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두려운 아이들, 그럼에도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리뷰

by 래범

이상의 시 <오감도>는 그 표면적 난해함 때문인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 및 분석 되어왔다. 이에 질세라 예술가들 역시 이 텍스트를 재구성하고 해체하며 그 외연을 넓혀왔다. 흔한 인식으로는, 시의 제목처럼 까마귀의 시선으로 공중에서 내려다 본 식민지 조선의 일면을 담은 것이라는 종류의 해석이 가장 유명하겠다. 시에서 말하는 13인의 '아해'는 진짜 '아이'이기 보다는 위에서 조망했을 때 아주 작게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도시 속에서 외소화된 인간 존재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두려움'은 인간 본연의 공포, 관계 불안, 대립 등에서 야기되며 나아가 20세기 도시 문명이 낳은 찌꺼기들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4.jpg

그러나 이 '아해'를 진짜 '어린이'로 치환해본다면 어떨까? 아주 단순하게 이상이 쓴 텍스트만을 오롯이 두고, 다른 맥락들은 잠시 치워둔 채 정말 무언가 두려워 끝없이 도로를 질주하는 어린이들을 떠올려 본다면? 어린이들은 과연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두려움의 결과로 왜 '방구석에서 웅크려있기' 대신 '도로를 질주하기'를 택한 것일까?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어쩌면 그러한 순수하고도 전환적인 사고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아이들이 뭘 무서워하는 지 알려줄까요?'하는 어린이의 당찬 외침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들려주듯,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13명의 아해들이 두려워하는 것들로 각 장이 꾸며진다. 막 세상에 난 아이는 처음에는 단순히 태어나는 것이, 뒤집는 것이, 걷는 것이, 그리고 뛰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깨닫게 될 때 쯤에는 곧 언제까지 뛰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뛰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 또 다른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렇게 어린이의 희망과 기대, 그리고 환희가 곧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싸그리 잡아먹히는 일이 반복된다.


나이 드는 것, 부모님, 학교 등 보편적인 문제를 넘어 연극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고유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발화한다. 그들의 사고를 마비시키는 스마트폰, 그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아이돌 산업,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동시에 매혹하는 AI, 그들의 삶의 터전을 지워버리는 노키즈존, 그들의 미래를 빼앗는 전쟁, 그리고 돌고 돌아 이 모든 것들과 이어지는 '꿈'에 대한 고민까지. 13명의 아이들은, 아니 13개의 두려움들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끝없이 변주되며 그들의 성장과 맞물려 나간다. 이들의 두려움은 내가 성장해왔던 시기와는 또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에 세대성까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두려움을 묘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서는 어린 내가 어른이 된 나와 마주치는 장면이 펼쳐진다. 둘의 대화를 통해 지금껏 묘사된 두려움은 인간 사회 본연의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그 색깔과 온도가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고유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어린이 배우의 직접적인 발화는 곧 그것들을 삼켜내며 성장한 어른들의 외침으로 이어지며 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번져나간다.


이 연극이 무엇보다 매력적인 이유는 실제 어린이 배우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람 내내 '최근 이렇게 많은 어린이들이 한 자리에 발화하는 걸 보고, 들은 적이 언제였나'하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생활 속에서 어린이들과 엮일 일이 거의 없는 나한테 그들의 조잘거림과 웃음소리는 이제 관념의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글을 써야 할 때 당사자의 의견이 궁금한 적은 더러 있었으나 결국 잘 기억도 나지 않는 내 어린시절을 타고 내려가 겨우 긁어낸 것을 쓰는 방식으로 해소해왔다. 다소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러나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제각각인 어린이 배우들이 직접 무대를 활보하며 보여주는 몸짓과 소리들은 나를 각성시켰다. 그들이라고 '두려움'을 모를까. 그들이라고 두려움과 막막함에 '도로를 질주하고 싶은 마음'을 모를까. 처음에는 그저 어린이들의 귀여움에 빠져 웃던 관객들도, 점차 그들의 목소리에 무게를 두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는 숱한 연극들을 보아온 나에게도 낯설고 또 짜릿한 관극 경험이었다. 작품을 보는 내내 어린이 배우들과 존중을 기반으로 한 소통을 해나갔을 작업 과정 자체가 도전이자 성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형식적인 얘기를 조금 덧붙여 보자면, 해당 공연은 '열린객석'이라는 독특한 관람 방식을 차용한다. 공연 중에도 객석을 완전히 암전시키지 않으며, 특정 장에서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구분이 크게 가지 않을 정도로 균일한 조명을 사용하기도 한다. 공연 중 자유로운 입퇴장이 가능하게끔 하여 어린 관객들이 어려움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한 배려인 동시에, 무대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대신 관객, 나아가 일상의 삶과 맞닿게 하려는 방식 같아 흥미로웠다.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2월 14일까지 명동국립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어린이 배우들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유쾌하고도 소중한 기회를 잡아보길 바란다.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583

매거진의 이전글썩은 이빨에 담긴 진실- '안산, 황금용'