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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정 Jul 09. 2023

8. B.C. or A.D.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VS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8)


Before Camembert or After (the) Death of camembert...


다시 이어질 것 같지 않았던 일상이 그런대로 이어졌다.

까망이를 화장하고 12개의 돌로 만들어진 까망이의 흔적을 유리함에 담아 거실 책꽂이 한 칸에 두었다. 높은 곳을 좋아했던 까망이가 답답하지 않을지 햇볕이 눈부시진 않은지 반질한 돌이 까망이의 분신인 듯 마음을 썼다. 샤샤는 까망이를 찾는지 집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내 앞에 와서 운다. 까망이가 어디 갔냐고, 어디 있냐고 묻는다. 나는 고양이의 언어를 모른다. 샤샤에게 까망이의 죽음을 설명하고 까망이를 추억하고 같이 울고 싶은데 알려 줄 방법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샤샤도 차츰 안정을 찾았고 길냥이 식구가 늘 뻔도 했지만 이제 다시는 고양이를 들이지 말자고 합의를 했다. 다행스럽게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이 우리를 이끌었다.





어느 날 딸아이가 길냥이 한 마리가 눈에 밟힌다며 전화가 왔다. 2주 정도 비슷한 장소에서 보이는데 도심 한가운데 너무 위험해 보일뿐더러 감기를 앓고 있는 것 같다고. 원래 길냥이가 아니라 사연 있는 집고양이 같은데 그날은 비도 오고 있었기에 그대로 두면 못 버티고 죽을 것만 같다고.

머릿속엔 다시 까망이의 죽음이 떠올랐고, 다시는 더 이상 고양이 식구를 늘리지 말다고 서로 약속했지만 내일부터 이 고양이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까망이를 보낸 것만큼이나 힘들 것 같다는 딸의 전화는 망설이던 나를 설득했다.  


데려와 보니 집 고양이가 분명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이면서 혹시 돌보던 집사가 찾을 수도 있기에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발견된 주변에 전단을 붙였다. 몸집이 샤샤의 두 배는 될 법하게 큼직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찌나 애교스러운지 이 녀석의 집사가 몹시도 찾겠구나 싶었다. 어쩌다 주인을 잃었는지 모르겠지만 며칠이 지나자 늘어져 자는 녀석이라니 능청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은인을 만났다는 것을 아는지 녀석은 이내 적응을 하고 샤샤에게도 공손?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시간이 가면서녀석을 보내기도 맘이 아프겠다 싶었는데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키우던 냥이어선가? 몸이 아프셨나? 그래서 우리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우리는 일단 녀석에게 둥식이라는 다소 투박하지만 귀여운? 이름을 붙여줬다. 


사실 우리는 샤샤를 부를 때도 햇살 창가에 있는 샤샤를 부를 땐 햇샤, 식빵자세를 한 샤샤에게 빵샤, 간식을 줄 땐 애기야, 몸을 말아 자고 있을 땐 콩샤, 등등으로 불렀기에 샤샤의 별칭은 마구 늘어난 터였다. 동식아, 둥둥, 입아래 콩고물이 묻은 듯 노란 털이 자랐기에 둥절미...  둥식이의 이름도 가지가지였다. 둥식이의 울음소리는 낮고 느렸는데 이 또한 들어본 적 없는 특이한 소리였다.






집사와 살아주고 있습니다(8)


녀석이 사라진 뒤 나는 꽤나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임보처에 있을 때 가끔씩 한 놈씩 사라지고 또 다른 식구가 왔던 것처럼 그런 건가? 내가 임보처에서 사라지고 이곳에 온 것처럼 녀석은 이곳을 떠나 다른 어디로 간 걸까? 거기서 더 잘 지내는 걸까? 아팠던 녀석의 맥없던 얼굴을 생각하면 왠지 불길한 맘이 들었지만 궁금하던 마음은 차츰 잊혀졌다. 이제는 녀석이 있었던 자리에서 나던 녀석의 냄새도 사라지고 남아있지 않았다.





어느 밤, 낯선 녀석이 언니와 함께 왔다.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새로운 환경에 꽤나 놀라는 눈치다. 게다가 나처럼 고양이의 미덕을 다 갖춘 냥이를 가까이서 봤으니 내 모습에 압도된 것이 틀림없다. 이 집의 여왕인 나 하나로는 뭐가 모자라서 냥이를 또 집에 들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이 맘에 들지 않는다. 커다란 덩치가 거슬리기도 하고 오자마자 아픈 것이 무슨 벼슬이나 된 듯 주인공 행세다. 불평한 내색을 했더니 방 하나에 가드를 설치해 녀석의 영역을 제한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내 공간이 줄었다. 그 방 책상 아래에는 나의 비밀 장소가 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녀석이 더 못마땅했다.


나는 소리에 민감한 고양이다. 녀석의 낮고 느려터진 목소리도 어찌나 거만하게 들리는지 자꾸 거슬린다. 녀석은 몸이 회복되자 호기심에 집안 여기저기가 궁금했겠지만 나는 한동안 틈을 주지 않았고 집사도 그런 나를 존중해서 녀석의 영역을 제한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너그러운 고양이기에 녀석의 제한된 생활이 안쓰럽기도 하고 내 휘하에 다시 한 마리쯤 두는 것이 낫겠다 싶어 경계를 풀었고 집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드를 치웠다. 그런데 녀석은 느린 것뿐 아니라 눈치도 없어서 나의 목적과는 다르게 내 뒤를 따라다니며 같이 놀자고 할 뿐 여왕을 모시기엔 가르쳐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하악질로 녀석을 제압하는 것도 피곤했고 눈치주며 행동거지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도 지쳤기에 녀석의 느긋하고 아랑곳 않는 태도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냥아치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이 어이없지만 눈치없는 녀석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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