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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번째 행인 Mar 07. 2021

알수록 매력적인 일본 편의점

학교보다 더 자주 간 내 일상의 천국

몇 달 전 일본 TBS에서 '이 사랑 데워드릴까요(この愛あたためますか)'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지하 아이돌에서 사실상 방출돼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여주인공이 업계 꼴찌 편의점 회사를 일으키고자 하는 츤데레 사장을 만나 디저트 개발에 나서는 '러브'(그렇지, 이게 빠지면 안 되겠지;;;) 스토리다. 물론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지만, 편의점용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사내 경쟁을 벌이고, 단가·운반을 고려해 계획을 몇 번이고 수정하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편의점 간식 그게 뭐라고'라고 말한다면, 빵순이 자매2 매우 섭섭하다.


일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스이츠(スイーツ)라 불리는 디저트 대부분은 유명 베이커리 제품 못지않게 맛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유명 베이커리와 콜라보로 선보이는 제품도 많고. 아무튼, 그 드라마를 보면서 '아 내가 그렇게 먹어대던 스이츠가 저렇게 오랜 시간 개발하고, 실패하고, 이런 것까지 고려하면서 만들어지는구나' 해서 재밌었던 기억이.



그 시절 나의 천국, 콘비니


스이츠 뿐이랴. 일본 편의점은 점포 수만큼이나 그 기능과 판매 용품이 엄청나다. 괜히 이 나라를 '편의점 왕국'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자매들이 지난 1년간 일본에 살면서 (횟수로만 치면) 학교와 집보다 더 많이 드나든 곳이 바로 이 콘비니다. 그리하여! 자매들의 일상과 함께 했던 그곳, 우리들의 천국, '일본 콘비니(コンビニ·편의점)' 수다 한 판을 벌여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없는 것 빼고 다 있고 못하는 것 빼고 다 할 수 있는 편의점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하루에 편의점 몇 번 가봤니


일본의 대표 편의점 하면 세븐, 패밀리마트, 로손을 꼽을 수 있다. 각 동네마다 이 '삼총사+알파'가 골목골목 자리하고 있다. 자매2는 집을 구할 때 주변 환경을 알아보려 구글맵을 많이 봤는데, 그때 든 생각은 "아니 동네에 편의점이 왜이리 많노"였다. 이래서 장사가 되겠나 싶었는데 이건 그냥 뭐 잘 모르는 외국인의 '아무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다 장사 잘 되더라.


자매2는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편의점에 갔다. 학교 가는 길에 한 번, 점심 후 한 번, 집에 오는 길에 한 번. 집에서 학교 가는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이동할 땐 선택지가 두 개 있었다. 세븐일레븐으로 가면 그날 아침 식사는 커피 한잔. 패밀리마트로 가면? 빵과 우유. 세븐 일레븐은 (잠시 후 말하겠지만) 내가 물처럼 마시는 맛있는 커피가 있었고, 패밀리마트(패미마)에는 좀 편하게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식사 후 지하철을 타고 학교가 있는 아카바네바시 역에 내리면 가는 길에 각각 두 곳의 세븐과 패미마가 있었는데 이땐 고민 없이 바로 세븐으로 향했다. 수업 중 마실 세븐 커피와 쉬는 시간 먹을 간식을 사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학식 아닌 외식으로 할 경우엔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사 마시기도 했다. 역시나 세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때울 도시락이나 빵, 레토르트 식품을 샀다. 이렇게 글로 적고 보니, 자매2 정말 세븐 VVVVVIP 같다.  자매1도 만만치 않은 세븐 우수 고객. 학교 가기 전 세븐에 들려 커피(여름에 아이스커피는 필수) 사는 '의식'을 자매2에게 전파한 게 바로 이 사람입니다!!! 덕질하러 이미 여러 번 일본에 드나들었다는 자매1은 일찌감치 이 맛에 눈 떠 애용해 왔다고.


일본에 살면서 그 어떤 커피 보다도 맛있게 마셨던 세븐 커피. 가격 대비 만족도는 단연 갑이다.



니들이 말하는 세븐커피 도대체 뭐야


글 시작한 뒤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편의점' 다음으로 '세븐'이 아닐까.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두 사람의 편의점 최애는 세븐 커피다. 일본 가기 전엔 편의점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고. 병, 캔 커피랑 포장 뜯어 분말 넣고 뜨거운 물만 받아 마시는 게 아닌 편의점 기계로 내려주는 커피 이야기다. 몇몇 편의점에 기계가 있긴 한데, 안 마시는 사람이 많은 눈치(먼지가 많이 쌓였다는 이야기)다.


편의점 커피는 일단 싸다. 참고로 스타벅스나 도토루, 타리즈 등 커피 체인의 커피값은 기본 3,000원이 넘는다. 세븐 기준 블랙커피 작은 사이즈(R)가 100엔이고, 라떼는 150엔이(었)다. 지금도 파는지 모르겠는데, 한때는 '킬리만자로 원두커피'를 110엔에 팔기도 했다. 일반 커피와는 컵 색깔도, 뚜껑도 다른 '고오급 버전'이었다. 아무튼, 가격이 이렇게 착한데 맛까지 있다. 세븐 카페 커피는 강배전으로 맛이 진한 데다 라떼에 쓰는 우유도 고소하다. 다른 편의점 커피도 마셔봤는데 이 진(하고)진(힌) 조합은 어디도 따라오지 못하더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러운 맛까지 더해져 일본 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일본은 편의점마다 주로 계산대 옆 입구 쪽에 커피 기계가 비치돼 있다. 계산대에서 컵을 계산한 뒤 기계에서 커피를 내려 가지고 나가면 되는 동선인데, 출근·등교 시간엔 컵을 들고 기계 앞에 줄 선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판사님,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커피 이야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자매2의 고백과 반성의 시간. 편의점 커피는 대부분 컵 사이즈가 두 종류다. R(레귤러)과 L(라지). 세븐은 R과 L의 가격이 50엔(아이스는 80엔) 정도 차이가 난다. 그리고 커피 기계에 컵을 두고 사이즈 별로 다른 버튼을 눌러 커피를 받아야 하는데... 모두 예상했겠지만, 자매2가 몇 번 R컵을 가지고 가서 L버튼을 누른 적이 있다.


영상 일기에 남아 있는 세븐 커피 뽑기 장면. R과 L, HOT과 ICE의 구분이 명확한데도 일본 생활 초기엔 모든 언어가 뒤섞여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이다.


미리 말하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세븐 커피를 처음 접한 건 아이스 라떼였다. 뜨거운 커피는 계산대에서 컵 사이즈를 얘기하면 그 자리에서 컵 수령과 결제가 동시에 이뤄지지만, 아이스커피의 경우 냉동고에 있는 컵을 직접 골라 계산대에 가서 돈을 내야 한다. 눈에 들어오는 문자들이 한글에서 일본어로 바뀌어 한창 정신없던 때라서였을까. 냉동고 속 컵 뚜껑 위에 알파벳으로 적힌 'R'과 'L'이 눈에 정말, 정말로 안 들어왔고 사이즈의 구분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아무 컵이나 가져가 계산을 한 뒤 커피를 뽑았다. L컵을 가져가 R컵 분량의 커피를 내려받았던 적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넘치기 직전까지 혜자스럽게 컵에 담긴 커피였다.


이건 컵에 맞는 버튼을 제대로 누른 게 맞다. '의도치 않은 그 행동'은 일본에 간지 얼마 안 되었을 여름, 아이스커피 마시던 계절의 이야기다.


이렇게 자매2는 R컵을 사서 L버튼을 눌러 500원 분량의 커피를 몇 번 마셨다. 이른바 커피 도로보(泥棒·도둑). 몇 번 비슷한 짓(?)을 했다. 이후 네댓 번 더 세븐 커피를 구매한 뒤 컵 사이즈와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띠로리... 그동안 다닌 세븐일레븐을 찾아다니며 "저, 제가 그동안 컵 사이즈 구분을 안 하고 사서 어떤 때는 낸 돈보다 적게, 어떤 때는 낸 돈보다 많이 커피를 마신 것 같은데요, 이걸 어떻게 정산하죠?"라고 해야 하나도 싶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그 이후 정말 문턱 닳도록 세븐 커피를 사 먹었다. 세븐 상, 모시와케고자이마셍..ㅠ.ㅠ





커피 말고도 많다 콘비니 음식

자매1은 세븐에서 파는 3쪽짜리 카스텔라(사진 속 제품은 지매1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 발매된 것이다)와 팩에 든 각종 차를 즐겨 먹었다.


커피 외에도 눈 돌아갈 음식은 많다. 자매1의 최애는 세븐일레븐의 카스텔라. 빵 3조각이 들어있는 240엔짜리인데, 이 사랑스러운 아이는 늘 자매1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여름엔 팩에 든 100엔짜리 각종 차(보리차, 자스민차, 루이보스차 등)도 냉장고에 늘 챙겨뒀다. 패미마에선 참치마요 삼각김밥, 로손에선 모찌롤을 주로 사 먹었다.


여름 별미 히야시츄카도 편의점에서 먹을 수 있다. 메구로의 한 중식집에서 먹었던 히야시츄카(왼쪽)와 세븐의 제품(오른쪽 위), 그리고 로손의 제품.


편의점 음식 하면 즉석식품도 빼놓을 수 없다. 여름에 정말 많이 즐겨 먹은 게 히야시 츄카라는 중국식 냉면이다. 면과 겨자 육수, 각종 고명... 만들어 먹으려면 재료 구해 준비하다 끝날 음식이지만, 우리의 친구 콘비니에는 육수만 뜯어 부으면 끝나는 즉석식품이 있다. 맛도 식당에서 먹는 것과 제법 비슷하다. 오므라이스, 파스타, 오코노미야키, 샐러드, 밑반찬... 다양한 조리 식품은 '상미기간'이라 불리는, '이때까지 먹으면 맛이 최곱니다'하는 일자가 임박하면 저녁에 10~15%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줍줍의 재미'가 쏠쏠하다.


유명 식당이나 제과점과의 콜라보 제품도  많지만, 이보다는 편의점 PB 상품을 강추한다. 세븐은 '골드 시리즈'가 유명한데, 그 중에서도 함박스테이크는 단연 최고다. 주먹만 한 스테이크 한 덩어리가 들어있는데, 거의 4,000원 돈이었다. 참고로 자매2가 라인 메신저 할인 쿠폰 뜰 때마다 갔던 요시노야의 스키야키 전골 세트도 할인가 기준으론 이거보다 쌌던 것 같다. 근데 이 함박은 정말 맛있다. 힘들 때 나한테 상주는 기분으로 몇 번 골드 시리즈 함박, 빵, 깐풍새우,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정말 상 받는 기분이었다.





먹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지금까지 너무 먹는 이야기만 했다. 사실 편의점에선 먹는 것 못지않게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일단 각종 공과금(자동이체 제외) 결제. 솔직히 한국에선 카카오 페이나 QR코드로 집에서 다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긴 하다. 그런데 말이다, 다 한국 같지는 않다. 물론 일본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앞장서서 캐시리스(현금 지양)화에 속도를 내면서 '##페이'로 대표되는 비현금 결제수단 이용률이 최근 크게 늘었다고는 한다. 


잠시 딴 길로 빠져 이야기하자면, 한국에서 휴대폰 하나만 들고 다니던 자매들은 일본에 가서 동전 지갑을 샀다. 현금만 받는 상점들도 여전히 많았고, 두 번 정도 현금을 쓰면 동전이 한 움큼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버스카드 충전할 때 동전을 털어 넣으며 없애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현금 계산 시 애매한 상황(동전 중 1엔이 모자라 10엔을 써야 한다거나 10엔이 없어서 100엔을 내야 하는 불상사)이 한 번이라도 생기면 또다시 동전 부자가 된다. 카페나 상점의 센스 있는 아르바이트생은 동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550엔 결제하면서 1,000엔을 내면 100엔 4개와 50엔 1개(운 없으면 10엔 5개)가 생긴다. 이때 아르바이트생은 1,000엔을 손에 쥔 내게 말한다. "너 50엔 있니? 그럼 500엔 거슬러줄게"라고.


다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무튼 편의점에선 각종 공과금 결제가 가능한데 돈을 내고 나면 계산대에서 결제를 인정하는 스탬프를 찍어서 영수증을 건네줬다. 별도의 단말기에서는 각종 공연의 예매 티켓도 수령도 할 수 있다.


일본 편의점에서는 대형 복사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인쇄, 복사, 사진 인화 등 다양한 작업을 이곳에서 할 수 있다.


깨알처럼 사용했던 건 인쇄·복사·인화다. 주요 편의점에 큰 복사기가 있는데 이 기계를 통해 각종 인쇄 작업과 팩스 송수신, 심지어 사진 인화까지 가능하다. 한국에 온 일본인들이 불편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복사기가 비치된 편의점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직은 그 점포가 많지 않은 것 같다. 편의점 인쇄는 한 장에 흑백 기준 10엔. 우리의 자매1은 일본에 가자마자 급하게 복사할 일이 있었는데, 킨코에 가서 한 장에 250엔을 주고 일을 해결했다. 전문 용어로 '눈탱이 맞은' 그녀는 아직도 그때 받은 영수증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기억해. 세상엔 네가 아닌 네 돈을 노리는 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넌 중요허지 않아.


복사기 옆 기계의 모니터에서 원하는 메뉴를 터치하면 알기 쉽게 작업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인쇄는 다양한 저장 수단을 이용해 할 수 있다.


사진 인화의 컬리티도 좋다. 연예인, 특히 아이돌이 콘서트를 하거나 새 앨범을 내면 편의점과 프로모션을 통해 콜라보 굿즈를 발행하는데, 인터넷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선택해 결제한 후 편의점 복사기에 결제 시 받은 번호를 입력하면 고컬의 사진이 인쇄돼 나온다.



화장실이 급하다면, 근처 편의점으로 뛰어라


마지막 정보! 이건 자매2도 몰랐던 이야기인데, 편의점의 중요 기능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이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공중 화장실처럼 편의점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다. 덕질하느라 이곳저곳 돌아다녀 본 자매1은 콘서트장 근처 편의점 화장실을 자주 이용했다. 공연 날 근처 편의점엔 커피를 손에 든 팬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줄 선 모습도 볼 수 있다. "화장실은 데파토랑 콘비니 아니야?"라고 말하는 자매1. 직접 써본 편의점 화장실은 넓고 깨끗했다.


역시 편의점 이야기는 해도 해도 새롭고 재밌다. 이미 긴 이야기였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숨 고르고, 조만간 또 다른 편의점 이야기를 하려 하니 기대하시라! 쟈, 마타네.




※ 이 연재는 작가 '두번째 행인'과 '엄격한 여행자'가 함께 만들어갑니다. 글과 사진은 두 자매의 소중한 추억이자 자산입니다. 무단 복제는 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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