받아먹는다.


시답잖게 근황 이야기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카페 귀퉁이 작은 원형 테이블 앞에 1인용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마카롱은 레몬 사과 두 개 무화과 두 개, 홍차는 아이스로 우유 넣지 않고. 접시는 고양이가 그려진 길쭉한 접시. 내가 찾고 있는 내 삶에서 행복해지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정한 방법이었다.




오랜만에 병원을 찾았다.


내 담당 선생님이었던 분은 다른 곳으로 가시고 새로운 선생님이 나를 맞는다.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대화는 같은 모양이다. 매뉴얼이라도 있는지.


‘좋은 생각 많이 하시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바람도 많이 쐬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그러는 게 도움이 많이 되어요.’


먹으면 안정이 된다는 알약 몇 개를 처방해준다. 이제 진료기록 같은 건 걱정되지도 않는다.


그 카페를 찾아간다. 오랜만에 나를 보는 카페 사장은 여전히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맞을까. 약간은 궁금한 마음으로 올라간 골목 끝에는 휴무라는 팻말이 가로막고 있다. 이제 내 표정이 복잡해진다.


급하게 다른 카페를 찾아본다. 마카롱은 예쁘고 달지 않을지, 접시에 고양이는 그려져 있을지, 홍차의 향은 모르겠지만 맛은 그럭저럭 괜찮을 수 있을지. 내가 행복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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