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는 아주 오래동안 상용되어 온 '친부 살해 모티프'가 존재한다. 오이디푸스를 비롯한 다양한 설화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친부 살해 모티프는 보통 아들이 선망이자 공포의 대상인 아버지를 살해하는 구조를 취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것이 태생적으로, 또 원초적으로 마주하는 경쟁자인 아버지를 제거한다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그 권위를 물려받고 유아적 돌봄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연극 <Is God Is>에서 친부를 기꺼이 살해하고자 길을 떠나는 존재는 아들이 아니다. 딸, 그것도 딸'들'이라는 점이 벌써 이 작품의 선구자적 위치를 직감하게 된다.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쌍둥이 자매인 러신과 아나이아는 어머니와 자신들을 방화 살인하고자 했던 아버지를 죽여버리라는 어머니의 숭고한 명을 받들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마치 정글 탐험대가 길게 자란 풀들을 베어가며 전진하듯, 장애물이 되는 이들을 차례차례 살해해간다.
오랜 역사 속에서 친부 살해의 주체가 되었던 자리에 아들을 박탈하고 딸들을 끼워넣었다는 점, (해당 공연에서는 한국 배우들이 연기했기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이 흑인이자 미국의 전형적인 노동자 계급으로 정체화된다는 점, 어릴 적 불우한 사고로 인해 내외적 결핍을 안고 살아온 인물이라는 점 등을 주목할만하다. 이러한 인물들이 존속 살해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이 연극은 충분한 혁명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쌍둥이 자매는 어머니를 '신'이라 칭한다. 그토록 유약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유한함 앞에서 몸을 뜯어먹히고 있는 자가 '신'이라니, 어폐가 심하다. 그러나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보면 창조주인 어머니를 '신'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이는 분명 어떠한 선구적인 의지 표명에 가깝다 느낀다.
이 작품은 분명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카인은 성서에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기록된 인물로, 질투심과 분노에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존속 살해였다는 점부터가 씁쓸하면서도 의미심장한데 <Is God Is>는 분명 이 점에 주목했다고 느낀다. 카인과 아벨과는 달리 쌍둥이 자매 러신과 아나이아는 서로만을 진심으로 아끼고 의지하며 살인을 목표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크게 갈린다. 카인과 아벨이 각각 곡식과 새끼 양이라는 다른 재물을 바쳤듯이, '신'으로 통칭하는 어머니에게 살해 후 이들이 바치는 재물 역시 상이한 것이다.
러신이 바치고자 했던 재물은 신이 원하던 그대로이다. 살인의 증거, 그들의 신체 조각 일부를 떼어낸 결과가 그것이다. 그것은 죽음과 복수를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에 비해 아나이아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모든 사건이 끝난 후 목숨이 경각에 달은 '신'에게 살아있는 생명을 바친다. 바로 죽은 쌍둥이의 이름을 딴 자신의 아기이다. 그러나 '신'은 제물을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숭고한 목적을 지녔더라도 살인은 살인을,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이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굴레로서 익숙하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과분한 명칭을 붙인 것이 무색하게도 인간은 창세기 이후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선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전히 인적이 드물다. 성경에 따르면 오히려 선인으로 치환되는 동생 아벨이 죽고, 악한 카인만이 살아남아 이른바 '카인의 후예'를 만들어냈지만 이 작품은 마치 그 모든 선과 악의 구분이 무용함을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Is God is>에서는 오직 동생 아나이아만이 새로운 생명과 함께 살아남기 때문이다.
연출적으로 눈여겨 볼 지점들도 몇몇 존재한다. 무대에 처음 등장한 배우들은 인물이 낯설 관객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특성과 사연을 갖고 있는지 3인칭으로 지칭하며 설명하는 점이 인상 깊다. 마치 배우 자신의 자아와 인물로서의 자아가 묘하게 섞여드는 듯한 연기 방식이었기에 독특하다고 느꼈다.
보통의 연극이라면 배우가 인물에 완전히 몰입하여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외치겠지만, <Is God Is>의 경우 배우와 극중 인물 사이에 얇고 투명한 벽 하나를 세워두며 'A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담담하게, 그러나 분명 인물로서의 자아를 한 스푼 녹여내 발화하는 느낌이다. 어딘가 이 서사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낯선 이야기는 아님을 인지시키는 부분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연극의 톤이 생각보다 가벼웠다는 점이다. 조금 더 무거운 복수극의 분위기를 가져가 철학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측면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조금은 미드스러운, 슬래쉬 영화의 문법을 섞여냈다고 느꼈는데 이로 인해 분명 대중성을 잡을 수 있겠지만 진중함을 조금 양보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연기와 끝을 알 수 없는 흥미진진한 서사는 이 연극의 매력을 충분히 돋보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