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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an 13. 2018

[People]꿈을 꾸는 홍콩 소녀, Wyna

싱가포르에서 하루에 한 사람 씩, 새로운 우주를 만납니다.

Wyna. 싱가포르에서 만든 나의 첫 친구.

위나는 너무너무 귀엽게 생긴 홍콩 아가씨다.

길에서 마주치면 당연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겠거니 하고 생각할 정도의 동안과 몸집을 지녔다. 

단발에, 투명한 피부에, 날씬한 몸매에, 반짝반짝반짝 거리는 까만 눈과 아기같은 속눈썹까지.

그래도. 혼자 연고 없이 싱가포르 호스텔에서 지낸 지 꽤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나랑 비슷하다고 추측했다. 아니면 조금 어리거나. (1992년, 나름 베이비부머 세대다.)

알고보니 95년 생. 내 동생이랑 동갑이다. 그런데 겁도 없고 용감하고. 도대체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용기와 야망이 어마어마하다. 


 처음에는 인사도 제대로 한 적 없었다. 데면데면. 그저 같은 호스텔 룸을 쓰고, 내 이층 침대의 일층을 맡아 사용하는 작고 귀여운 아이 정도. 그러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지 3일차 정도가 되어 우연히 말을 텄다. 그런데 너무 대화가 잘 통해서 어쩌다보니 1시간 동안 일어나서 수다 삼매경. 그냥 침대에 앉아서 얘기해도 괜찮았을 텐데. 너무 재미있어서. 멈출 줄 모르고 서로의 삶과 그간의 행적에 대해 얘기하느라 바빴다. 


뭐랄까, 위나는. 5년 전의 나, 1년 전의 나, 어제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다. 사실 오늘과, 내일과, 십년 후의 나를 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살아온 배경과 나라, 환경은 많이 달랐지만. 성격, 가치관, 꿈을 향한 야망과 생활력이 나랑 비슷했다. 

지금은 홍콩의 대학교를 갓 졸업했다고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가진 채 6개월 간 인턴을 하고 있다고. (위나는 내일모레면 인턴십을 성공적으로 갈무리하고 홍콩으로 돌아간다...) 


 내게 홍콩은 다른 의미로 특별하지만, 위나는 홍콩에서 사는 게 지겨워서 이리로 건너왔다고 했다. 지긋지긋하고 틀에 박힌 삶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삶의 방향은 이렇다.

::대학 졸업 -> 홍콩에서 취업 -> 적당히 연애 후 돈 모아 결혼 ->  미친 홍콩의 집값 때문에 집은 절대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빚을 내거나 월세로 전전 -> 출산 -> 양육 -> 하우스 푸어로 사망::


그녀는 불보듯 훤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길 거절했다. 누군가가 정해준 사회적인 정도(正道)를 따르길, 그 법을 준수하는 것을 거부하고, 해외 인턴십이 확정되자마자 3주만에 집을 박차고 나섰다. 그리하여 싱가포르 서치펌의 인턴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그런데 의외로 싱가포르와 홍콩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했다. 

'싱가포르나 홍콩이나 거기서 거기야.' 

비슷한 생활을 하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싱가포르도 마음에 차지 않는단다.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며 웃었다. 실제로 그녀가 인턴십을 마칠 때가 되자, 어떻게 알고 링크드인을 통해 그녀에게 다른 회사에서 인턴이 아닌 정규직 스카웃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역시, 위나는 정중하지만 대차게 거절했다. 


 위나에겐 이 곳 역시 새장이리라. 그녀는 새장보다는 세상이 어울리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다음 스텝은 네팔 트레킹과 인도 배낭 여행. 덴마크에서 교환학생 시절을 보냈을 때, 서양인들의 자유로움과 도전정신에 반해버리고 영감을 얻었기에,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한다. 홍콩에서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발버둥치고 싶지 않아 자신의 Comfort zone을 박차고 나온 소녀. 내가 네팔은 몰라도 인도를 혼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너는 배낭 여행 경험도 거의 없지 않느냐라고 걱정해도 끄떡없다. 그럼 그렇지. 위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껌딱지처럼 찰싹 붙어있다. (내 번호를 저장도 안 해놨으면서 (흥) 어딜 놀러갈 때마다 꼭 나에게 물어본다. 어디에 갈 계획인데 같이 놀러갈 생각 있냐고, 생일파티에 함께 가고싶냐고, 저녁을 다같이 먹을 의향이 있냐고 등등. 옆집 언니처럼 날 잘도 챙겨준다. 그런데 난 고맙다는 말을, 아직도 못했다. )


그녀가 어딜 간다해도 사실 큰 걱정은 없다. 영어도 나보다 잘하는데다가 광둥어, 북경어까지 할 수 있고, 어리다. 가장 큰 자산. 젊다. 어리다. 세상에 겁낼 것이 없다. 심지어 해외에서 혼자 지내면서 일까지 해봤다. 심지어 성품도 착하고 다정하고 예의바르다. 남들 배려를 참 잘하는, 동양 특유의 스윗함을 갖췄다. 그녀와는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 내 파트너가 되주십사 장난식으로 약속을 했다.


 큰 영감을 , 소소한 웃음들을, 진한 용기를, 유용한 조언들을, 다정한 우정을, 그녀의 좋은 친구들을, 멋진 기회들을 기꺼이 나눠준 Wyna. 어쩐지 벌써부터 그녀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꿈을 꾸는 소녀, Wy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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