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없는 어느 임신부의 고백

by 싱지원

그토록 기다렸던 임신이건만 꽤 오래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배에 살이 몰리고, 털이 나고, 목주름이 짙어지고 가슴 주변에 트러블이 나는 등의 각종 육체적 변화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절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평소 매일같이 해오던 운동이나 활동을 쉬게 되었다는 것과, 내 주변 모두가 내 뱃속의 생명을 걱정할 때 나는 나를 더 걱정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사도 가야 하고, 출판 기념 북토크도 다녀야 하고, 요가 강사 과정도 들어야 하는데... 아직 이루고 싶은 것이 많았다.

​ 배에 초음파 기기를 가져다 대면 아기는 언제는 젤리곰같은 형상이었다가 그다음 달엔 심장도 뛰고, 또 그다음번엔 손가락 발가락이 보여 신기하기는 했다. 내가 특별히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뱃속에서 자기만의 속도로 조금씩 사람의 형상을 갖춰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병원에서, 기존에 하던 아쉬탕가 요가는 점프도 많고 몸을 비트는 동작이 많으니 '산전요가'로 바꿔보라고 권유해 수업을 한번 들었다가 그 이후로 산전요가는 쳐다도 안 보게 됐다. 들이마시는 숨에 아이 생각 한 번, 내쉬는 숨에 또 한 번, 뱃속 아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주지시키기에 낯이 뜨거웠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보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 집중한 수업이 못내 불쾌했던 거였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한국인은 먹는 것에 늘 진심이다. 자고로 임신부에게 회 같은 날 것은 안되고, 오리고기도 안되고, 디카페인 커피 한 잔에도 카페인이 들어있으니 안 된다고 했다. 기의 성장을 지연시킨다나 뭐라나.

​ 그럴수록 이상한 고집이 생겨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제철 회도 먹었고, 오리 백숙 맛집에 찾아가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우고, 일주일에 몇 번씩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다. 회사 일도 이전과 다름없이 했다. 나는 여전히 내 행복과 일상이 더 중요했다.

사람들은 모친의 사랑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어머니 된 자의 마음속에
구비된 것처럼 말을 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하면
경험과 시간을 통해서만 있는 것 같다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억울하다.
어머니가 된 선고를 받았다.

<모(母)된 감상기>, 나혜석

나혜석. 1896년생.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라고 외쳤던 그는 조선 1호 여성 서양화가이자 20개월간 세계일주를 했던 대표적 신여성이었다.

​그는 첫사랑을 결핵으로 떠나보내고 자신을 긴 시간 쫓아다니던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해 첫 아이를 낳는다. 1923년 1월 3일에 발표한 <모(母)된 감상기>에서 그는 '모성은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강요하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써 발표한다.

​시대가 시대였던지라, 해당 글을 발표하고 나혜석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한다.

​특히 백결생이라는 필명의 남자는 "원래 임신이란 것은 여성의 거룩한 천직이니 여성의 최대 의무인 것을 지각해야 할 것이다"라는 반박글을 냈다. 그리고 나혜석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능히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아는 체 하려는 것이 용서치 못할 점이다"

겪어본 적도, 겪어볼 일도 없으면 입을 닫으라는 당사자성에 대한 호소. 100년도 더 지났는데, 그가 쓴 글과 이 일화가 마치 어제 일 같다.

그 길로 나혜석 선생님의 글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또, 지금 당장 내게 없는 모성애가 앞으로는 생길 여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모성애는 아이를 갖게 되면서 동시에 자연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괴로움, 그럼에도 인내하는 모순된 감정에서 시작돼 아이와 함께 자라나는 거라고 백년의 시간을 건너 그가 내게 말해주었다. ​

지난주 서울에서 창원으로 향하는 기차 옆자리에 태어난 지 5개월 된 아기와 아기엄마가 탔다. 예전 같으면 '잠자긴 글렀다'고 생각하면서 인상을 팍 쓰고 잠이나 청했겠지만 아기의 숨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30분에 한 번 꼴로 바깥에 나가 아기를 달래고 오는 엄마의 수고스러움에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내밀었다.

요즘엔 격렬한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자연스럽게 배 위로 손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았으니, 너도 좋은 거지?' 하면서.

벌써 임신 기간의 절반이 지나간다. 뱃속 아기는 어느새 혀에 미뢰가 생겨 양수맛을 느낄 수 있단다. 내가 단 음식을 먹으면 양수를 더 많이 마시고, 쓴맛이 느껴지면 덜 마신다고.

그렇다고 여전히 아기를 위해서 무언가를 더/덜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평소 먹던 음식을 먹으며 여전히 일을 하고,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낸다. 아기를 사랑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계속 좋아하고 지켜내고 싶다. 태어날 아기도 자신의 삶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크기를 바란다.

세상에 백 명의 엄마가 있다면 백 가지의 모습이 있을 테니까. 엄마가 된 삶도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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