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쟁이 Feb 11. 2023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나의 엄마(2)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2023년 2월 5일 일요일 아침.

피곤했다. 전날인 토요일 대전에 다녀왔다.

설 명절 때 찾아뵙지 못한 부모님을 뵈러.

아니, 부러 설 명절 때 가지 않았다. 시댁인 여수에도 가야 했기에 일정을 분산시킨 것이다.

마침 부모님 근처에 사는 여동생이 명절 연휴 시작 일주일 전에 이사를 했더랬다.

그래서 겸사겸사 설 명절을 지내고 가기로 한 것이다.

아침밥 먹고 출발해서 점심 무렵 대전에 도착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먹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자정을 훌쩍 넘겨 잠자리에 들었다.

까무룩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뭔가에 놀란 사람처럼

화들짝 잠을 깼다.

그리고는 날이 밝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 새벽에 잠을 설치면 으레 별 쓰잘데 없는

망상으로 헤매기 마련이다.

그날도 그랬다. 괜히 불안했다.

혹여 엄마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지점까지

망상이 꾸물거렸다.  

전날 저녁 계속 기침하는 엄마가 불안했다.

용인 집에 도착해서 잘 도착했다 전화드렸을 때도

엄마의 기침은 계속되었다.

내일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폐 CT를 권하려 했다.

걱정 되기는 했지만 지난 목요일 충남대학병원에서

정기 검사를 받고 오셨던 터라

좀 더 지켜봐도 괜찮겠지 했다.


날이 밝았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가족들은 늦잠을 잤고. 다소 늦은 아침을 챙겼다.

그러느라 밤새 뒤척였던 생각을 잠시 잊었다.


오전 11시 3분.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경아냐? 엄마 응급실에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 봐."

하고는 아빠는 엄마를 바꿨다.

"경아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많이 뭉개졌다.

웅얼웅얼 분명치 못한 발음만으로도 엄마가 많이 아프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바꿔주세요."

"아빠, 아빠는 엄마 힘들게 왜 바꿔주고 그래요.

아빠가 상황 말씀해 주시면 되죠."

아빠 말씀에 따르면

엄마가 밤새 아프셨단다.

계속되는 기침과 구토 그때 약간의 피도 나왔다 하셨다.

나는 상황을 애써 외면했다.

"기침 많이 하시면 후두에 난 상처로 약간 피날 수도 있지요. 괜찮으실 거예요."


엄마는 16년째 "발작성야간혈색소뇨증"이라는

희귀 난치병을 앓고 계셨다.

그래서 일 년에 여러 번 응급 입원을 하시곤 했다.

때문에 나는 엄마의 병증에 담담하다.

내가 동요하면 모두가 불안할 테니.

최대한 담담하게 상황을 관찰한다.

이 병의 투병 과정은 다음에 적도록 하자.

투병이랄 것도 없다. 이길 수 없는 병이니까.

그저 버티었을 뿐이다.


나는 아빠에게

지금 엄마가 어떤 처치를 받고 있는 지 물었다.

"혈액 검사하고 좀 전에 폐 CT를 찍었고,

수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수혈받아야 한단다."

라고 하셨다.

일단 혈액원에서 피가 와야 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필요한 성분을 뽑아낼 것이다.

그다음 수혈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4시간이 걸린다.

"응급실에는 어떻게 가셨어요?"

"택시 불러서 왔지."

"아빠는 식사하셨어요?"

"나는 몇 숟가락 뜨고, 네 엄마는 아무것도 못 먹고."

"CT 찍은 거 결과는 언제 나온대요?"

"몰라, 아직 아무 말 없어."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의 울타리를 건너면

막내 동생이 사는 아파트다.

동생을 불러서 병원으로 가셔도 되지만 부모님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

항상 당신들이 스스로 하셨다. 그걸 떳떳해하셨다.

이따금 그 문제로 부모님과 투닥거리기도 했지만

한사코 그럴 필요 없다 하셨다.


전화를 끊었다.

입원하셨구나.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병원에 들어가셨으니 별일 없을 것이다.

지금껏 그랬듯이.


막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미야, 엄마 응급실 들어가셨대.

코로나19 생각보다 잘 넘기신다 했더니 힘드셨나 봐.

너도 일단 대기하고 있어 봐. 응급실에 계신 거라 아무나 출입할 수도 없으니. 일단 기다리는 수밖에."


지난 설 명절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여수에서 용인으로 올라가는 중에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코로나 걸렸나 보다. 두 줄 나왔다."

"아빠는요?"

"난 괜찮아, 아무 증상 없어."

"아빠, 간이 키트 가진 거 있으세요?

아빠도 일단 검사하세요. 다시 전화할게요."

잠시 후...

"어떠세요?"

"두 줄이다. 아무 증상 없는데..."

"알았어요, 아빠. 일단 집에 가지고 계신 감기약 드시고

밤에라도 급하시면 119 부르세요."

간이 키트 검사를 하게 된 사정은 이러했다.

엄마가 명절 연휴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단다.

그래서 동네 병원에 갔더니 감기약 처방해 주었다고...

며칠을 먹었는데도 나아짐이 없어서 검사해 본 거라고 하셨다.

증상은 일반적인 감기 증상이었다.

아직은 견딜만하시다 하셨다.

즉시 여동생에게 전화했다.

내일 아침 부모님 모시고 코로나 19 검사받게 하고

치료제 처방받으라고...

부모님과 설명절 연휴 일부를 함께 지낸

남동생에게도 전화했다.

남동생은 최근 폐에 혈전이 생기고 염증이 생겨서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다.

"구호야, 엄마, 아빠 간이 키트 검사했는데 두 줄이야. 간이 키트에서 양성이면 코로나19 감염 분명해. 너도 엄마, 아빠랑 함께 지냈으니 검사받아. 네 가족들 모두."


아빠는 5차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백신 자체가 자칫 엄마에게 위험할 수 있어

교수님도 굳이 엄마에게 권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감염을 피하려 지금까지 조심 조심 했었다.

모두들 코로나19의 위협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려 하는 이때 엄마가 걸리신 것이다.

 



오후 1시를 막 넘겼을무렵 핸드폰의 벨 소리가

한번 울리더니 툭 끊겼다.

아빠다.

"아빠, 왜 전화하시다 끊으셨어요?"

"아니, 너한테 하려던 게 아니고

간호사가 자녀들 전화번호 묻길래 가르쳐 준 다는 게

너한테 걸었네."

"엄마는 어떠세요?"

"응, 여기 일반실로 올라왔어."

"응급실에서 일반실로요? 검사결과는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우셨는지 아빠는 옆에 있던 간호사를 대뜸 바꿨다.

"안녕하세요? 저는 딸인데요. 저희 엄마는 지금 어떠신가요? CT 찍은 걸로 아는데 결과 나왔나요?"

잠시 자료를 찾아보는 듯 뒤적이는 소리가 들렸다.

"네, 폐에 염증 소견이 있으셔서 입원실로 올라오셨어요."

"다른 사항은 없나요?"

"일단 수혈받으시고 계시고요. 코에 산소줄 끼우셨고요."

"다른 장치를 하신 것은 아니고요?"

"네, 구체적인 사항은 내일 교수님 회진 후에

추가적인 검사를 해야 알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실에 입원한 것임을

재차 확인받았다.

"아빠, 아빠도 식사하세요.

그리고, 필요한 것은 경미에게 일러둘게요.

경미가 보호자로 들어갈 수 있죠?"

"한 명 더 보호자 들어올 수 있단다. 그런데 코로나 검사받아야 한대."

"네, 알았어요."


코로나19 이후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지난번에는 보호자 1명만 가능했는데

이번에는 둘이 가능하다고 하니 다행이다.

막내에게 전화했다.

"엄마 일반실로 올라가셨대. 코로나 검사하면 보호자로 들어갈 수 있단다."

그 이후로 아빠는 여러 번 막내에게 전화했다.

엄마의 의견이 반영되었으리라.

충남대 병원에서 검사하면 검사비가 비싸니

선별진료소로 가라는 식의 내용이다.

아니 처음에는 엄마, 아빠 확진받은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하라 하셨다. 그곳은 무료였다고.

그거야 간이키트 검사 후 확진이라

무료로 검사를 해준 거고 멀쩡한 사람이 검사받으러 가면 당연히 검사비 지불해야 한다.

어이없었다. 이 와중에 검사비 비쌀까 봐 염려하시다니…

찾아보니 충남대학병원도 입원 환자의 보호자 등록을 위한 검사비는 거의 무료였다.


그때 막내와 나는 엄마가 웬만하신가 보다 했다.

코로나19 검사비 운운 하실 여유가 있으신 걸로 보아.

그래서 마음이 놓였다.

막내는 의견을 내놓았다.

어차피 오늘 검사해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늦어져

오늘 병원에 들어가기는 힘들 거 같다.

그러느니 내일 교수님의 회진 결과를 보고 코로나 검사를 받는 게 어떻겠나 물었다.

기껏 검사받았는데 2~3일 만에 퇴원하시면

의미가 없지 않냐 하는 거였다.

게다가 회진 시에 교수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았다.

보통 회진 도는 시간이 오전 7시~10시. 특정할 수 없다.

막내도 일을 하고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등교도 챙겨야 했다.

엄마의 입원을 많이 경험했던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결론 내렸다.


그리고 남동생에게는 아직 엄마의 입원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내일 상황을 보고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남동생 가족은 안양에 산다.


이곳에선 잊혀진 기억이 소각된다


작가의 이전글 잔치 잔치 열렸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