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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an 10. 2019

[해외취업]싱가폴, 그 다음 행선지는?

다들 어디로 그렇게 떠나시나요 총총

싱가폴 사진 아닙니다

벌써 여섯 명이다. 

싱가폴에서 만나서 가까워졌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떠나버린 사람들이. 

싱가폴에 오래 지내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사실 그리 오랜 시간동안 이 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약 일년 즈음. 그러나 벌써 재회를 기약하기 어려워진 이들이 여섯이나 된다.

밝게 웃어주던 다정한 사람들. 도대체 그들은 싱가포르를 뒤로 하고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


ㄱ. 위나

홍콩에서 온 소녀이자 가장 처음에 친해졌던 친구. 아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어 묵언수행을 해오던 수다쟁이를 구원해 준, 좋은 아이였다. 싱가포르에서 헤드헌터로 일을 했다. 홍콩 - 싱가포르는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체결되어 있어 그녀에게는 싱가폴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반년으로 예정되어있던 인턴십이 끝나기 한 달 전, 그녀에게는 총 2개의 오퍼가 들어왔다. 

1)현재 근무하고 있는 헤드헌터 회사에서의 정규직 제안.

2)경쟁 헤드헌터 회사에서 들어온 같은 롤의 정규직 제안.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두 개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다. 그리고 홍콩으로 잠시 돌아가 집밥을 먹으며 마음과 몸의 허기짐을 채우고, 일본과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다시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차이점을 모르겠어. 너무 비슷한 걸. 나에게는 더 큰 무대가 필요해. 그래서 나는 여기 더 이상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해서 집에 일단 돌아온 거야. 싱가폴이나 홍콩이나 둘 다 좋아. 나쁘지 않아. 하지만 다시 돌아오진 않을래."

 그녀는 홍콩에서 몇 년간 직장 생활을 경험한 뒤, 서유럽으로 갈 게획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ㄴ. Y

역시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최초로 만난 이들 중 하나. 싱가포르에서 영어 연수 과정과 대학교를 졸업하고 구직 중인 취준생이었다. '한국촌'을 통해 만나, 비슷한 상황에서 마주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나의 모난 성격도 그녀의 다정함과 세심함, 배려심 앞에서 몽글몽글 녹아내렸다. 

그러나 그녀는 두 번의 취업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오히려 후회가 남지 않는다며 씩씩하게 웃어보이던 착한 아이. 나를 언니, 언니 라고 꼬박 꼬박 부르며 존댓말을 쓰던 예의바르고 선한 동생.

 그녀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한국에 간 뒤. 바라마지 않던 관광업계에서 종사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직무에 관한 고민을 안고 팍팍한 서울살이를 헤쳐나가고 있다고. 싱가포르에서의 유학 경험 및 전공 지식을 살려 한국에서의 취업은 빠르게 성공했지만, 한국식 직장 문화 및 사회생활은 처음이다보니 힘들다고 할 때마다 목소리에서 걱정이 묻어나온다. 싱가포르에 대한 긍정적이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만 같다. 


ㄷ. 마르셀

위나의 친구로 독일 베를린 근처의 도시에서 온 아이. 엄청난 노안(?)으로 나보다 최소 세살은 많을 줄 알았는데, 다섯 살이 어렸다. (......) 차가워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취준 시절의 나를 흔쾌히 챙겨주고, 자기 회사에 빈 자리가 있는지까지 상사에게 물어 봐줄 정도로 따스했다. 싱가폴에 남고 싶어했으나, 역시 반 년이 지난 뒤 인턴 계약이 끝나 독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싱가폴 인턴십 직무는 세일즈 어시스턴트! 세일즈 파트를 전체적으로 보조하고 사수인 세일즈맨의 adhoc duty를 수행하는 것이 주였다. 인턴십 과정을 거치며 우연히 만난 인도네시아 여자친구와 아직도 롱디 중!

 여자친구를 생각해서라도 여기 남고 싶어했지만, 그를 고용했던 싱가폴 회사에서 비자 문제가 생겨 타이밍이 딱 맞아 떨어지지 못했다. 


ㄹ. 케이티

한국계 미국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외모와 에너지를 가졌다. 몇 달간 나의 하우스 메이트였는데, 싱가폴에 10년을 지내서 그런지 (?) 매 주말 밤마다 돌아오질 않으셨다. 무한반복. 친구도 많고, 파티도 좋아하고, 전형적인 미드에 나오는 발랄하고 긍정적인 아시안 파티걸 캐릭터가 세상에 나온다면 그 언니일 것이리라. 나와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떠나며 화장품과 요가매트, 운동복과 베개 등등 한번도 쓰지 않은 새 것들을 잔뜩 선물하고 가며 좋은 말들을 이것저것 곁들여줬던 거로 봐선? 그래도 서로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품고 있었다.  

 MNC 코리안 마켓 세일즈 담당으로 이직한지 5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호주에 위치한 아주 규모가 큰 IT회사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는 바람에 금방 이직을 하게 되었다. 곧 마흔이 되는 나이에 미국도, 한국도, 싱가폴도 아닌 제 4의 나라로 간다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멋지게 훌쩍 떠나버렸다.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큰, 진취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 친구들도 다 있고 추억도 많지! 그런데 나는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이 기회를 흘려보낼 수가 없었어. 물론 모든 게 다 새롭겠지. 아는 사람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고. 버거울거야. 알아. 그런데 커리어 욕심에 다른 건 다 잊게되더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너도....... 싱가포르에서 정말 잘 지내길 빌게."

 싱가포르가 싫다기보단 호주에서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대부분 싱가포르에 있는 인재들은 비교적 편하게 호주로 건너간다는 데 그 말이 정말이었다.


 ㅁ. 에반

 브런치 구독자에서, 지인으로. 지인에서, 친한 친구이자 친한 오빠로. 그는 연애를 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물론 '연애'그 자체가 하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 같은 그만의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쿨하게! 일년도 지내지 않고, 싱가포르 자체에 사직서를 던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보고싶을거야. 브로. 앞날에 축복을. 미래에 행복만 가득하길. 


ㅂ. R

인도에서 온 엔지니어로 거대 은행에서 일하는 내 친구. 이유는 안 물어봤는데 싱가폴이 마냥 좋단다. 여행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나라로 RELOCATE되어 떠나는 것에 그 어떤 거부감이 없다. 곧 베이징으로 떠날 예정이라 팔자에도 없던 중국어와 한자를 무지 배우고 있다.

"내가 여자친구가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면? 아마 얘기가 달라졌을거야. 떠나지 않고 여기 오래 머무르려고 하겠지. 하지만 그 어떤 제약도 없을 때 나는 더 많은 나라를 가보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고 싶어. 이 세상이 책이라면 내가 아직 읽지 못한 페이지가 너무 많잖아."

어.......나마스떼. 리스펙. 그의 긍정적이고 밝은 태도는 종종 현실에 치여서 부정적인 나를 새롭게 깨어나게 만들 때가 있다.


그 밖에 동남아에서의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 스페인으로 발령받아 떠난 이 세상 멋짐이 아닌 커리어우먼인 미쉘(한국인), 빡세게 몇 년 싱가폴에서 일하고 세계여행을 시작하여 지금 남미 어딘가에 있는 오빠(한국인), 싱가포르를 떠나 정착한 말레이시아에서 알콩달콩하게, 동시에 성실함으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는 언니(한국인), 사내 문화 및 회사 사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실리콘밸리 출신 악덕 꼰대 (?) , 싱가폴에서 살만큼 살았으니 삶의 질만큼은 대폭 높아지길 바라며 태국으로 간 파티시에(오스트리아 인), 경영자로 성장하기 위해 잠시 싱가폴에 있다가 프랑스 빠리로 떠난 MBA 학생 (중국인). 회사 발령으로 인해 홍콩으로 떠나게 된 주식 트레이더 (영국인) 등.


이별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가지맛!!!!!

흔히 싱가포르를 '정착을 위한 국가'라기보다 '더 큰 곳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라고들 말한다. 2017년에 도착했을 때는 왜 그렇게 칭하나 궁금했는데, 이제 알 것도 같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싱가폴에 얼마나 오래 있을 거냐고, 정착할 생각이 있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은 하나였다. 놀랍지도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잘 모르겠다고. 자기도 대답을 못하겠다고. 


 꿈을 꾸는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언젠가는 떠나는 곳. 이 곳이 매혹적이지만 언뜻 공허해보이는 이유는 그게 아닐까? 


신속하고 유의미한 정보를 선물하고자 바다 건너 남쪽 나라에서 귀하에게 전자편지를 발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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