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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ul 14. 2018

싱가포르 백만장자들 이야기

돈이 없으면 대부분 불행한건 맞는데,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할까?

그들을 만난 것은, 직장동료 덕에 초대된 파티에서였다. 사실 내 직장동료도 그 사람들과 이미 친했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난 싱가포르의 상위 1% 부자들. 

 우리는 요트를 탔다. 우리는 비싼 술을 따고, 온갖 것을 먹고 마셨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정박시켜 파란 물이 파도치는 그들만의 거대한 놀이터에서 수영을 하고 춤을 췄다. 우리는 그림 같은 집의 자쿠지가 딸린 옥상에서 파티를 즐기며 먼 바다와 불빛이 일렁이는 야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처음 느껴 본 온갖 향락에 지속적으로 '불편한 생경함'을 느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듯이 행동했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가진 게 없는 나를 무시할 것 같은 느낌에 젠 체를 한 셈이다. 

마치 '못 된 친구'를 따라 간 피노키오가 당나귀가 되기 직전의 느낌이랄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ㅜㅜ

한 명은 인도 '출신' 싱가포리언이다. 한 명은 러시아 재벌이고, 한 명은 인도계 호주인이다. 일반 승용차도 싱가포르에서는 각종 세금이 부과되어 한국의 3배는 비싼데, 이 들은 모두 벤틀리에 포르쉐, BMW 까지 그냥 장난감 다루듯이 가지고 있다.


몸에 밴, 오만함과 자신감 그 사이의 어떤 것. 그들은 적당히 주변 사람들에게 선을 지키지만,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쩔쩔 매는 주변 사람들. 부유함의 극치를 달리는 그들끼리만 공유하고 있는 비밀들과 비즈니스 프로젝트들. 몇 천만원짜리 옷과 액세서리가 그들에게 고압적인 분위기를 불어 넣은 줄 알았는데, 사실 친해져서 콩고물을 먹어보자는 주변의 분위기가 한 몫한 것일게다. 자본주의 시대의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은 다 박아놓은 듯한 광경에 질리는 느낌을 받으며 웬만하면 이들과 어울리지 않겠다고 결심하던 중, 우연히 그 부자들 중 한 명과 친해지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있냐고 묻길래, 딱 잘라 남자친구가 있고 여기서 남자친구를 만들 생각 없다고 이야기를 하자 오히려 스스럼없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거액의 돈을 투자하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공동 투자자로 만난 격이었다. 그들은 알고보니 Telok Ayer에서 핫하기로 소문나서 나도 몇 번 방문했던 바의 투자자였고, 몇백억짜리 본인 소유 요트만 타고 다니며 한량처럼 노는 줄만 알았더니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클럽들'과 고층에 위치한 '바'의 주인이기도 했으며, 마리나베이샌즈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투자를 하거나 부기스 근처의 하지레인 건물을 소유한 건물주기도 했다. 그 건물은 내가 싱가포르에 거지처럼 들어와서 9인실 게스트하우스에서 살았던 거리의 바로 옆 골목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놀라서 한국어로 욕을 뱉었다.) 그 밖에도 그들이 직접적으로 소유하거나, 관련있거나, 투자를 한 건물과 프로젝트와 사업체가 너무 많아서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이런 거물이 나에게 계속 연락을 해서, 내가 만나줘야 하는(?) 게 신기했다. 대체 왜? 그저 평범한 한국 여자애고, 싱가포르에서 입에 풀칠하며 사는 사회 초년생에, 집안이 좋거나 외모가 특출나거나 학벌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고 직업이 독특한 것도 아니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막무가내로 솔직해져보기로 했다. 


 "그 날 파티에서 보고 네 주위에 얼쩡거리는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을 봤어. 다들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던데? 그리고 원래 나랑 내 직장동료 A가 너네 요트 파티에 끼는 것도 아니었다며. 다른 여자애들이 원래 요트파티에 먼저 초대되었던 걸 들었어. 난 다들 같이 네 친구 요트 파티에 가는 줄 알았는데, 우리만 있어서 당황했다고. 왜 그랬어? 걔네 민망하게......."

"걔네는 원래 그런 애들이야. 뭐, 별 이유 없는데? 그냥 내가 너네만 데리고 가고 싶었어. 아, 그 날 파티에 왔던 여자애들 중에 한 명은 대놓고 나한테 그날 밤에 같이 자자고 했어."

"(말잇못)"

"나한테 이제 원나잇 스탠드나 짧게  엔조이하고 이런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어. 재미도 없어."

"왜? 너도 알다시피 너의 돈이나 직업 같은 걸 보고 한 번 어떻게 엮여보이려고 하는 애들이 없을 리가 없잖아. 엄청 많지? 그런 사람들."

"하하하. 많지. 여자애들 중에는 대놓고 원나잇 제안하는 애들도 많고. 사업 한번 해보자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내가 20대 중후반 때는 원나잇도 많이 했지. 그땐 사람을 진지하게 사귀는 것 보다는 그냥 여러 명 만나면서 재미만 즐겼던 때니까."

"그렇구나. 그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왜 계속 나를 만나자고 했어?"

" 생각도 못한 질문이네. 그냥. 음. 넌 다른 사람들처럼 내 돈이나 집안, 배경 때문에 접근하는 게 아니란 걸 느꼈거든. 그리고 너랑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되게 편히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 둘이 이야기할 주제가 참 많다는 것도 좋고. 지금도 이야기가 안 끊기잖아. 난 원래 내 얘기를 먼저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처음 만났는데도 너한테 내 결혼관이나 인도의 우리 집안 이야기까지 털어놓을 정도니. 넌 이제 내 친구야."

"넌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잖아. 이제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너랑 가까워지려고 하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

 그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했다. 누구를 만날 때마다, '나 자체'를 먼저 보는 것이 아닌, ' 나 자체 너머의 다른 것'을 먼저 바라 본 뒤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난다니.난 그런 고민을 할 필요 없으니, 돈이 없어서 이런 건 좀 다행이라는 실없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다. 인도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고, 개인사라 밝히기는 힘들지만 모종의 집안 간 권력 다툼에 휘말려 힘든 시기를 보낸 뒤 싱가포르로 오게 되었다. 그가 싱가포르로 오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컬했다. 작년에 내가 힘들어했던 '아무도 나를 모르는 상황'이 그에게는 곧 '자유'를 의미해서, 그는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그 상황이 행복했다고 얘기했다. 모든 것을 떠나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이 곳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의 돈을 목적으로 원나잇과 갖은 술수를 다 부리는 이성들과의 만남도 지쳐 이젠 결혼을 원한다고 했다. 의외였다. 이제 아름다운 온갖 국적의 모델들과의 만남도, 짧고 진한 교제도 다 필요 없을 정도인지. 사람들이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는 이제 안정적인 가정을 원한다 했다.


  모든 것을 다 가져서 더는 바랄 게 없겠구나, 하고 생각한 그도 불행의 씨앗을 곳곳에 품고 있었다. 앞서 말한 요트를 가진 억만장자와 공동으로 투자했던 사업의 잘 안 되어, 투자금을 날려먹어 밤잠 못자고 괴로워한 나날도 있었고, 한 눈에 반한 프랑스 여자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힘들어하며 아직도 추억하기도 했다. 원하지 않는 사람과 오랜 기간을 같이 있어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던 날들을 보냈기도 했고, 5가지 다양한 사업체를 경영하다보니 온갖 곳에서 이슈가 터져 주말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24시간 동안 일을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와 달리 그의 친구인 외국 재벌인 러시아 억만장자는 이혼을 두 번이나 했으며, 친 자식들은 전 부인이 억대의 이혼 위자료를 받아서 키우는 등 무슨 헐리웃 스타같은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처음에 그의 예쁜 유러피안 모델인 여자친구가 그보다 한참 어린 22살(!)이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공포에 빠졌었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의 삶을 재단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해 그녀가' 싹수 노란 골드디거'라고 여기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는 현재 싱가포르를 잠시 떠나, 간간히 모델일을 하는 어린 여자친구와 함께 북아프리카로 항해를 떠나 그 곳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다. 그는 두번이나 이혼했으니 평생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하는데,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내 친구와 그가 비교되어 상당히 아이러니했다. 


 가늠도 안될 정도의 부자들을 만나며, 한층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밥 한끼 먹을 돈이 없어서 고통 속에 허우적대다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들의 행복은 깨끗한 물과 밥 한 끼 일텐데, 부자들은 이미 그런 단순하지만 너무 강렬한 생존의 고민은 태어나 단 한번도 하지 않았으리라 . 자본이 곧 자유를 상징하는 사회, 이 시대에서 그들은 무한정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었기 때문에, 더이상 성취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쁨을 누릴 수 없었다. 여러 기쁨들이 거세되며 그들은 어느 새 화려한 향락과 유흥에도 무덤덤해져버렸다. 역치가 너무 높아져버린 것이다.  어느 것에도 즐거움을 누리기 힘들어지고,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해지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진정한 친구를 만나 우정을 쌓는 것이 힘들어지게 된 셈이다. 아마 그 때문에 그들에게는 비즈니스가 승과 패를 가르는 게임으로 느껴져서, 이미 많이 경영하고 있지만 새 비즈니스에 집착을 하며 더 성공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 열심인 것일 수도 있다. (대다수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속된 말로 목숨을 걸고 비즈니스를 하는 데 말이다.......)


 어떤 삶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지, 행복을 보증하는 것인지에 대해 감히 설교를 늘어 놓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막연하게나마 믿었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삶. '금수저 집 출신 성공적인 재벌 2세들'의 인생들도 그렇게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부자되세요'라는 CF카피가 유례없이 대박이 났던 나라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낸 나는, 부자 = 행복 이라는 공식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있었다.

불편한 감정은 있었지만, 어쨌든 요트를 타고 항해하면서 본 싱가포르의 석양은 최고였다.

물론 지금도 빈자와 부자 중에 무엇을 택할것이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후자이다. 그러나 맹목적으로 부를 추종하기 보다는, '자유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도구'로써의 부를 추구하고 싶다. 돈이 많으면 유학도, 세계여행도, 기부도, 새로운 프로젝트도 쉽게 진행할 수 있을테니까. 내 자유를 확장해줄 정도의 부를 추구하되, 인간적인 행복과 휴머니즘까지 소실될 정도로 무거운 부는 사양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의 생각이다. 부자들도 평범한 이들처럼 삼시세끼 밥을 먹고,사랑받고 싶어하며, 크고작은 불안감과 외로움을 마음에 쌓아두고 지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목도하자, 형언하기 힘든 공허함과 안도감이라는 양가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돈이 다라고?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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