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지키는 것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p.114
나는 속으로 누군가가 깨어서 내 말을 들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이 거짓말과 함께 살 필요가 없어졌으면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깨지 않았다. 나는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내게 주어진 새로운 저주의 본질을 이해했다.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내 저주였다.
나는 하산이 꿨다는 꿈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호수에서 수영하는 꿈을 꿨다고 했었다. "괴물은 없어요. 물밖에 없다고요."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가 틀렸다. 호수에는 괴물이 있었다. 그 괴물이 하산이 발목을 잡고 진흙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 괴물은 바로 나였다.
내가 불면증에 걸린 건 그날 밤이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 p.129
창비 출판사의 책이길래 청소년 문고로만 생각했다. 아이가 중3? 아니면 고1? 아마 그 무렵이었을게다. '소년이 온다'는 아이의 학교에서 수행평가 과제로 제시한 여러 책들 중 한 권이었다. 그때가 추석 연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소 아이 책 함께 읽기를 즐겨했기에 나도 그 책을 읽게 되었다. 곧 명치를 짓누르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 후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참 아프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아주 특별한 2024년의 가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에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을 그의 책들을 '으쓱'하면서 헤아려봤다. 하지만 다시 읽지는 않았다. 음... 나는 이미 읽었으니까... 그러다 12.3 계엄! 이 기막힌 상황이라니. 그저 역사 속 사건으로만 일축했던 '계엄'이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매일 같이 '어머, 어머... 미쳤나 봐.'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 불안한 날들과 2030 우리 아들과 동갑내기 또래 딸들의 집회 현장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읽어야겠구나.' 하는 비장한 의무감을 느꼈다. 처음 읽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슬픔과 아픔을 느꼈다. 어쩌면 내 발등의 불이라 생 되었기 때문일지도.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당연한 일상이 송두리째 뽑혀 나갈 뻔했다는 위기감이 광주의 비극을 내 이웃 아니 내 가족의 비극이라 여기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읽었다. 지난 40여 년 나는 무엇을 했나, 아직도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신음하고 있을 그들의 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였던 적이 있었던가? 아프고 괴로웠다. 양심. 맞다 양심에 걸림이 있더라. 잊지 말아야겠구나. 매년 오월이 되면 함께 울어야겠구나.
책을 덮었다. 서글프게 찬란한 책표지가 그제야 보였다. 안개꽃이었다. 예전에 화려한 장미나 프리지아로 꽃다발을 만들 때 풍성하게 보이려고 곁들이던 꽃이라 생각하니 더 서럽더라.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린 줄기에서 피어 난 여린 꽃들. 누군가 맘먹고 쓰윽 거친 손으로 훔치면 후드득 떨어질 꽃봉오리들.
1980년 5월 도청을 지키던 이들이 그러했겠구나.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읽고 있다. 아미르는 그날 하산에게 닥쳤던 위험을 힘껏 외면했다.
누구도 아미르에게 대놓고 뭐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스스로 괴로워한다. 어쩌면 그 고통 때문에 스스로를 망쳐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한번 꺾여 버린 양심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그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인가 보다. 흔히들 흑화 되었다 하는 것이 그것 아닐까? 자신을 파멸시키고 그 주변까지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 '양심을 지킨다', '양심을 따른다'라는 말이 진부한 것이 아니었구나. 아주 소중한 것이었구나.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다.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그날을 대하는 나의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