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종화 Dec 22. 2020

운명의 여신의 얼굴에 돌을 던져라

코로나-19로 탄식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아이를 원에 제대로 보내지 못한 지 한 달째에 접어들었다.


코로나가 하루 500명을 넘기 시작한 시점부터 불안감에 아이를 원에 아예 보내지 않다가,

나의 정서적, 체력적 한계를 느끼면서 2주 전부터 주 1-2회 정도는 보내고 있다.

말이 주 2 회지 드문 드문 가려니 아이도 저항이 심해지고 나 또한 원에 보내는 날도, 안 보내는 날도 숭텅숭텅 시간을 대강 베어 먹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올 한 해가 거의 이랬던 것 같다. 빠짐없이 맘 편하게 원에 보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월요일 아이와 점심밥을 먹고 있을 때, 옆 동에 사는 쌍둥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심각한 병을 앓고 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코로나 시국에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매일 원에 보내던 엄마였다. 아이들이 가는 어린이집은 규모가 30명 이내인 작은 곳이고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둥이들을 제외하면 나오는 아이는 한두 명 정도가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주 둥이를 제외한 유일한 한 명 아이가 확진되었다는 게 아닌가. 둥이 엄마는 남편을 부랴부랴 조기 퇴근시키고 남편이 오는 대로 아이들과 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했다. 코로나라는 밀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턱 밑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하루에 최소 3시간에서 4시간을 아이에게 티브이를 보여주고 있다.

오전에 아이의 끈질긴 요구로 어쩔 수 없이 한 시간 - 아침에 눈을 뜨면 밥도 안 먹고 오로지 티브이만 찾는다 -, 오후엔 낮잠도 자주지 않는 아이 때문에 나의 숨 쉴 틈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1-2시간. 티브이를 보지 않는 중간중간 최대한 아이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며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티브이를 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 마냥 집요하고 끈질기게 티브이를 보여달라고 조르고 떼쓰고 울고 버틴다.

계륵 같은 존재다 티브이가. 이 힘든 시국 아이와 24시간을 티브이가 없었다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싶다가도, 아이가 너무 티브이만 찾는 걸 보면 애가 타고 어쩌지 싶다. 책 읽는 시간이 비교적 긴 아이였고 그 부분만은 내가 육아에 있어서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있던 유일한 점이었는데 가정보육이 길어지면 질수록 책보단 티브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고민이 늘어간다.



코로나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류문명의 진화를 위한 필연적인 자연의 조치라고 어떤 저명한 학자가 이야기한 인터뷰를 보았다. 흑사병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몇 시간 전엔 전 세계 코로나 사망률 2위 국가인 브라질의 한 해변가를 취재한 뉴스를 봤다. 해변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파라솔 아래로 사람들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웃고 떠들며 휴양을 즐기고 있는데 그들 중 마스크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찾기 힘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돋보적 사망률 1위인 미국에선 국민들 중 상당수가 코로나를 아직까지도 음모론으로 치부하거나 혹은 마스크를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치권의 도구로 여기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들었다.

만약 코로나가 피해 갈 수 없는 인류의 운명이라면 이 사태는 빠른 시일 내 점화되진 않을 것 같다. 인류가 역사를 거듭해오며 발달시켜온 의학 덕택으로 그나마 사망률이 2퍼센트를 넘지 않으며 버티고 있지만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이런 시국에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이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이다.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힐 운명을 타고난 초식동물이 자신의 새끼에게 미안해하지 않듯 나도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의무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운명의 여신의 얼굴에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