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아이템 정하고
회사이름 정하기

그래서 뭘 하자는 건데?

by 이승준

Y는 굉장히 들뜬 어조로 사업 아이템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이렇다. Y는 T사에서 교육 프로그램 중간부터 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때 알게 된 P 부장이 사업에 생각 없냐며 슬쩍 다가왔다고 한다. 자기가 준비하던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회사에 묶여있는 몸이고 나이도 좀 있다 보니 청년창업이 유리할 것 같다면서, 자기가 멘토가 되어 아이템을 제공하고 영업을 맡을 테니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라는 말이었다.


사람에게 이득이 되는 광고


아이템은 간단히 말하면, TV에 재생되는 광고를 스마트폰 어플로 인식하면 모바일 쿠폰이나 체험 혜택, 경품 응모 등을 제공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자기가 맡고 있는 광고주는 전부 데려올 수 있다며 굵직한 대기업 이름을 죽 나열했다. 개발과 디자인을 해줄 업체도 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우리가 왜 굳이 필요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Y는 그 이야길 듣자마자 우리 팀을 떠올렸다며 흥분하고 있고 S는 텔레파시가 통한 게 분명하다며 방방 뛰는 분위기에 휩쓸려 의문은 뒤로하고 한 번 해보자며 맥주를 비웠다.


wojtek-witkowski-275-unsplash.jpg 광고가 기피제나 공해가 아닌 실질적 도움을 주게 만들고 싶다는 게 P 부장의 주장이었다.


이후로 매일 회의를 하고 틈 날 때마다 P 부장을 찾아갔다. 매번 방대하게 기획서를 썼고 P 부장은 그런 기획서를 볼 때마다 아직도 너희는 이해를 못 했다며 다시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었다. 그때마다 부족한 걸 깨달아 다시 쓰고 다시 쓰고 다시 쓰기를 아마 1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반복하면서 쓴 기획서만 내 키만큼은 될 것 같았다. 뭐가 대체 문제인지 매번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좀 더 개념적인 부분에서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배운 걸 떠올리기로 했다.


ATLBTL.png 전통적인 광고 매체 분류


그때 나왔던 말이 CTL이었다. 먼저 ATL과 BTL은 각각 Above The Line과 Below The Line인데 대행사가 클라이언트로부터 보내는 청구서에서 커미션을 청구하는 미디어(TV, 라디오, 신문, 잡지)를 청구서 내 라인 위쪽에 기입하고 그렇지 않은 미디어(옥외광고, 전단지, DM, 등 4대 매체를 제외한 여러 가지 매체)를 라인 아래쪽에 기입하던 것에서 유래하는 단어였다.



우리는 ATL과 BTL을 아우르는 매체가 될 테니
CTL이라는 단어를 써보면 어떨까?



당시 Cross-over The Line이라는 단어가 시장에 등장해 IMC (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통함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대체하는 정도로 쓰이던 때였다. '우리는 ATL 광고를 인식하면 BTL 커뮤니케이션으로 유입해서 관계를 만드는 플랫폼이니까 진정한 의미에서 CTL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말이 내 의견이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매체 파급력만으로 대중을 상대하는 게 ATL의 역할이었다면, 그 와중에 실질적으로 행동까지 할 수 있는 진성 유저를 한 번 더 붙잡고 혜택을 주며 관계를 만들어 효과를 제대로 검증해줄 수 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CTL.png 당시 기획서에 썼던 시각적인 이미지


P 부장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기획서를 들고 개발을 맡아 줄 L 실장을 먼저 만났다. L 실장은 어디 대기업 개발 일을 하다가 지금은 외주 개발도 맡아 하고 있다며 P 부장의 학교 후배라고 소개했다. 디자인을 맡아줄 N사를 소개받기도 했다. N사는 T사의 온라인 광고를 대행하고 있다고 했다.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A사도 미팅에 참여했다. A사는 어떤 큰 통신사의 자회사라고 했다. 각자 사업이 진행되면 가져갈 지분이나 사업의 성공 등등 비즈니스 대화가 늘 그렇든 시간의 40%는 허황된 단어가 떠돌아다녔고 정작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에는 아무도 접근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럼 디자인 비용과 개발 비용은 누가 대주는 거며,
이 사업에서 총대를 메고 투자할 누군가는 누가 될 것인가.


아무도 돈을 내려는 주체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점들을 정하지 않은 상태로 P 부장은 사업을 진행하려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세 사람은 점점 지쳐갔고 마냥 손 놓고 믿을 수는 없기에 P 부장에게 우리가 가장 잘 하는 걸로 우리 나름 시작해보겠다고 전했다. 바로 공모전이었다. 창업 공모전이라도 돌면서 우리 손으로 돈을 마련해보겠다는 계획이었다. 여태 쓴 기획서들도 넘치고 여태 피티도 자신 있었다. 그렇게 우선 개인사업자를 내기로 했다.



플랜비_(1).jpg 원래 회사 이름은 술 먹다 짓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회사 이름은 뭘로 할까? 하면서 술을 퍼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Plan B라는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야 우리는 Plan C 어떨까?' '백업의 백업이야?' '아니 그냥 이름이 좋길래? CTL 기획사 Plan C 해보자.' 뭐 그래서 그렇게 Plan C가 되었다. CI도 뭔가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애매하게 보여주면서 C가 눈에 확 들어오게, Line이라는 시각적 요소가 차원의 경계를 만들어낸다는 아이덴티티를 고수하면서 일사천리로 제작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Plan C라는 작은 회사를 세우게 된다.



plan c 로고.jpg


공모전으로 마음을 돌려먹으니 길은 쉬워졌다. 우리는 얼마 안 가 경기도의 한 창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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