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름 Jul 16. 2018

싱가포르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뭐할까?

저녁이 있는 삶. 당신의 저녁은 무슨 색인가요?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고 싶어하는 이유를, '저녁이 있는 삶', '수평적인 직장 문화' 등등을 꼽는다. 한국도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퇴근 후의 삶에 대해 점점 고민하고 있는 시기인 것으로 안다. 흠, 그렇다면 싱가포르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과연 무슨 일을 할까? 취미 생활을 많이 가지고 있을까?


(1)나(20대 후반. 女) : 브런치를 쓴다. 작가의 서랍에만 넣어 놓고, 발행을 차마 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가득 뒤집어 쓴 글들이 한가득. 요즘은 한국어로 된 책을 읽기 바쁘다. 영어를 주로 쓰고, 지겹도록 영어 이메일과 왓츠앱과 전화를 하다보니 한국어가 오히려 그리워졌다. 친해진 언니오빠들과 기꺼이 독서모임을 만들어 한국어 책을 교환하고자 한다. 책을 읽고 서로 느낀 점을 짧게나마 말하며,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길 바라는 (?) 그런 교류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싱가포르에서 지내고 계신 분들 중에 끼고 싶으신 분들은 메일로.) 벨에포크 시대의 파리, 고상한 아티스트들의 북 살롱 느낌을 원하지만 사실은 그냥 재미반 의미반 혼종 탄생 예상.

 미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본다. 끝내지 못한 일을 마저 하거나, 필력 좋은 작가들의 브런치 글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 남자친구와 킬킬 거리며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잔다.

(2) 회사 동료의 경우( 20대 중반. 女) : 고양이를 입양했다! 귀여운 아기 개냥이와 노느라 정신이 없다. 종종 싱가포르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 싱가포르는 고양이와 강아지 입양비가 천문학적으로 비싸다. 그리고 가족이 된 후, 꼭 칩을 이식해야 한다. 의도적 유기나, 잃어버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함께 고양이들이 있는 펫샵에 가서, 가격을 보고 까무라칠 뻔 했다. $700 싱가포르 달러는 기본이고, $2000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으악.하지만 가격이 대수랴. 새로운 캣초딩을 입양하여 언제나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산다. 


(3) 하우스 메이트(40대 초반. 女) : 다국적 남자들과 썸을 타고 있다. 여념이 없으시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사신다. 영국, 프랑스, 호주 등등 스펙 장난 아닌 사람들과의 알듯 말듯 밀고 당기고 휘두르고 밀치고 하시는 중이다. 싱가포르에서도 핫한 '틴더' 데이팅 앱을 이용하여 즐거운 데이트 생활 중. 그녀의 엄청난 카리스마와 웬만큼 큰 회사는 다 집어넣은 탄탄한 커리어, 박학다식함, 똑부러지는 매력에 나이를 불문하고 따르는 남자들도 많은 듯 하다. 

별을 보러가고 싶다는 슬픈 나의 친구. 친구야...힘내.

(4) 절친 로컬(30대 초반. 男) : 야근에 치여 사는 가장 안타까운 (?) 존재. 곧 승진 평가를 눈앞에 두었기 때문에 더더욱 미친듯이 일에 매진하고 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항상 9시나 10시. 야근이 잘 없는 싱가포르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다. 가끔 창문을 열고 먼 별들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거나, 페퍼민트 차를 끓여 마시며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종종 내게 연락을 해서 힘들다고 털어 놓는다. 실연의 아픔엔 성별도, 나이도, 국적 불문. 그냥 뒤지게 아프고 힘들다. 나를 매우 많이 도와준 생명의 은인 급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좋은 말을 해주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던 한국 여자와 사귀었기 때문에, 헤어진 후에도 끝없는 이별의 아픔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친구야, 힘내.


(5) 유러피안 상사(40대 후반. 男) : 고백하자면 아직도 나이를 묻지 않아서 나이를 모른다. 그냥 40-50가까이로 보인다. 아무튼 나를 많이 아껴주시는 이 분은, 두 명의 딸들이 매우 어리기 때문에 아주 일찍 출근을 하고 아주 빨리 퇴근을 한다. 2시간 일찍 출근, 퇴근은 딱 6시 정각에 맞추어. 딸들의 생일을 위해 유니콘 2단 케이크(!)를 구워서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딸의 학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퇴근하고 같이 공부를 하고 시험 준비를 한다. 가끔 가족이 모두 함께 수영장으로 내려가서 저녁에 수영을 하기도 하는 등 저녁이 있는 삶을 충분히 잘 누리는 좋은 예이다.


(6) 필리핀 직장 동료 (20대 후반. 男) : 엄청나게 액티브한 취미활동을 보유하고 있어 의외였다. 베이킹에 관심이 있어서 베이킹을 직접 배우러 다니고, 퇴근하고 난 다음에는 헬스 장에 가서 운동을 따로 한다. 배움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넘쳐 잠시 연애를 쉰다고 본인 말로는 (?)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커피 및 주조 등에도 큰 관심이 있어 따로 시간을 내서 주말에 클래스를 신청하기도 했다. 퇴근하고 나서의 맥주가 꿀 맛이라며, 혼술을 극찬하기도. 


(7) 로컬 디자이너 친구(30대 초반. 男) : 지금 발리로 디지털 노마드가 되기 위해 떠난 멋진 친구. 주로 퇴근하자마자 댄스를 배우러 클락키로 달려갔다. 이 친구의 취미에 대한 열정, 춤에 대한 사랑은 거의 광신도 급이어서 '너 뭐하니?' '너 오늘 뭐할 거야?' 라고 물어보면 늘 똑같은 대답 뿐이었다. 원래 춤의 ㅊ 자도 모르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한번 접해본 댄스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고 거의 매일 , 거의 모든 주말을 춤을 추며 보낸다. 기타 쉬는 시간에는 춤 동영상을 보고, 댄스 파트너와 의견을 교환하고, 춤 연습을 집에서도 하는 등 정말 춤바람이 제대로 들었다! 한번 꽂혀버린 그 열정이 참 멋있기까지 했다. 발리에서도 춤을 춘다고.


(8) 회사 인턴(20대 초반. 女) : 차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가지려고 했던 티팟 두개 중 하나를 선물로 줬더니 어찌나 좋아라하던지.  연신 '가져도 돼?' , '진짜야?' , '만약에 이거 누가 줬어?라고 하면 어떻게하지?'라고 묻길래 조금 목소리를 높여서 꼭 가져가라고, 누가 묻거든 내가 가져가라고 했다고 내 이름을 대라고, 오늘부터 이 티팟 주인은 너니까 봉투에 딱 싸서 가져가라고 하고 종이봉투에 꾹꾹 내 마음까지 담아서 넣어줬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생각나서.

 그녀는 퇴근한 후, 티를 한 잔 끓여 마신 뒤에 조깅을 하러 동네를 돌아다닌다고 했다. 밤에도 저녁에도 여자 혼자 조깅하기에 아무 위협이 없는 나라이니. 딱 싱가포르답다, 라는 생각에 옅게나마 미소가 번졌다.


(9) 회사 동료( ?? 女) : 우리 회사에서 외모를 봤을 때 제일 '한국식으로' 예쁜 동료. 퇴근하고 폴댄스를 추러 간다고 했다. 나도 추고 싶은데. 그래서 그런지 가녀리고 몸 선이 참 버드나무같은데 동시에 탄탄한 근육이 있어 멋지다. 눈코입 다 화려하게 예쁘다. 그런데 성격도 좋다.  


(10) 로컬 디자이너 ( ?? 女) : 우리 회사의 파트너 사인 - 디자인 에이전시의 전담 디자이너. 말레이시아계 싱가포리언으로, 히잡을 썼지만 감출 수 없는 패션 센스가 반짝반짝하는 사람이다. 둘다 좌충우돌 실수를 하면서 이제 전우애(?) 비스무리한 것 까지 생겼다. 직급이 낮은 관계로....... 실무자인 관계로....... 어느 시간에도...... 둘다 서로 연락이 너무 잘 되서 소름끼칠 정도. 서로 야근 - 주말출근 - 과도한 업무량 - #디자이너라이프 #마케터라이프 라고 징징거리면서도. 원하는 대로 요청 들어주고, 더블체크 해주고, 시안 보내주고 하면서 처음보다 훌쩍 가까워졌다. 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서, 달디단 신혼 생활 + 캣 집사 생활 + 밀린 업무 재택근무하며 처리하기 등등 취미생활보다는 여러가지 일들에 치이는 듯해 보인다.


(11) 지인 (30대 초. 男) : 공무원 일을 하다가 때려친 뒤, 현재는 댄스 학원의 수석 선생님이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사람들에게 재즈댄스, 힙합 댄스 등을 가르친 후 퇴근하고 나서는 바로 본인의 게스트하우스로 직행한다. 사실 그는 내가 입싱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을 때 처음 만난 게스트하우스의 사장이다. 공무원 일을 몇년 하며 그는 게스트하우스를 하면 좋겠다 싶은 곳의 입지와 가격, 컨셉과 타겟 고객들을 계속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여유 자금이 모이자 과감하게 퇴사한 뒤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 게스트하우스 내에 루프탑 바도 만들어 런칭했다. 퇴근하고 나서는 결국 자신의 일, 2라운드 및 3라운드가 시작되니.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지만 싱가포르에도 적지 않다.


기타 자전거를 타러 다니는 사람, 홈트레이닝이나 요가를 하는 사람, 남자친구와 함께 봉사를 하러 가는 사람, 요리를 미리 해서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람 등등. 소소하게 다른 싱가포르의 저녁 모습이 다정다감하게 내게 다가왔다. 한국도 주 52시간이 정착되면, 아이와 쿠키를 굽거나 춤을 추고, 별과 달을 바라보면서 티를 끓여 마시고, 제 2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반려동물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거나 - 수줍음 많은 글들을 사각사각 쓰거나 사람을 멈칫하게 만들 좋은, 진한 글을 읽어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퇴근하고 일본어 공부나, 발레, 태그매니저 코스를 수강하고 싶은데 도대체 저 중에 하나도 제대로 시작한 것이 없다.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 사실 그냥 항상 내가 문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