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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정 Jul 12. 2023

9. 둥식이와 함께 춤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VS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8)


둥식이의 등장에 집사생활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 같았다. 그야말로 개냥이 기질이 있는 둥식이는 애교로 식구들의 마음을 열었다. 주인을 찾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반의 애정만 주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둥식이의 주인을 찾기는 힘들겠다 싶을 즈음 우리는 어느덧 둥식이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둥식이로 인해 예민해졌던 샤샤는 그런대로 둥식이를 받아들였다. 곁을 쉬이 내주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둥식이는 자신이 객식구로 왔다는 생각에서 위계를 지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들지 않고 순응했다. 둥식이의 이런 무덤덤함이 아니었다면 함께 살기는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성이 그런 것인지 느릿한 둥식이는 매사에 여유가 있었고 귀엽다고 안아 올리면 그다지 좋지 않을 때도 그러려니 하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둥식이는 발톱이 없는 냥이인 양 실수로라도 우릴 다치게 하는 법이 없었고 어찌나 애교가 많은지 딸아이에겐 팔이 아프겠다 싶게 꾹꾹이를 했고 걸음마다 다리 사이를 훑고 지나다녔다.





둥식이가 무심한 듯 애교가 넘치는 것과는 반대로 샤샤는 예민하고 시크한 매력의 냥이었는데 새 식구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항문낭이 터지기도 했다. 고양이 열 마리 중 한 마리에게나 보이는 증상이라는데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기에 얼마나 놀랐던지... 병원에서 수술과 입원의 과정을 거치며 또다시 무지한 집사는 한탄했다. 수술 후 입원하는 동안 혹시나 둥식이에게 밀려 여기에 왔나 싶을 까봐 갈아 면회를 하고 애정 어린 말을 쏟았지만 샤샤는 알아 들었을까... 다행히 며칠 후 경과가 좋아서 통원하게 되었고 샤샤는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이제는 두 마리의 냥이 그런대로 어울리고 있다. 우리는 놀이를 할 때나 간식을 줄 때나 샤샤를 먼저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샤샤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더할 수 없는 위로를 주며, 감사의 제목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선물이요 가족이 된 첫 고양이다. 먼저 떠나보내고 아직도 가슴이 아픈 까망이와 새롭게 가족이 된 둥식이, 앞으로 또 다른 냥이를 맞게 된다 한들 그런대로 건강하게 오래도록 평안한 날들이 계속되길 바란다.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8)


둥식이가 오고 나서 나의 생활 리듬은 엉망이 되었다. 녀석이 거추장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산만한 덩치로 애교 뒹굴을 하는 것도 당최 못마땅한 데다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통에 밥 달라고 울어 본 적이 없는 내가 밥이 없다고 신호를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밥은 집사가 대령하는 것이지 내가 요청하는 것이 아닌데 여왕의 체면을 구기는 것이 몹시 언짢다.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이 아프다 했더니 이윽고 탈이 났다. 집사가 이병원 저 병원으로 데리고 다니더니 고양이에겐 흔치 않은 병이란다. 나 역시 흔한 고양이는 아니니 그럴 밖에. 

수술을 해야 한다니 잊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살아났지만 나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엉덩이가 문제라더니 수술 후에는 변을 보기가 영 불편했다. 옆 케이지의 샴냥이는 복부 수술을 했다는데 꼼짝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송장을 치르나 싶어 내가 다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녀석은 집에서 요양이 필요하다며 나보다 먼저 퇴원을 했다.

 

좁은 공간에 갇혀 답답한 며칠을 지내는 것이 힘들었지만 내게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참을 수는 있었다. 다만 몸이 아픈 것보다 병원에 있는 동안 둥식이 녀석이 혼자 내 영역까지 온통 휘젓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여러 날이 지났겠구나 싶을 즈음 집으로 왔다. 통원하며 오가는 길도 얼마나 겁이 나던지 집사가 안심시키는 말로 뭐라 위로했지만 병원 냄새만 나면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것은 아닌지 매번 걱정이 되었다.

나는 약도 잘 삼켰고 특식에 영양제도 맞으며 차츰 건강해졌다. 

아프고 나니 세상만사에 안달할 것 없이 다른 눈이 뜨인 기분이 들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덩치만 크고 눈치는 없는 둥식이 녀석이 괜히 의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집사보다는 내 말을 알아듣는 것도 녀석이고 한밤 중이나 새벽녘 사냥 본능이 일면 녀석과 한바탕 뛰며 놀이를 할 수도 있다. 의자에 올라 둥식이가 천연덕스럽게 잠을 자고 있다. 

녀석...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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