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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범 Jun 22. 2024

빛은 깨진 틈으로 들어온다 - 영화 <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날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날에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완전함'을 도모할 수는 있다. 나의 의지로 말이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 속 지루함, 자유 의지의 힘이라고 믿었지만 결국 거대한 외력에 의해 선택 당했을 뿐이었다는 체념, 비슷한 하루들이 경계 없이 녹아 하나의 물렁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듯한 권태감, 현재를 지도 삼아 그린 미래는 여전하면 다행이지 나빠질 일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함을 밀어내지만, 반대로 나라는 존재의 완전함을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게 별 의미없어 보이는 일상과 반복이 착실히 쌓여 나는 온전해지고, 완전해진다. 적어도 그 언저리를 향해 꾸준히 나아간다. 깨진 틈으로 빛은 들어온다고 했던가. 삶의 여러 요소들은 완벽함 사이로 무차별한 균열을 가하지만, 가끔 그 틈으로 들어오는 아스라한 빛을 마주하는 순간, 가끔은 이 별볼일 없는 삶에도 '완전함'이라는 이름을 허락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감상을 남긴 <퍼펙트 데이즈>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처럼 내 삶을 오래, 희미하게 비춰줄 영화였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주인공 히라야마의 비슷한 듯 다른 하루들을 묵묵히 보여준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그는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하루를 시작한다. 부지런한 이웃의 빗질 소리에 눈을 뜨고, 양치와 면도를 하고, 키우는 식물에게 물을 주고, 집 앞의 자판기에서 반드시 커피 한 캔을 사서 차에 오른다. 그의 출근길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뱉어내는 올드 팝이 함께하고, 도착한 일터에서는 누구보다 성실히 청소를 한다. 식사 때에는 편의점에서 산 우유와 샌드위치를 들고 한 신사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 나뭇잎이 그리는 빛의 지도와 그림자를 유심히 관찰한다.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필름 카메라로 담아도 본다. 


일을 끝내고 목욕탕에 가고, 역 안의 식당에서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중고 서점에서 예상치 못한 책을 만나고, 필름 가게에서 찍었던 사진을 인화하고, 단골 가게에서 술을 한 잔 하는 히라야마의 하루는 타인의 삶과는 미묘하게 유리된 듯 온전해 보인다. 그 삶을 견인하는 주체는 히라야마 혼자로도 충분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몇 안 되는 그의 대사 중 '이곳은 수많은 세계로 이뤄져 있는데, 전혀 이어지지 않고 유리된 세계가 있다'라는 말도 등장한다. 그러나 이 또한 히라야마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고 삶을 지키는 자신만의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일렁이는 그의 일상은 마찬가지로 쉬없이 일렁이는 타인의 일상과 자주 맞닿을 수밖에 없다.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 그의 여자친구 아야와 엮이며 잠시 그들의 삶을 엿보기도 한다. 또한 매일 청소하는 공원에서 매번 다른 포즈와 몸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힘껏 증명하는 노숙인을 보고, 한 번은 그와 짧은 목례를 나누기도 한다. 화장실 틈에 끼운 종이를 통해 얼굴 모르는 사람과 오목을 즐기기도 하는 등, 히라야마의 일상은 온전히 그의 것인 동시에 그림자처럼 일렁이며 다른 이의 그것과 간간이 그 경계가 섞여들기도 한다. 


히라야마의 하루가 저물 때마다 그의 꿈속에서는 하루 동안 보았던 장면들이 그림자의 형태로 등장한다. 어딘가 의미심장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이 장면들은, 그가 일렁이는 그림자의 형태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실체의 건너편에 생기는, 그렇기에 무엇보다 실체를 단단히 증명해주는, 그러나 결코 실체는 될 수 없는 그림자의 힘을 빌려 그는 애써 자신의 세상과 온전함을 지켜가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조카 '니코'의 등장으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니코와 생활을 함께하게 되면서 균열 없던 일상에 조금씩 다른 면들이 등장한다. 짐들 사이에서 잠을 자고, 니코를 깨우지 않기 위해 발끝을 세워 걷고, 편의점에서는 니코 몫의 딸기 우유를 하나 더 사고, 일터에서는 니코가 도울 수 있게 걸레를 짜준다. 그의 영향인지 히라야마는 영화 끝에서, 조금 뜻밖의 선택을 한다. 단골 선술집에서 우연히 보게된 여주인의 전남편과의 대화 장면에서, '그림자는 겹쳐질 수록 어두워지나요?'라고 혼잣말처럼 묻는 그에게 '확인해보죠'라고 답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 마지막이 되어서야 히라야마는 생판 타인과 완전히 그림자를 겹쳐 본다. 술의 영향인지 '저기 보세요, 약간 어두워지네요!' 라고 조금 흥분해 말하는 히라야마는 아이처럼 그와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한다. 히라야마는 일렁임을 잠시 멈추고 두려움 없이 누군가의 세계와 완전히 겹쳐지는 선택을 해본다. 그래도 나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고, 더 짙어질 뿐임을 애써 확인한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그 그림자를 이렇게 목적 없이, 그저 즐겁게 쫓아본 적이 있었던가 곱씹게 되는 부분이었다.


영화를 보며 느낀 점은, 누군가에게 포착되는 나의 권태로운 일상도 꼭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우리의 일상은 영화와 다르게 편집이 불가하고, 제3자의 시선이라는 마법도 부릴 수 없으며, 아스라한 빛 번짐으로 모든 것을 꿈 같이 넘겨버릴 수도 없고, 더럽고 치졸하며 꼴보기 싫은 것들을 가감없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히라야마가 인화해온 사진들 중 대부분을 가차없이 찢어 버리고 일부만을 상자에 보관하듯, 우리는 균열의 틈으로 들어오는 빛들을 소중히 하는 방식으로 나와 세계를 지킬 수 있다. 완벽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일상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내 존재로, 내 존재의 온전함을 증명하는 뿌리가 될 테니까. 찢어 버린다고 하여 영영 없애버릴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에서, 히라야마의 표정에는 미소라는 빛과 눈물이라는 그림자가 함께 담겨있다.  


그렇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완벽하지 않은 삶 속의 온전함을, 그렇기에 완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지는 누군가의 삶을 그린다. 일상의 권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7월 3일 개봉하는 이 영화를 부디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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