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다 마모루 월드, 그 양면의 얼굴
호소다 마모루는 다층적인 시공간을 하나의 서사 속에 녹여냄으로써 다양한 서사적 가능성을 실험하는 감독이라 느낀다. 그의 역작이라 불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에서는 누구나 한번 쯤은 염원해보기 마련인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한 소녀의 작은 세계에 일으키는 파동을 묘사했다. 일본 학원물 특유의 아련한 감성, 아주 일상적인 판타지라는 장르적 유순함을 안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선택에 대한 사유까지도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이후 메타버스 소재를 활용한 <썸머워즈(2009)>를 통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두 겹의 공간을 상호연결하고, 동등한 매력의 층위에서 관객을 설득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늑대아이(2012)>와 <괴물의 아이(2015)>를 통해 ―인외존재로 은유하긴 했으나― 소수자 서사에 대한 관심과 그들의 삶 곳곳에 놓인 선택의 기로, 또 그로 인한 수많은 생의 가능성을 또 다시 다층적으로 묘사했다. 바로 이전 작 <미래의 미라이(2018)>역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매력적인 주인공 소년의 환상과 교묘히 중첩시켜 호소다 마모루만의 환상 세계를 직조해낸 수작이다.
이렇듯 호소다 마모루는 타임 리프와 가상 세계 소재의 꾸준한 사용으로 독보적인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왔다. 분명 장르 영화의 성격이 강하지만, 시공간의 중첩에 있어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 속의 우리에게도 분명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 사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항상 '어딘가 2% 아쉬운' 감독이 호소다 마모루이기도 하다. <썸머워즈(2009)>에서는 전범국으로서의 반성 없는 무조건적인 비판과 설정 오류, 긴밀하지 못한 인물의 행동 동기들이 불편하다 느낀 바 있다. <늑대아이(2012)>에서 역시 봉건적인 여성적 가치의 무분별한 찬양과 섬세하지 못한 캐릭터성 등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미래의 미라이(2018)>도 유사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큼이나 의미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주인공 '쿤'이 동생을 소중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변화에 개연성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독특한 소재와 판타지 세계에 대한 상상력 등이 인상적이지만, 개연성에 다소 의문이 들며 인물에게 부여한 서사가 충분치 못한 탓에 입체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상반된 평가가 이어지는 감독이다. 그가 구축한 세계는 섬세하고 화려한데에 반해,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전작 <미래의 미라이(2018)>에 대한 인상이 깊게 남아있는 필자로서는 누구보다 빨리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용과 주근깨의 공주(2021)>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트레일러 영상을 통해 호소다 마모루만의 정체성을 강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화려한 스펙타클에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벨(Belle)과 스즈가 공존하는 세상- '나'의 분산
<용과 주근깨의 공주>는 '메타버스 힐링 판타지'라는 독특한 장르로써 홍보되고 있다. 가상세계를 다룬 작품들의 상당수는 현실과 가상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묘사하며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사유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현실과 가상 자체의 갈등을 서사의 줄기로 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용과 주근깨의 공주>의 인상적인 지점이라면 두 정체성의 갈등보다는 화합을 전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 '스즈'는 가상세계 U의 자신과 현실 속 자신 사이의 큰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U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형벌이 '본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는 애초에 방점이 현실세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며 갈등의 가능성을 유려하게 차단한다. 인물들은 자연히 앞서 언급한 종류의 자아 갈등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상세계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며, 그곳에 안주해 현실을 잃어가서는 안 된다는 그럴듯한 교훈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다. 인물들은 이미 땅에 발 딛고 선 자신의 현실을 잘 인식하고, 가상세계 속 자신과 적절히 분산해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은 비방이나 가짜 뉴스 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인간의 가능성을 펼치는 매우 좋은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자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 긍정적인 미래로 통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지금까지의 상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점점 변화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딘가 필연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 호소다 마모루의 메시지
오히려 주인공은 U속의 화려한 'Belle'과 노래 한 소절 제대로 부를 수 없는 '스즈' 모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두 세계 속의 인간관계는 겹치고 유리되기를 반복하면서 모두 '스즈'라는 인물 한 명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현실에서는 그 현실의 환경에 걸맞는 '나'가, 가상공간 U 속에서는 또 그 환경에 적응한 또 다른 모습의 '나'가 존재하는 것뿐이다. 가상 세계 U 속의 캐릭터는 현실 속 나의 신체 정보와 가능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즈의 주근깨가 Belle의 상징으로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은 이를 더욱 미묘하게 만든다.
이는 가상공간이 일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다중의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감독은 이미 그러한 세계가 도래했음을 인식한 것이 아닐까. 이상 어느 쪽이 진짜 나이고, 어느 쪽을 잃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갈등은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친한 친구 앞에서의 '나', 상사 앞에서의 '나', 연인 앞에서의 '나'의 페르소나가 모두 다르듯이 가상세계 속의 캐릭터도 또 다른 페르소나처럼 받아들여질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시공간을 중첩시킬뿐 아니라 인간의 자아 역시도 다층화될 수 있음을 수용한 것이다.
새로운 갈등 양상- 현실의 지옥은 가상의 지옥으로
* 해당 파트부터는 영화 <용과 주근깨의 공주>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용'이다. '용'은 가상세계 U의 무법자로 그 평화를 해치는 악당이다. U 세계의 선을 수호하는 경찰들은 그를 절대악으로 상정하고 혈안이 되어 쫓는다. 수많은 유저들 역시 '용'의 본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용의 존재가 상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어떤 집단에게는 ―특히 아이들― 그가 악당이 아니라 영웅으로 칭송받는다는 점이다.
용의 본체가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미스테리이다. '용'의 본체는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14세 소년 '케이'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지적 장애를 지닌 동생 '토모'까지도 보호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가 U에서 무법자 '용'으로 나타난 사실은 말 그대로 소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학대의 경험을 안고 자란 그는 사회를 위협하는 악당이 될 가능성도, 절대적 약자인 동생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발전시켜 누군가의 영웅이 될 가능성도 모두 지니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된 아동의 서사적 가능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U가 꾸며낸 성 속에서 벨과 함께 미녀와 야수의 모티프를 재해석하는 장면 역시 흥미로웠다. 가장 근원적인 구원서사로 읽히는 미녀와 야수 코드를 심어 놓았다는 점을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연히 둘의 구원 관계는 U속에서의 환상으로만 머물지 않고 현실 속 '스즈'와 '케이'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에서 U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현실에서 수많은 편견에 갇혀 보지 못했던 가능성들을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이를 발판 삼아 현실의 '나'가 현실의 리듬에 맞게 성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호소다 마모루는 항상 이토록 섬세한 세계를 전면에 내세워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2%, 아니, 22% 부족한 호소다 마모루 월드
U의 화려한 스펙타클과 스즈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의 자연 경관의 묘한 조화,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 결국 필자의 플레이리스트 한 구석을 차지해버린 수려한 OST, 결국 노래로 인한 진심은 통한다는 보편적인 메시지 등은 모두 이 작품의 매력이다. 해서 혹시나 개봉 후 작품 관람을 망설인다면 이런 재미 요소들을 고려해 충분히 추천하고 싶다. 확실히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내는 작품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요소들은 존재한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한 아이를 불행하고 비뚤어질 수밖에 없던 계기로 도구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다소 판타지적이다. 결국 먼 길을 떠나 도쿄에 사는 케이와 토모 형제를 찾아간 스즈는 아버지로부터 그들을 안아 보호한다. 갈등은 거기에서 모두 종식되고, 인물들은 모두 심심한 행복을 맞이하며 끝나게 된다. 그러나 관객이라면 그 누구라도 '아니, 저렇게 그냥 놔둬도 되는 거야? 가정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요즘 이런 걸 '머리가 꽃밭'이라고 한다던가. 조금 과한 표현일지도 모르나, 대책 없는 낙관으로 가득 차 있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불편은 길게 뻗어간다. 다음은 개연성이 부족해 감상을 방해하는 장면들을 거칠게 나열한 결과이다. (물론 사견임을 다시 밝힌다.)
그렇게도 폭력적으로 설정된 아버지가 작은 소녀의 기개 앞에서 쉽게 물러설 리 없을 거라는 점에서 드러난 캐릭터의 모순
모두가 인터넷과 가상세계에 사는 세상에서 아동학대를 일삼는 아버지의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이 스즈 일행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스즈를 행동하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그 어떠한 공권력도 아이들을 돕지 못했다는 설정이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 점
주인공 스즈와 아버지 관계의 균열에 대한 턱 없이 부족한 설명
노래는 모두에게 통한다지만 정작 스즈 자신에게는 어떠한 의미인지 보여주지 않는 점
위와 같은 점들이 작품의 재미를 반감한다는 게 관객으로서 참 아쉬웠다. 현실의 갈등을 가상세계 속의 갈등으로 세심히 끌어들여 양쪽 모두에서의 해소와 화합을 도모한다는 낙관은 좋다. 영화란 그런 이상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이라면 더더욱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U에서는 아름다운 노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현실 세계의 중요성과 여전히 그 정체성을 공고히 남겨뒀다면 현실에서 통할 만한 해소 방법도 찾아야 했을 것이다. 그것에 자신이 없다면 아동학대라는 소재를 낭만적으로 도구화해서는 안 된다. 그것도 철저히 타인인 주인공의 성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쨌든 감독도 가상세계가 현실의 반영이며 갈등은 현실에 실존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해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서사 트렌드를 따르려는 시도는 보인다. 꾸준히 '잘 팔리는' 소재 중 하나인 메타버스 세계관을 도입했다는 점은 물론이고,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에서 느꼈던 여성 캐릭터 묘사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여성 히로인의 주체성을 높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의 전작을 인상 깊게 보았다면 이러한 서사적 변화를 짚어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