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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내 May 18. 2023

기억의 팔레트를 열며

영화 <애프터썬> 리뷰

기억의 팔레트를 열며

영화 <애프터썬> 리뷰



영화, 기억의 틀

 회상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다. 그렇다면 회상은 지난 일을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떠올리는 행위인가. 인간에게 그런 행위는 불가능하다. 어떤 일은 한 사람의 시선을 통과한 순간 사건이 되고,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토대로 사건을 머릿속에 펼치는 순간 기억이 된다. 마치 촬영 현장이 렌즈를 통과한 순간 장면이 되고, 감독의 의도에 따라 모인 장면들을 스크린에 펼치는 순간 영화가 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애프터썬>은 인간의 기억을 현실과 가장 가깝게 구현한 영화다. <애프터썬>은 소피가 10대 시절 아빠와 떠났던 여름휴가를 회상하는 이야기다. 이토록 짧게 요약된 한 줄에는 10대 시절 소피의 시선, 감정과 30대가 된 소피가 덧댄 감정, 생각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소녀 소피가 실제로 마주한 사건과 어른 소피가 덧칠한 상상 사이의 모호한 경계는 인간의 기억 그 자체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소피가 그린 밑그림 위에 현재의 소피가 덧칠해 완성한 그날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Palette

Black

영화는 마치 상영 전의 영화관처럼 암흑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까만 어둠 속을 섬광등이 비추는 순간, 무수한 사람들 속 소피의 아빠 캘럼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방식은 마치 어둠 속에 빛을 펼쳐 하고픈 말을 꺼내는 영화와 닮아있다. 이렇게 소피는 꿈을 자신만의 영화관으로 삼아 여름휴가의 기억을 펼쳐낸다. 당시 소피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언니·오빠들의 세계를 동경한다. 여행 내내 사랑에 관해 논하는 잡지를 읽고, 언니·오빠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며 이성 간의 미묘한 감정, 스킨십을 관찰한다. 또래 소년과 입을 맞추는 한편, 동성 간의 키스를 목격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뜨기도 한다. 바깥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낯선 나이인 소피는 아빠를 바라볼 틈이 없다. 시시때때로 캘럼이 하는 체조나 명상은 과거의 소피에게는 우스꽝스러운 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덧 캘럼과 동갑이 된 소피는 캘럼의 엉뚱한 몸짓에서 그때는 몰랐던 비밀을 읽어낸다. 그림자처럼 내내 캘럼을 쫓아다니던 우울을.


Blue

캘럼은 언제나 우울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으로, 그의 우울은 바다로 표상된다. 캘럼은 여행 내내 바다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소피와 함께 스킨스쿠버를 하던 어느 날, 캘럼은 채 울적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 이유가 자신이 물안경을 잃어버려서라고 생각하는 소피를 달래 다른 곳에 보내놓고, 파란 수트를 벗지 못해 낑낑거리는 캘럼의 모습에는 우울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겹쳐 보인다. 이처럼 캘럼은 마음에 항상 거친 파도가 이는 사람이지만, 딸 소피에게만큼은 잔잔한 모습을 보이려 부단히 노력한다. 수트를 벗으려고 애쓰듯이 그는 명상에 관한 책을 읽고 시시때때로 체조를 하고 캠코더에 담긴 소피를 돌려보며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끝없는 우울 속 캘럼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는 오직 소피인 것이다. 마치 소피와 캘럼이 단둘이 드넓게 펼쳐진 푸르른 바다 위 외딴섬처럼 덩그러니 떠다니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던 순간처럼.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캘럼은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자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린다. 캘럼은 어릴 적 생일날의 트라우마와 자기혐오로 인해 생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생일 전날 함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는 소피의 제안을 거절하며 다툰다. 소피는 캘럼을 먼저 보내고, 언니·오빠들과 우연히 친해진 소년과 시간을 보낸다. 그동안 캘럼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소피는 우리는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밤늦게 숙소에 돌아와 젖은 옷을 벗어둔 채 깊은 잠이 든 캘럼의 뒷모습은 31살의 소피의 마음을 두드린다. 그 순간 과거의 소피의 기억 위에 현재의 소피는 자연스럽게 상상을 덧칠한다. 캘럼은 그날 끝내 소피의 앞에서 무너져 내린 자신을 자책하며, 흩어진 마음을 다시 쌓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명상을 하고 체조를 하며. 그 모든 것이 무용했던 그 밤에 캘럼은 아마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아무리 밀어내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우울에 차라리 완전히 몸을 던지듯이.

다음 날, 소피는 31살 생일의 기쁜 기억으로 11살 생일의 기억을 덮기 위해, 관광객들에게 부탁해 다 함께 캘럼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그 광경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캘럼은 앙각으로 잡혀 마치 하늘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앙각숏은 철저히 소피의 시선에 비친 캘럼을 담아내, 소피에게 캘럼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준다. 소피의 파랑은 하늘, 바로 캘럼이다. 소피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캘럼과 몸은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공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늘은 언제 어디 있든 함께 지만, 역설적으로 완전히 가닿을 수는 없는 존재다.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없을 만큼 아직은 너무 어린 11살 소피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11살의 소피는 하늘에 뛰어들 수도, 캘럼의 엉뚱한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아스라이 비치는 그의 우울에 조금이나마 다가서려고 어루만지려 한다.


Yellow

이런 소피의 다정한 마음은 시린 그늘에 밀려드는 노란 햇살처럼 따스하다. 기분이 가라앉은 캘럼은 캠코더에 담긴 소피를 바라본다. 그 순간 우울을 평온이 감싸 안듯이 노란 빛이 캘럼을 가둔 차갑고 푸른 벽지를 밀고 들어온다. 이런 색감의 구도는 홀로 남은 캘럼이 소피를 떠올리는 숏마다 반복되지만, 단 한 순간도 푸른 빛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캘럼이 등을 진 채 홀로 울 때 노란 빛은 곁에 한발짝 떨어져 머물 뿐 캘럼에게 가닿지 못한다. 이 구도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신은 거실에 있는 소피와 화장실에 있는 캘럼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소피는 거실에서 사랑에 관한 잡지를 읽느라 캘럼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한다. 반면 캘럼은 화장실에서 아픔을 감추며 대화를 나누는데 집중하다 팔에 상처를 낸다. 이 순간 거실의 노란빛과 화장실의 푸른빛은 완벽하게 대조와 분리를 이룬다. 마치 소피를 향한 사랑이, 소피가 주는 평온이 그를 완전히 물들일 수는 없다는 것처럼. 결국 캘럼의 새로운 집을 노랗게 칠하겠다는 소피의 바람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Last dance

소피를 향한 사랑은 끝내 캘럼을 구하지 못했다.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별 볼 일 없는 나약한 존재일까.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인 라스트 댄스 시퀀스로 대답을 대신한다. 과거의 소피는 캘럼의 몸짓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캘럼의 손에 이끌려 함께 춤을 춘다. 시간이 지나 요상한 춤과도 같던 그의 몸짓이 물에서 헤어나려는 몸부림이었음을 깨달은 순간, 현재의 소피는 함께 춤을 추는 대신 그를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31살 캘럼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31살의 소피가 건네는 공감과 이해였을 것이다. 11살의 소피가 읽어내기에는 너무 머나먼 세계였던. 그럼에도 함께 발을 맞춘 소피의 몸짓은, 생일 축하 노래는, 소피와 함께한 매 순간은 캘럼을 오늘에 머물게 하는 동시에 인생이란 영화에 하루라는 짧은 숏을 더했다. 캘럼과 함께했던 매 순간은 소피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스스로 선택한 보금자리를 꾸리고 살게 만들었다. 소피는 어디에서든 살 수 있고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던 캘럼의 말이 주문이 되어 이루어진 듯이. 소피의 기억을 따라 걸은 끝에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은 사람을 완벽히 구원할 수 없을지 언정, 항상 삶의 근원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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