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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범 Jul 05. 2021

매체의 홍수 속에서 책이 지켜온 가치

출판저널 523호

독서의 가치가 변화한 세상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보다 먼저 '잘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독자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필자로서의 완성도를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응당 '잘 읽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러나 신흥 매체의 홍수 속에서, 특히 이미지 정보의 범람 속에서 텍스트의 가치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책의 고전적 가치를 지키는 동시에 출판업계와 독서 생태계의 현주소에 대한 사유를 이어가는 잡지, 출판저널 523호는 이러한 실태를 지적하고 있다. 


 출판저널 523호에 실린 칼럼 <독서하라! 소리내어 읽어라!>는 '호모 크레아투라가 되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라는 흥미로운 부제가 붙어있다. 522호와 이어지는 시리즈 칼럼으로, 이 글에서는 세대 간의 상이한 소통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단절된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독서 방안에 대해 모색했다. 재밌는 것은 이은호 칼럼리스트가 지적한 독서 시장의 변화가 마치 인상파의 등장 배경을 떠오르게 했다는 점이다. 

 

19세기, 사진술의 등장으로 기존 회화에서 중시되었던 재현적 가치는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리 정교한 화가라도 그 사실성은 사진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화가들은 전통적 묘사법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는 '인상'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뉴미디어의 발달과 이미지 매체의 활발한 사용은 '정보 수집'이라는 책의 고전적 가치를 흐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매체의 발달이 가속화될수록 더더욱 독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목적에 맞는 매체를 적절히 선정하고 정보를 수집 및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은 독서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서가 새롭게 지니게 된 가치이다. 


우리, 잘 읽어봅시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기술 매체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독서 방안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번 칼럼은 방법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의 필요성을 일깨울 수 있을까?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흥미를 가진 후에는 어떻게 읽는 게 잘 읽는 방법일까? 


 이은호 칼럼리스트가 지적하고 있는 바는 '문맹률'과 '문해력'의 개념적 차이를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문맹은 글을 읽고 쓸 수 없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대개 언어를 구사할 수는 있으나 '문자'를 쓰고 읽을 수는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이는 이분법적 개념이다. 반면에 문해력이란 문해 능숙도라고 하며, 스펙트럼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글자를 읽을 수는 있으나 글의 의미, 행간의 의도, 맥락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문해력이 낮다고 말한다. 문맹률의 비율이 크게 낮아진 오늘날에는 문해력의 저하를 '실질적 문맹'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해력 저하가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정보의 과잉 시대에서 올바른 정보를 선별하고 비판할 능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 양의 증가가 곧 '읽지 않아도 좋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록 읽는 능력은 더더욱 필수적이다. 또한 아직까지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창의성의 증진에도 도움을 준다. 물론 책이라는 도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러 매체를 연결짓는 접착제로써의 역할 역시 독서만한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책을 문해 능력 증진 등을 위해 도구적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그저 즐기는 나로서는 독서의 가치가 점차 흐려지는 것이 그저 아쉽다. 매체 사이의 연결뿐 아니라 사람 사이를 잇는데도 독서가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독서 경험을 나누는 행위, 책을 추천하고 받는 행위, 책 내용을 빗대어 인생의 추진력을 얻는 경우 등이 주는 기쁨을 생각해보라. 책은 필시 삶과 속도가 가장 비슷한 매체이다. 


 이은호 칼럼리스트는 잘 읽는 방법으로서 '소리 내어 읽기'를 추천한다. 흔히 눈으로만 읽는 방식을 '묵독'이라고 하는데 문자는 입으로 발화되어 비로소 언어가 되었을 때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는 점에서 동의하는 바이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등이 아니면 대부분의 독서를 소리 내어 읽는 방식으로 한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절대 음악을 듣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특히 글을 퇴고할 때는 반드시 소리 내어 읽어 문장의 흐름이 유려한지, 끊어 읽을 만한 지점이 있는지, 필요한 경우에는 운율감이 잘 살아나는 지에 대해 검토한다. 고기뿐만 아니라 텍스트도 씹을 수록 맛이 좋다. 


 해당 칼럼에서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생산 효과를 증가시키는 빠르고 좋은 방식이라고 말한다. 텍스트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기억력 증진에도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앞서 지적했던 문해력의 상승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독서만이 지킬 수 있는 가치


다양한 예술 매체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서사 및 정보 처리 방식과 속도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운 좋은 우리에게는 각자 자신에게 걸맞는 매체를 적절히 골라 활용할 자유가 주어진다. 개인적으로 독서의 가치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독서만이 줄 수 있는 가치 역시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책이 지닌 긴 역사 만큼이나 그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여전히 잔존해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출판저널 집필진들은 그 선두에 있는 이들이라고 느낀다. 물론 도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텍스트를 사랑하는 이들은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텍스트의 비효율이 가져오는 낭만을 안다. 이를 직접 느끼고 망설임 없이 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갈 바란다. 독서와 상성이 좋지 않다고 스스로를 성급히 정의 내린 사람, 책 읽으라는 주변인들의 잔소리에 머리가 아픈 이들, 독서를 습관화하고 싶은 이들에게 출판저널 523호를 꼭 추천하고 싶다.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4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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