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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ul 29. 2018

외국인들이 싱가포르를 택한 이유들

다양한 외국인 근로자들, 싱가포르를 찾게 된 이유들은?

로컬 친구보다는 외국인 친구들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나. 그리고 싱가포르. 고국을 등지고 싱가포르로 흘러 흘러 들어온, 각양각색 여러 외노자들의 이야기.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의 이유는 얼마나 다를까? 그들의 사연은 무슨 향과 색으로 뒤덮여 있을까? 싱가포르로 오지 못했다면 영영 만날 일 없었을 그들과의 인연. 마치 검푸른 망망대해에서 만난 아름다운 초록 섬처럼 싱그럽고 신기한 인연으로 늘 내 곁에 있다.




1)     리치(가명) – 인도 북부 출신의 IT 업계 엔지니어. 서른 정도다. 1월의 어느 날 클락키의 댄스 사교 모임에서 친구의 친구길래 안녕-하고 인사를 나누다가 친해지게 되었다.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인도 남자와 친해질 계기가 있다면 아주 조금, 일부러 선을 긋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리치가 제일 좋다고 내가 다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그 정도로 정이 많고 흥도 많은 순수한 친구. 리치는 4년 전, 취업한 인도 회사에서 싱가포르로 보내주게 되어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었다. 인도 회사 자체가 규모가 큰 편이어서 복지와 혜택, 리로케이션 금액 등도 나쁘지 않게 챙겨준 편. 하지만 엄청난 수준의 고연봉자는 아니기 때문에 회사가 있는 CBD에서 멀리 떨어진 이스트코스트에서, 인도 사람들과 아파트를 쉐어하여 살고 있다. 리치가 한번 내 친구들을 다 초대해 홈파티를 연 적이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오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미래를 얘기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원래 싱가포르로 와서 거주할 계획은 처음에는 딱히 없었다고. 그래서 회사가 제안했을 때도, 오랜 고민 끝에 고향을 떠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민의 이유는 결혼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부담감, 모험에 대한 두려움과 기타 등등 불확실성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털어놓았다. 싱가포르에서 지낸지도 벌써 4년. 이제는 좀 지겹다고. 따라서 홍콩이나 일본에서 일을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싱가포르는 5년, 10년, 20년 살기에는 너무 작은 동네인걸까? 하는 감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2)     로디 – 에든버러 출신의 건축/건설 현장 프로젝트 매니저. 나이는 … 비공개에 부치도록 하겠다. (나이와 머리숱 이야기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내 모든 친구들을 통틀어 최고령자. 그러나 나는 그를 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그의 유쾌하고 사려 깊은 성격과 옷 입는 센스, 라이프 스타일 등등을 종합하면 정말 멋진 ‘오빠’ ? 정도로 묘사 가능하다. 원래 싱가포르로 오기 전에는 일본 도쿄에서 몇 년간 살았으며 그 때문인지 일본어가 매우 능숙하다. 일본에서 싱가포르로 온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나,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지 않고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 예정인 듯. 이 곳에 주택을 구입했다고 한다. 애초에 아시아 문화에 꽤 관심이 있고, 일본어와 영어 이중언어 구사자이기 때문에 높은 급여와 혜택을 누리며 즐겁게 살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억대 연봉임은 확실하다. 그 밖에 디제잉에 조예가 높기 때문에 발리에서 진행할 본인의 디제잉 이벤트에 나와 내 친구를 초대하고, 파티를 기획한다. 일본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APAC마켓을 커버하고 있기 때문에 출장이 잦고 발이 넓다. 가끔 만나 맥주를 마실 때면, 출장 때 생겼던 에피소드(현지 필리핀 직원이 본인에게 추파를 던졌다던가, 일본인 보스를 모실 때면 생기는 희한한 일들 등등)를 난롯가 앞에서 불피워 놓고 할아버지가 손녀들에게 이야기 하듯- 정답게 들려주곤 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재밌고 웃길 수가 없다. 


3)     엘라 – 필리핀 출신의 직장 동료. 아직 앳된 얼굴이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숙녀. 마냥 어려 보이고 20대 초반 한국 여자아이들처럼 잘 꾸미고, 애교 많은 성격이라 잘 몰랐지만 알고 보니 필리핀에 있을 때 조그만 무역 사업을 했었다고 했다. 한국 화장품과 음식 등을 가져와 판매하는 일로, 짭짤하게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우선 싱가포르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어렸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새로운 나라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사업을 잠시 뒤로 미루고 이 곳에 건너왔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필리핀 내사업 파트너와 투자자를 찾아, 그들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 어쩌면 그녀에게는 이 나라가 생각보다 큰 기회의 땅은 아닐지도 모른다. 


4)  SJV - 인도 출신 친구. 엄밀히 분류해보자면 지인과 친구의 중간으로, 그는 나를 친구로 치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에 나는 지인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거대 MNC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집이 두 채이기 때문에 에어비앤비 및 렌탈 사업으로 짭짤하게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인도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지만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부인과 이혼한 뒤 싱가포르로 건너오게 되었다. 마음에 새겨진 큰 구멍과 절망감,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을 어떻게든 떨쳐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싱가포르행. 이혼을 후회하지 않지만, 그 때의 시간이 너무나 괴로워서 - 그 당시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아예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다. 딱히 싱가포르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싶은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IT 관련 기업이 많은 싱가포르의 생태계와, 십 몇년 전 당시 외국 고급 인력을 두 팔 벗고 환영하던 싱가포르의 이민 정책 및 고연봉을 제시한 당시의 회사 등등 매력적인 옵션들에 이끌려 뒤도 돌아볼 것 없이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 어마어마한 커넥션을 만들고, 본인만의 네트워크를 이끌고, 성공한 비즈니스 맨이 되었으니 그 때의 결정은 옳은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행복한가 아닌가는,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나는 어떤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내게 싱가포르로 흘러 흘러 들어온 이유를 물을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 설명하곤 한다.


첫 번째, 짧은 버전. 한국에서 있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싱가포르라는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내 행운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To try my luck)


두 번째, 재미없는 진지한 버전. 한국에서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이대로 늙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미래가 앞에 보였다. 재미없는 비디오를 두번 보는 것처럼. 나는 젊고, 영어와 한국어를 할 수 있으며, 짧게나마 경력도 있고, 싱가포르에 지인 한 두명이 있었으며,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었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날개가 있으니 날아보고 싶었다. (If I have wings, why not 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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