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몰타의 유대인
일전에 <몰타의 유대인>을 희곡으로 접한 적 있는 나로서는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시대를 넘어 사랑 받아온 고전인 만큼, 당시 팽배했던 물신주의의 비참한 말로를 드러낼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레이어를 촘촘이 쌓고자 노력한 작품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이것이 2024년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만나 어떤 방식으로 재해석될지, 즐거운 가늠을 이어가며 극장을 찾았다.
1500년대 중반 르네상스기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이 대표작이 지금 여기,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몰타의 유대인>은 아주 직관적인 제목이다. 몰타에 정착한 '바라바스'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걸맞게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인물로, 몰타 전체의 부를 합친 것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몰타는 그의 재산을 몰수해 튀르키예를 위한 조공으로 바쳐버린다. 이를 계기로 몰타를 비롯한 세상에 대한 적의를 키워간 바라바스는 마침내 자신의 딸을 죽음의 문턱에 세울 만큼 타락하게 된다. 사람과 재물을 부려 직접 손을 더럽히지는 않지만, 점점 자신이 해친 사람들의 시체 위에 올라선 것이다.
고대 비극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몰타의 유대인>은 고귀한 영웅의 타락이 아닌, 애초에 낯은 평판과 비루한 인간성을 지녔던 인물이 그대로 몰락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어찌 보면 바라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겪지 않는 인물이다. 다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상황이 변화했고, 바라바스는 자신의 본질에 충실해 그에 대응할 뿐이다. 이것이 바라바스라는 캐릭터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는 뻔하게 반성하지도,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는다. 최종적인 몰락과 죽음마저 바라바스의 욕망에 삼켜지는 느낌이었다.
자본주의의 병적 속성, 인간성마저 져버리게 하는 물질주의의 사악함을 말하는 서사는 이제 아주 낯설지 않다. 사실 다소 지겹고 뻔하다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지닌 오랜 역사를 고려해보면, 자본주의의 이면을 경고하는 수많은 작품과 더불어 최근 많은 관심을 얻고 있는 디아스포라 작품들의 원형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진부하다'는 감상의 자리를 '오래된 신선함'이라는 독특한 표현이 차지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바라바스를 여성으로 캐스팅하며 남성 못지않게 불타는 욕망을 지닌 여성의 얼굴을 보여줬다는 점, 중간 중간 인물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스러운 연출을 통해 그들의 욕망을 더욱 직관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점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세팅은 풍선이었다. 무대 가쪽에 잔뜩 쌓인 풍선들은 그 자체로 배경이 되기도, 유용한 소품이 되기도 한다. 바라바스의 막대한 부도, 반짝이는 보석들도, 왕좌를 연상시키는 권위의 자리도, 인물들이 뒹구는 돈방석도 모두 헛헛한 바람만 채워진 풍선으로 대표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극중 인물들이 목을 매며 차지하고자 하는 것들, 그들이 삶의 목표이자 목적 그 자체로 삼았던 것들이 바람만 빼면 쪼그라드는 가볍디 가벼운 풍선이라는 사실이 어딘가 씁쓸함을 자아낸다.
다만 다소 아쉬운 공연이었다는 감상이 남는다. 크리스토퍼 말로의 의도가 어땠든, 이 작품이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시켰다는 미래를 알고 있는 현재로서는, <몰타의 유대인>을 다시 무대에 올릴 때 분명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느낀다. 그러나 현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되는 버전의 경우, 바라바스를 여성으로 바꾸어 젠더프리 캐스팅을 도모했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더 적극적인 재해석을 시도해봐도 좋았을 것 같다.
상황을 코미디적으로,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흔적들은 보였으나 그마저도 다소 어설프고 직관적인 탓에 오히려 작품이 지닌 무게감도,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깊이 암은 블랙코미디 특유의 씁쓸함도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깊이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현재, 이 시점에서 다시 올려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크리스토퍼 말로가 살아있었을 적 지녔던 문제의식들은 여전히 현재까지 유효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한 지금, '혐오'와 '돈의 논리'라는 키워드는 애써 외면하는 우리를 지겹게 따라다닐 것이다. <몰타의 유대인>은 그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며 우리 귀에 속삭인다. 바라바스의 몰락을 그저 팔짱 끼고 지켜보는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그와는 다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