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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y 20. 2018

[해외취업] 스펙은 얼마나 중요한걸까

여기, 지금, 우리. 스펙보다 더 중요한 것들

우연히 청운의 꿈을 품고 싱가포르 취업을 위해 건너온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 들은 모두 에이전시를 통해 거금의 돈을 주고 싱가포르에 입국했다고 했다. 그 분들은 관광비자 소지자로 싱가포르에 적법하게 체류할 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너무 불안하다는 절망감을 토로했다. 또, 같은 상황이었던 나는 어떻게 에이전시도 없고 연고도 없는 상태로 싱가포르에 와서 취업에 성공했는지 궁금해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떻게든 그들을 돕고 싶었다. 도마뱀이 깩깩 우는 초저녁. 맥주 몇 잔을 기울이며 다같이 둘러 앉아 그 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흠. 그러나 문제.....라기보다는 그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1) 경력이 전무하다.

(2) 무엇을 원하는 지 명확하지 않다.

(3) 대안, 탈출구로 생각하고 에이전시에게 돈을 지불하고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4) 외국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적 사고방식


1. 전무한 경력

물론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곧바로 해외 취업이라는 큰 산에 도전해서 분명 성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력자>약 1년 정도의 경력자(중고 신입)>신입(인턴 등의 경력이 있는) 순으로 해외 이직 및 취업이 쉬워진다. 늘상 말하지만, 한국 회사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연히 한국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을 채용할 때는 업무라도 잘 해낼 확률이 높은 경력직을 채용하지, 한국어도 완벽하지 않고 경력도 전혀 없어서 Risk taking을 해야하는 외국인을 뽑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어 완벽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는데, 굳이 왜? 라는 물음이 있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인턴 경력이라도 어느 정도 있다면, 인턴 생활을 하면서 어떤 것을 느끼고 배웠는지, 또 내가 어떤 가치를 회사에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포장을 잘 한다면 승률이 없지 않다. 실제로 주변에 인턴 경력만 가지고 로컬 기업에 취업한 케이스가 있으니. 

하지만 이 분들은 지원하고자 하는 산업 혹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경력도 전무하였으며, 심지어 인턴을 해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말인 즉슨, 어필할 수 있는 그 어떤 경험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은 해외에서 경험한 적 있다고 토로했으며, (워킹홀리데이) 대학시절, 한국에서 수없이 많은 대외활동은 했다고 덧붙였지만. 글쎄. 그건 (4)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2.명확하지 않은 목적

 내가 싱가포르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분들께서 바로 말씀하셨던 것은, '자리 없나요?' 였다.

얼마나 간절하길래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해지기 까지 했다. 

"어떤 직무나 산업을 구하시나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 건데요?"

"아무거나요. 그냥 아무거나, 사무직이면 되는데요."

물론 절박하고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면 당연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심정이 들기 마련이다. 당장 여기에 온 목적은, 취업을 하여 해외에서 일을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운 좋게 면접까지 간다고 해도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다. 면접관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구직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눈을 맞춘다. 우리 상상보다 많은 후보자들을 만나 면접을 보는 그 베테랑들에게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직무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지금의 간절함은 바꿔 말하면, 취업에 성공한 뒤 언제든지 직무에 대한 권태 및 혐오감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 일'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아무 것에도 특별한 관심이 없다'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3. 한국에서의 구직활동이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았고, 해외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마지막 대안이자 탈출구가 되리라는 생각에 거금을 들여 에이전시에게 의뢰하고 해외로 도착했다.

 한국에서의 구직만큼 해외에서의 구직은 어렵다. 하지만 이 분들은 에이전시에 투자를 했고, 영어 교육 및 비즈니스 매너 교육을 받으면 어떻게든 취업을 알선시켜 주겠지라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입국하였다. 한국에서 취업이 힘들지만, 이 곳은 구직난의 대안이자 혹은 마지막 탈출구가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은 채.

 저번에도 에이전시의 실체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작성했지만, 정말로 에이전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양질의 회사를 찾아 지원하고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데는 일말의 가치가 없다. 해외에서 에이전시를 끼고 취업하는 것이, 한국에서 한국인이 한국 회사에 지원하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며칠만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우리가, 타국에서 직장을 찾기 위해 고전하는 것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온갖 고초와 예기치 못한 장애물, 각종 비자 이슈와 외국인 취업 제한 쿼터 및 언어 장벽, 의료 보험, 세금 문제 등.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는 다소 자유로운 이 이슈를, 외국인 노동자는 피해가기 어렵다. 마음의 각오는 단단하면 단단할 수록 좋다.


4. 스펙- 외국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적 사고방식

"스펙이 어떻게 되세요? 토익 점수는 얼마정도 였는데요?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아주 오랜만에 정겨운 단어를 들었다. 마치 고향집에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스펙'.

스펙 이야기를 하면서, 왜 취업이 안 되는 지 잘 모르겠다며 토로를 하는데 들으면서 내가 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하등의 쓸모가 없는 것들만 나열을 하셔서.


토익 800점 중반대, 여러 번의 메이저 대외활동, 좋은 대학교의 간판 과(Major), 토익 스피킹 레벨, 한국사 자격증, 컴활 자격증 등등..................


 다 갖추고 있는데도 왜 취업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도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모르겠다는 상념에 잠시 빠졌다. 그 분들은 내 스펙을 듣기 원하며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다.


우선 나는 토익 900을 넘지 못한다. 대외활동? 10번 가까이 했지만 결코 CV에는 쓰지 않았다. 토익 스피킹 레벨도 높은 편이 아니다. 경기도에 있는 대학교를 나왔고, 과도 패션 쪽이라 내가 지금 업으로 삼고 있는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사?고 3때, 반타작도 못해서 담임 선생님한테 대놓고 혼난적도 있을 정도로 내 관심사와 멀다. 컴활 자격증은 당연히 없다. 학점은 겨우 3.5를 넘겼고, 어학연수도 떠난 적 없다.

해외에서 취업시, 공고란에 토익과 토익 스피킹을 요구하는 곳은 없다. 이미 읽기-쓰기-듣기-말하기 모든 능력이 업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토익 900점을 맞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아직도 비즈니스 작문을 할 때는 고생깨나 하지만, 업체와 만나 통번역을 하거나 미팅을 갖고, 가격 협상 등을 하고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컴활 자격증은 없지만 알아서 보고서를 만들고 제안서도 종종 만들고, 엑셀은 매우 못하지만 알음알음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배워가는 중이다. 봉사활동 인증 시간은 없지만 하와이에서 시니어 센터에서 한 달 가량 봉사를 한 적이 있으며, 기타 등등 나만의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아마 그 분들의 스펙과 내 스펙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를 하면 나는 절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곳은 한국이 아니고, 스펙은 더 이상 중요한 가치를 갖지 못한다. 해외에서는 절대로 한국사 자격증이나 대학교의 등급을 궁금해하지 않고, 토익이 몇점인지 보다는 지금 당장 면접장에서 30분 내내 업무에 대해 이야기가 가능한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한국에서나 알아주는 대외활동 보다는, 실제로 어떤 것을 배웠는지 파악할 수 있는 인턴 경력과 유관 경험을 궁금해한다. 


스펙보다 중요한 것? 많다.

당신의 성향. 당신의 성격. 까탈스러운 싱가포리언 동료 및 외국인 동료들과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팀플레잉을 할 수 있는지. 내향적이라면 얼마나 회사 스타일과 잘 맞는 지.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고 어떤 가치를 회사에 전달할 수 있는 지. 얼마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은 지, 외롭고 고달픈 해외생활을 어떻게 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당신의 이미지는 어떻고 퍼스널 브랜딩은 어떻게 되어 있는 지. 업무에 대한 이해도와 회사에 대한 애정, 직업에 대한 열정은 어느 정도이며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지금껏 해왔는지. 


한국식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경험과 경력, 당신의 인성과 당신의 스토리만이 오직 이 게임에서는 빛을 발할 뿐.


 새벽이 될 떄까지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나누었다. 싱가포르든, 한국이든, 어디든 간에 희망 가득한 커리어패스를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어야 했는데, 끝내 전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큰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도 하루하루 성장해가느라 바쁜 나날들 속에서, 안타깝고 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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