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노정기> 관람기
간혹 그런 재밌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상이 만년필이 아닌 블루투스 키보드로 시를, 수필을, 소설을 썼더라면. 셰익스피어가 펜대 대신 시네 카메라 그립을 잡았더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종이 질감 패드를 꼼꼼히 붙인 아이패드에 애플 펜슬로 그림을 휘갈겼다면. 모짜르트가 신디사이저를 미디에 연결해 사각대는 건반을 독수리 타법으로 꾹꾹 누르며 작곡을 했다면.
모든 예술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의 한계에 치열하게 부딪히며 탄생한다 느낀다. 해서 무엇을 매개체 삼느냐에 따라 예술가가 부딪히는 한계점이, 그것에 순응하고 또 극복해가는 방식이 달라진다. 결국 같은 창작자의 것이라도 결과물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만 해도 연필심과 종이를 마찰시키며 끝없이 지연되는 글쓰기를 할 적과 생각보다도 손이 먼저 나서는 글쓰기를 할 적에는 꽤나 다른 결과물을 내놓곤 한다.
<김홍도의 화첩 기행- 환상노정기>를 관람한 후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든 것은, 화선지 위에 유려하게 펼쳐진 한 폭의 그림 정도로만 상상하던 김홍도의 작품이 무려 모션 그래픽 3D 영상으로 구현된 것에 크게 감응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김홍도가 오늘날 아트 테크놀로지나 미디어 아트를 공부했다면 어떤 작품을 내놓았을까?'에 대한 아주 신선한 답을 목도한 기분이었다.
더불어 그의 작품이 더 이상 일차원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국악기들의 앙상블로, 유려한 서사의 판소리로, 재치있는 가사와 흥겨운 발림으로 각각 확장되어 표현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였다. 김홍도라는 인물의 작품 세계를 이토록 다양한 예술 매체에 담아 그것도 아주 대중친화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이 높이 살만 하다 느낀다.
초여름 햇빛이 정수리를 고루 데우던 주말, 가족들과 함께 남산골 한옥마을 내에 위치한 서울 남산 국악당을 찾았다. <환상노정기> 관람을 위해서였다. 간만에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게 된 덕에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구경하며 공연에 대한 기대를 더해가기도 했다. 국악을 소재로 한 공연에는 크게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 기세 좋게 동행할 것을 권한 것은 나였던지라 부디 모두가 양껏 즐길 수 있는 공연이기를 바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노정기>는 역사적 사실과 사료에 대한 흥미로운 재해석, 다채로운 예술 형식을 통한 풍부한 표현 방식, 뛰어난 음악가들과 소리꾼의 재주가 한 데 어우러져 가족 모두에게 상당한 재미를 선사했다. 일단 한국적인 반전을 품은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했기에 만약 대본만 줄줄 읽는 단순 낭독극의 형태였더라도 충분히 재미를 느꼈겠다는 생각도 했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음에 아쉬운대로 아래 시놉시스를 첨부한다.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화첩기행을 떠난 김홍도는 묘길산 근처에서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남겨지게 되고, 호랑이에 물린 아이 만덕이를 만나게 된다. 김홍도는 자신의 아들과 똑 닮은 만덕이를 보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만덕이를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결심을 한다. 만덕이와 함께하는 여정 가운데 김홍도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고, 어렵게 그린 그림들을 모두 버리고 나서야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김홍도는 만덕이를 끌어안은 채 아들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고, 김홍도와 만덕이 서로 마음을 열어갈 즈음, 갑작스레 호랑이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놀란 김홍도는 만덕이를 지키려 안간힘을 쓰는데… / <환상노정기> 시놉시스
김홍도에 대해서는 미술 시간이나 역사 시간에 딱딱하게 배운 정보들만이 남아있던지라, 이렇게 풍부한 소리와 이미지에 둘러싸인 김홍도를 목도하는 것은 무척 새로운 경험이었다. <환상노정기>에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과 화가로서의 삶뿐 아니라 그가 느꼈던 사사로운 감정 등을 주되게 묘사해 시공간을 뛰어넘은 인간적 공감을 가능케 한다.
공연을 관람한 후 모든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감상은 대단히 풍부한 공연이었다는 것이었다. 융복합 콘텐츠라는 특성에 맞게 음악, 영상, 현장 연기 등이 어우러져 하나의 매체만으로는 채 표현할 수 없는 다층적인 표현의 결을 만들어냈다. 특히나 이런 감상에 스스로 놀랄 수밖에 없는 지점은, 모든 인물을 단 한 명의 소리꾼이 연기해냈다는 점이었다. (중간에 감초 같은 역할이 있긴 했으나, 극 자체는 한 명이 이끌었다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판소리란 으레 한 명의 소리꾼이 연기하는 것임을 안다. 그러나 <환상노정기>는 융복합 콘텐츠를 표방한 만큼 다른 노선을 따를 수도 있었을 텐데 여전히 이러한 판소리의 형식적 전통을 따른 점에 분명한 함의가 있다고 느낀다.
소리꾼 김봉영의 놀라운 연기력은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정조 임금, 김홍도, 사냥꾼, 만덕이, 게다가 해설가까지를 넘나들며 세심하게 다른 말투와 몸짓을 연기해내고 심지어 멋들어지는 소리까지 유려하게 뽑아내는 그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공연은 그 가치를 지닌다. 물론 그와 훌륭한 합을 이루는 국악단의 오프닝 연주 역시 혼을 쏙 빼놓고도 남을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후 남산골 한옥마을을 굽이 내려오는 길에 가족들과 연신 <환상노정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공연을 혼자 관람하는 나에게는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의미 있는 추억을 하나 더해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 공연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