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inaerad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내 May 02. 2023

그를 위한, 그에 의한, 그의 피노키오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리뷰


 그를 위한, 그에 의한, 그의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 리뷰


왜 하필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인가

피노키오는 지금껏 실사 영화로 4편, 애니메이션으로 5편이나 개봉했다. 그간 개봉한 영화의 편수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피노키오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만큼은 한결같았음을 증명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피노키오에 사랑에 빠진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로 10대 시절부터 피노키오를 영화로 만들기를 꿈꿨다. 그렇다면 왜 그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아직까지도 피노키오에 열광할까? 거짓말을 하면 코가 자라는 마법이 매력적이어서? 아이들에게 거짓말은 나쁘다고 가르치기에 효과적이어서?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영화로 대신했다. 촬영 기법, 미장센, 줄거리 등 곳곳에 살아 숨쉬는 ‘기예르모 델 토로’스러움은 왜 그가, 우리가 피노키오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 왜 제목이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여야만 했는지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마법 같은 스톱모션 기법: 꼭두각시 세상의 가짜 꼭두각시, 피노키오

스톱모션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기법이지만 꼭두각시가 주인공인 ‘피노키오’와 만난 순간, 단순한 눈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법을 넘어 영화에 다채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마법이 된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무솔리니 정권 하의 이탈리아로, 현실에서 스톱모션 인형인 등장인물들이 극중에서도 무솔리니의 인형처럼 복종하면서,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는흐트러진다. 이렇게 현실 안팍으로 꼭두각시인 인물들은 피노키오가 완전한 인형도 완전한 꼭두각시도 아니라는 이유로경멸하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피노키오를 자신의 꼭두각시로 이용하려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극중에서도 꼭두각시취급을 받는 피노키오는 아이러니하게도 극의 시대에 가장 저항적인 인물이다. 마치 꼭두각시의 모습이지만 줄에는 얽매이지 않은 모습처럼. 이렇듯 기예르모 델 토로는 스톱모션이라는 프리즘에 피노키오를 비춰, 진짜와 가짜는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을 구분할 자격이 있는지 다채로운 질문을 던진다.


피노키오의 탄생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는 촬영 기법뿐만 아니라 서사 자체에서도 전작들과의 차별성을 둔다. 이 영화는 전작들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풍경을 비춘다. 영화의 배경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인 이탈리아로, 전투기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떨어뜨린 폭탄에 의해 아들 카를로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영화는 제페토와 아들 카를로가더없이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시퀀스로 막을 열어, 이후 제페토가 아들을 잃고 느끼는 슬픔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허망하게 잃었을 때 사람이 오로지 슬퍼하기만 할까? 한참을 슬피 울던 제페토는 어느 날 술에 취해 아들을 돌려달라며 하늘에 분노한다. 그는 분노를 한참 쏟아내는 것으로는 모자라, 아들이 남긴 솔방울에서 자라난 소나무를 베어 피노키오를 만든다. 가장 널리 알려진 디즈니의 <피노키오>와 달리, 이 영화의 피노키오의 탄생 시퀀스는 제페토의 광기와 분노로 휩싸여 바라보는 내내 오싹한 공포가 온 몸을 감싼다. 제페토와 카를로의 행복한 한때부터 광기 어린제페토가 피노키오를 탄생시키는 순간까지의 시퀀스를 통과하며, 우리는 상실의 무수한 결을 읽는다.


완벽한 불완전함의 예찬: 불완전한 아버지 제페토, 불완전한 아들 피노키오

이렇듯 피노키오는 카를로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태어나지만, 겉과 속 모두 짜맞춘듯이 그와 대비된다. 이 영화의 피노키오는 그 어떤 피노키오보다 투박하다. 머리카락, 피부, 눈동자의 색이 없고, 옷을 입고 있지도 않다. 인간이 되고자하는어떠한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행동과 생각, 말투만큼은 인간 아이만큼이나 천진난만하고 산만하며 제멋대로다. 얌전히 어른의 말을 잘 따르던 카를로를 기대했던 제페토는 이런 피노키오의 모습에 실망하고 카를로같은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피노키오는 사랑하는 제페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서커스단 단장 볼페의 거짓말에 넘어가오히려 그를 크게 실망시킨다. 피노키오는 더이상 제페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볼페를 따라 서커스 투어를 떠나고,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 부자가 상봉하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은 서로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이 고된 모험 끝에 재회한 제페토, 피노키오, 크리켓, 스파차투라는 서로를 몸과 마음으로 감싸안는다. 종, 생김새, 삶의 궤적까지 그 무엇 하나 겹치지 않는 이들은 그렇게하나가 된다. 따스한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숏은 사랑을 감각하는 놀라운 체험과도 같다. 결국 피노키오는 카를로도 인간도 아닌,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자처할 줄 아는 멋진 피노키오가 된다. 이 영화는 먼 훗날 온 세상이피노키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후일담으로 막을 내린다. 결말을 본 후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각자의 품 안에 선물처럼 안긴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상에 사랑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희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