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님, 요가 대회 나가볼래요?"
요가 수련 3년 차. 여느 때처럼 새벽 수련을 끝내고 흠뻑 젖은 상태로 아이스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있다가 원장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저 우르드바 다누라(거꾸로 활자세)도 제대로 못하는 쪼랩인데 제가요? 그날은 유독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져 3초도 채 못 버티고 머리를 쿵-소리 나게 박았기 때문에,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더 말도 안 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축구 선수로 치면 경기 내용이 좋지 못한 날 벤치에서 쉬는 도중에 해외 리그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나는 축구 선수가 돼 본 적도 없고, 프로 축구 선수와 아마추어 요가인의 세계는 하늘과 땅 차이이겠지만, 일단 내 기분이 그랬다.
지금껏 나는 돌다리를 수십 번씩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디뎌왔다.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어느 정도의 노력을 투입해야 가능한 일인지, 결과적으로 상위 몇 퍼센트나 될지를 지레 짐작하고 따지고, 분석한 끝에 승산이 있을 때 그제야 건넜다. 뻣뻣한 몸을 타고 난데다 초급 동작들도 이제야 조금씩 만들어가는 중이라서, 대회에 나갈 실력은 영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냥' 하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지원서를 썼다.
학생 때 나는 체력장이 싫었다. 친구들은 수업을 안 들어도 된다고 신나 했지만 나는 생리통이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보건실로 도망간 적도 있었다. 앞으로 팔을 쭉 뻗으며 숙이는 유연성 테스트가 특히나 싫었는데, 아주 뻣뻣하고, 동시에 꽤 뻔뻔했던 나는 '다리가 길어서 잘 안 되는 거'라며 위안 삼았지만 부족한 모습을 확인해야만 하는 그날을 피하고만 싶었다. 손끝으로 꼼지락꼼지락 자를 힘껏 밀어내도 0점에도 닿지 못했던 그런 내가 요가 대회에 나간다니, 반 평생을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낸 내가 이토록 몸을 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다니. 기분 좋은 배신감이 들었다. 인생은 참 이상하게 흐른다.
의기양양했던 초반과는 다르게 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굽은 등과 말린 골반은 어찌나 변화가 더딘지 초조함이 밀물처럼 쓸려왔다. 누구도 나의 수상을 기대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랬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친 탓이었다. 균형을 잃고 옆으로 고꾸라지고... 객석에서 '아-' 하는 탄식이 들리고, 심사위원들이 폭풍 감점을 하는 모습...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했다. 불안과 의심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특효약은 당연히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매일 매트 위에 서는 결심뿐이었다.
그렇게 한 계절을 수련으로 가득 채워 보냈다. 머리카락 사이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땀이 역자세를 할 때면 이마로, 눈으로 흘렀다. 그 감각이 좋았다. 마치 살아있다는 감각과도 같았고, 시간을 성실하게 건너고 있다는 증명 같았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시간이 흘러 대망의 대회 당일, 함께 출전하는 같은 요가원 도반*과 대회장으로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혼자면 어쩔뻔했느냐고, 요가 대회에 나가는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청년부 1인 전은 단체전이 다음 순서라 긴장되는 마음을 간신히 숨기고 어린이들의 무대를 감상하는 와중에 옆자리에 앉은 백발의 할머니가 '대회는 처음이냐'라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본인 올해 나이가 일흔둘이라고, 지난해에도 출전했는데 아쉽게 입상을 못해서 올해에 재도전한다고 했다. 챙겨 온 젤리를 나누어 먹으며 어떤 팀이 수상하게 될지 나름 예상도 해보면서 그렇게 어린아이들의 가뿐한 몸짓을 구경했다. 우리 사이의 나이차는 점선처럼 흐려지고 도반이라는 사실만 분명하게 남은 듯했다. 강 할머니는 나를, 나는 강 할머니를 응원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무대에 가지고 간 매트를 펴고 사회자의 카운트에 맞춰 차분히 규정 아사나들을 해내는데, 평소보다 가뿐한 느낌의 몸 상태에 묘하게 흥분됐다. 동작과 동작 사이 3,4초가량 누워서 숨을 고르는 시간에 매트 위에 누워서 잠시 쉬는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진짜 대회에 나왔구나'하는 실감이었다. 연습 때 10초를 채 채우지 못했던 뽐내기 자율 아사나도 여유롭게 시간을 다 채웠다. 아쉬움이라곤 없었다.
이어지는 실버부 경기. 같은 팀도 아니면서, 함께 무대에 오른 다른 할머니들보다 강 할머니가 더 잘하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강 할머니는 내 걱정과는 다르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상체를 완전히 바닥에 붙이는 '우파비스타 코나아사나'와 아사나의 왕으로 불리는 머리서기 '시르샤아사나'를 가뿐하게 해냈다.
점수가 집계되는 동안 축하무대도 이어졌다. 네 명의 중년 여성이 빨간색 반짝이 상의와 검은색 반짝이 핫팬츠를 맞춰 입고 트로트 메들리에 신들린 듯 장구를 쳤다. 어쩌면 이 축하 무대까지가 대회의 완성인 것 같았다. 성실하게 땀 흘린 시간을 증명하는 자리, 서로의 수련을 응원하는 마음이 오가는 자리. 무아지경으로 즐기는 자리. 대회이자 요가인들의 잔치였다.
나도 리듬에 맞춰 신나게 박수를 쳤다. 운 좋게 입상하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될 것 같다고, 흥겨운 장구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예상한 대로 입상에는 실패했다. 아, 강 할머니는 보란 듯이 실버부 개인전 1위에 올랐다. 그의 수상이 내 일처럼 기뻤다. 앞으로 나에게도 40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꾸준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위로 같았기 때문이다.
입상을 예상한 것도 아니고, 아쉬움도 없는데 별안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함께 뜨거운 여름을 보낸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느리더라도 바른길을 안내해 주는 선생님이 무척이나 고마웠고, 입상을 못해 미안했고, 마음 졸이며 최선을 다했던 지난 시간들이 스쳤다. 늘 그랬듯 진심으로 임했던 순간의 끝에선 꼭 눈물이 난다.
대회는 끝이 났지만 수련은 계속된다. 참가상으로 요가 매트도 받았으니 이 매트 위에서 신나고 즐겁게 수련할 일만 남았다. 다음 내 목표를 묻는다면? 단연 실버부 1위다.
*도반 : 함께 도를 닦는 벗. 함께 요가 수련하는 사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